빛 마음대로 조절하는 ‘초박형 렌즈’ 탄생

동아일보

입력 2018-11-19 03:00 수정 2018-11-1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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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호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팀이 새로 개발한 초박형 ‘메타렌즈’를 들어 보이고 있다. 왼쪽부터 이건열 연구원, 이 교수, 홍종영, 문석일 연구원이다. 이병호 교수 제공
서울대 공대 301동 연구실. 홍종영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연구원이 한쪽 구석의 의자를 가리키며 앉으라고 했다. 의자 앞에는 말간 유리 하나가 앞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진 채 놓여 있었다. 유리 너머로 연구실 비품이 보였다. “고개를 앞뒤 좌우로 움직여 보세요.” 눈앞에 갑자기 3색 표지판이 떴다. 2m, 4m, 6m, 8m, 10m를 가리키는 글자들이, 투명한 유리판에 비치는 연구실 풍경 위에 겹쳐졌다. ‘2m’는 가깝고 ‘10m’는 멀었다.

“자동차 앞 유리에 정보가 표시되는 ‘헤드업디스플레이(HUD)’ 시스템을 위해 개발한 3차원 증강현실(AR) 영상입니다. 안경 없이 입체 영상을 보여주죠.” 이병호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가 설명했다. “‘렌티큘러 렌즈’라는 특수한 렌즈 덕분입니다.”

연구팀이 ‘렌티큘러 렌즈’를 이용해 실제 화면에 입체 영상을 덧입힌 증강현실 시스템이다. 이병호 교수 제공
렌티큘러 렌즈는 여러 개의 반 원통형의 렌즈들이 나란히 이어 붙은 형태를 갖는 특수한 렌즈다. 겨울철에 즐겨 입는 코듀로이 바지의 올록볼록한 표면을 생각하면 쉽다. 올록볼록한 구조 하나하나가 렌즈 역할을 하기 때문에 렌즈 뒤에 위치한 디스플레이 화소들의 정보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고 이를 이용하여 두 눈의 위치에 따라 조금씩 다른 상이 맺히게 할 수도 있다. 우리 눈이 실제 세상을 볼 때와 똑같은 원리로, 인공적으로 눈에 입체 영상을 보여줄 수 있다.

이 교수와 홍종영, 문석일 연구원 팀은 ‘올록볼록’한 구조 하나의 지름이 0.5mm인 정교한 렌티큘러 렌즈를 평판 디스플레이 위에 설치했다. 정교하게 설계한 디스플레이 영상은 렌즈를 통과하며 의도에 따라 조절되고, 이것이 유리(차창)에 반사되며 눈앞에서 입체로 변했다. 실제로 보니 몸이나 고개를 어느 정도 움직여도 영상이 유지됐고, 유리 밖 풍경과도 잘 어울려 어지럽지 않았다.

렌티큘러 렌즈보다 더 얇은 ‘메타렌즈’도 있다. 아주 얇으면서 빛을 원하는 방향으로 원하는 만큼 자유자재로 휘거나 모이게 하는 새로운 초박형 평면 렌즈다. 수cm 두께의 무거운 렌즈 없이도 빛을 자유롭게 조절해 원하는 영상을 재생시킬 수 있다.

이 교수와 이건열, 홍종영 연구원 팀이 만든 메타렌즈를 들어봤다. 두께감이나 무게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이 연구원이 “두께가 100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라고 설명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 렌즈는 빛의 파장보다 작은 오돌토돌한 미세한 구조로 가득 차 있다. 이산화규소로 만든 투명 평면에 가로 60nm, 세로 220nm, 높이 100nm의 초소형 직육면체 구조가 400nm 간격으로 빼곡히 배열해 있다. 워낙 작다 보니, 유리 표면에 붙여도 투명성이 사라지지 않고, 실제 풍경이 그대로 보였다. 하지만 그 위에 특정한 빛을 투영시키자, 자연에 없는 특이한 각도로 빛이 휘거나 모이며 영상을 덧입혀 보여줬다.

이 교수는 “해외 연구팀도 아직 지름이 1mm 이하의 메타렌즈밖에 만들지 못했는데, 지름 2cm의 실용적인 크기로 제작한 세계 최초의 사례”라며 “시야각도 기존의 25도에서 최대 100도 이상으로 크게 높여 AR의 몰입도를 끌어올렸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 메타렌즈를 1일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하고, 증강현실을 표현하는 차세대 디스플레이에 사용될 수 있도록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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