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은밀하게 더 집요하게… 온라인 ‘집단따돌림’ 광풍
이진구 기자
입력 2018-11-03 03:00 수정 2018-11-03 03:00
[위클리 리포트]죽음 부르는 ‘사이버불링’(Cyberbulling)
《지난달 15일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 ‘아동학대로 오해받던 교사가 자살했습니다’란 청원이 올라왔다. 경기 김포시의 한 어린이집 여교사가 지역 맘(MOM) 카페의 신상 털기와 마녀사냥을 견디지 못해 자살했으니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내용이다. 이 글은 2일 현재 14만8000여 명이 동의했다. 도를 넘은 무차별적인 ‘사이버불링(Cyberbulling)’이 한 젊은 여교사를 죽음으로 몰 만큼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2000년 미국 뉴햄프셔대 아동범죄예방센터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사이버불링’은 인터넷, 스마트폰, e메일 등에서 특정인을 집요하게 괴롭히는 행위를 말한다. 가상공간을 뜻하는 Cyber와 집단따돌림을 지칭하는 bulling의 합성어다. 오프라인에서 벌어지던 왕따 등 집단따돌림 현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과 더불어 사이버 공간으로 확산된 것이다.
김포 어린이집 여교사 자살사건은 사이버불링으로 인한 피해가 얼마나 큰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 여교사는 지난달 11일 아이들을 데리고 가을나들이 행사에 참여했다. 나들이는 별 이상 없이 마무리됐지만 같은 날 밤 늦게 인천·김포 지역 맘 카페에 글 하나가 올라왔다. 한 아이가 이 교사에게 안기려는데 교사는 돗자리 터는 데만 신경 쓰고 아이를 밀쳤다는 내용이었다. 글쓴이는 (밀치는 장면을) 직접 본 것은 아니고 주변 사람들에게 들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글이 올라오자 이 카페에는 해당 여교사를 비난하는 글이 빗발쳤고, 여교사의 실명과 사진도 게시됐다. 다음 날 해당 어린이집에는 항의 전화가 쇄도했다. 누군가의 신고로 경찰관이 찾아오기도 했다고 한다. 해당 여교사는 글이 올라온 지 이틀 만인 13일 새벽 김포의 한 아파트 아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내가 다 짊어지고 갈 테니 여기서 마무리됐으면 좋겠다. 어린이집과 교사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 달라. 미안하다’는 내용의 유서도 발견됐다.
사건 발생 후 사망한 여교사의 어머니는 맘 카페에 글을 올린 사람과 신상 털기에 가담한 불특정 다수를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신상 털기에 가담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정보통신망법 제70조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허위 사실일 경우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더 엄하게 처벌받는다. 해당 맘 카페에는 여교사의 죽음을 추모하는 글이 속속 올라왔지만 이미 뒤늦은 후회일 뿐이었다.
외국에서도 사이버불링의 피해는 심각하다. 올 1월 호주에서는 무분별한 악플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던 소녀 모델 에이미 에버렛(14)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달리(dolly)’라는 애칭으로 잘 알려진 에이미는 호주의 명품 모자 브랜드인 ‘아쿠브라(Akubra)’의 모델로, 호주 농촌의 상징인 카우보이식 모자를 쓴 깜찍한 모습으로 광고에 나와 유명해졌다. 유명세를 탄 에이미는 평소 악성 댓글에 시달려왔다. 부모의 요청으로 악성 댓글 내용이 모두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이 중에는 ‘죽어라’는 말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 카톡 감옥, 떼카, 데이터셔틀
인터넷과 SNS가 발달하는 만큼 사이버불링의 방법도 다양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카톡 감옥’. 카카오톡 감옥의 줄임말로 그룹 채팅방에 참여시킨 후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카톡 지옥’, ‘카톡 감금’이라고도 불린다.
카카오톡 채팅방은 참여자가 방을 나가도 다른 사람이 ‘초대’하면 다시 불러들일 수 있다. 학교나 학급 같은 단체 채팅방에서 누군가를 집단으로 괴롭히려고 작정할 경우 해당자가 방을 나가도 다른 사람이 계속해서 초대를 하는 것이다. 당사자가 초대를 거부하는 기능이 없기 때문에 당하는 사람은 속절없이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카톡 감옥은 프로필 설정의 아이디 검색을 ‘허용’에서 ‘끔’으로 바꾸고 자동 친구 추천, 메시지 도착 알림 등의 설정을 바꾸면 피해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다른 사람들과 정상적인 관계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떼카’는 단체 채팅방 등에 피해 대상을 초대한 후 단체로 욕설을 퍼붓거나 굴욕적인 사진을 공개하는 것. 가장 전형적인 사이버불링 방식이다. 반대로 피해 학생을 카톡 채팅방에 초대한 뒤 여러 사람이 무조건 무시하는 방법도 있다.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이 건네는 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다가 다른 학생이 말을 걸면 일시에 다 같이 열광적으로 대답해주는 것이다.
‘카톡 멤놀’은 ‘카카오톡 멤버 놀이’의 준말로 좋아하는 연예인의 말투와 행동을 모방하는 10대들의 신종 인터넷 사교 문화를 말한다. 모든 일을 주관하는 총괄과 부총괄, 신입 멤버들을 관리하는 출석 관리자, 신입 관리자 등 간부들과 새로 온 신입을 뜻하는 ‘임관’ 등으로 구성되는데 간부들은 신입들의 행동에 모두 관여한다고 한다. 신입들은 간부의 허가 없이는 채팅방을 나가서도 안 되고, 욕설과 음담패설도 허락을 받아야 할 수 있다. 이런 멤버 놀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을 ‘종합병원’이라 부르며 비하한다. 일정 기간마다 싫어하는 멤버를 투표로 뽑아 일명 ‘물갈이’라고 불리는 강제 퇴장도 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리벤지 포르노(revenge porno)도 넓게 보면 사이버불링의 한 형태다.
○ 별것 아니라는 인식도 문제
한국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정보화진흥원의 지난해 사이버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6000명(학생 4500명, 성인 1500명) 중 사이버 폭력을 경험한 사람은 4명 중 1명꼴인 26%에 달했다.
피해 수단으로는 ‘채팅, 메신저’가 45.6%로 가장 많았고, 온라인게임이 38.8%, 페이스북 등 SNS가 35.3%, 커뮤니티가 6.8%, e메일 또는 문자 6.6%, 개인 홈페이지 2.1% 순이었다. 사이버폭력을 행사한 적이 있다고 답한 사람들은 가해 이유로 ‘상대방이 싫거나 화가 나서’(42.2%)를 가장 많이 들었다. ‘상대가 먼저 그런 행동을 해서 또는 보복하기 위해서’가 40%로 뒤를 이었으며, ‘그저 장난이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라는 대답도 23.8%에 달했다.
특기할 만한 점은 피해를 입었음에도 상당수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같은 조사에서 피해자들에게 ‘사이버폭력에 왜 직접적인 대응을 하지 않느냐’고 묻자 무려 76%가 ‘별일 아니라고 생각해서’라고 답했다. 23.6%는 ‘신고해도 소용없을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27.1%는 ‘나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생각해서’라고 답했다. 이 밖에 ‘상대가 누구인지 몰라서’(7.9%), ‘더 심한 따돌림을 받을까봐’(4.8%),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할지 몰라서’(4.4%), ‘고자질하는 것 같아서’(4.4%), ‘상대가 보복할까봐’(3.5%) 등을 이유로 들었다.
전문가들은 “사이버폭력은 오프라인에서 벌어지는 물리적 폭력보다 주변에서 알아차리기가 더 힘든 만큼 문제가 드러났을 때는 심각한 상태인 경우가 많다”며 “가정과 학교에서 교육을 통해 사이버폭력의 문제점을 끊임없이 교육하고, 다양한 소통을 통해 이상 징후를 파악해 대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자살까지 부르는 사이버불링
2000년 미국 뉴햄프셔대 아동범죄예방센터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사이버불링’은 인터넷, 스마트폰, e메일 등에서 특정인을 집요하게 괴롭히는 행위를 말한다. 가상공간을 뜻하는 Cyber와 집단따돌림을 지칭하는 bulling의 합성어다. 오프라인에서 벌어지던 왕따 등 집단따돌림 현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과 더불어 사이버 공간으로 확산된 것이다.
김포 어린이집 여교사 자살사건은 사이버불링으로 인한 피해가 얼마나 큰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 여교사는 지난달 11일 아이들을 데리고 가을나들이 행사에 참여했다. 나들이는 별 이상 없이 마무리됐지만 같은 날 밤 늦게 인천·김포 지역 맘 카페에 글 하나가 올라왔다. 한 아이가 이 교사에게 안기려는데 교사는 돗자리 터는 데만 신경 쓰고 아이를 밀쳤다는 내용이었다. 글쓴이는 (밀치는 장면을) 직접 본 것은 아니고 주변 사람들에게 들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글이 올라오자 이 카페에는 해당 여교사를 비난하는 글이 빗발쳤고, 여교사의 실명과 사진도 게시됐다. 다음 날 해당 어린이집에는 항의 전화가 쇄도했다. 누군가의 신고로 경찰관이 찾아오기도 했다고 한다. 해당 여교사는 글이 올라온 지 이틀 만인 13일 새벽 김포의 한 아파트 아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내가 다 짊어지고 갈 테니 여기서 마무리됐으면 좋겠다. 어린이집과 교사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 달라. 미안하다’는 내용의 유서도 발견됐다.
사건 발생 후 사망한 여교사의 어머니는 맘 카페에 글을 올린 사람과 신상 털기에 가담한 불특정 다수를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신상 털기에 가담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정보통신망법 제70조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허위 사실일 경우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더 엄하게 처벌받는다. 해당 맘 카페에는 여교사의 죽음을 추모하는 글이 속속 올라왔지만 이미 뒤늦은 후회일 뿐이었다.
외국에서도 사이버불링의 피해는 심각하다. 올 1월 호주에서는 무분별한 악플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던 소녀 모델 에이미 에버렛(14)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달리(dolly)’라는 애칭으로 잘 알려진 에이미는 호주의 명품 모자 브랜드인 ‘아쿠브라(Akubra)’의 모델로, 호주 농촌의 상징인 카우보이식 모자를 쓴 깜찍한 모습으로 광고에 나와 유명해졌다. 유명세를 탄 에이미는 평소 악성 댓글에 시달려왔다. 부모의 요청으로 악성 댓글 내용이 모두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이 중에는 ‘죽어라’는 말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 카톡 감옥, 떼카, 데이터셔틀
인터넷과 SNS가 발달하는 만큼 사이버불링의 방법도 다양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카톡 감옥’. 카카오톡 감옥의 줄임말로 그룹 채팅방에 참여시킨 후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카톡 지옥’, ‘카톡 감금’이라고도 불린다.
카카오톡 채팅방은 참여자가 방을 나가도 다른 사람이 ‘초대’하면 다시 불러들일 수 있다. 학교나 학급 같은 단체 채팅방에서 누군가를 집단으로 괴롭히려고 작정할 경우 해당자가 방을 나가도 다른 사람이 계속해서 초대를 하는 것이다. 당사자가 초대를 거부하는 기능이 없기 때문에 당하는 사람은 속절없이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카톡 감옥은 프로필 설정의 아이디 검색을 ‘허용’에서 ‘끔’으로 바꾸고 자동 친구 추천, 메시지 도착 알림 등의 설정을 바꾸면 피해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다른 사람들과 정상적인 관계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떼카’는 단체 채팅방 등에 피해 대상을 초대한 후 단체로 욕설을 퍼붓거나 굴욕적인 사진을 공개하는 것. 가장 전형적인 사이버불링 방식이다. 반대로 피해 학생을 카톡 채팅방에 초대한 뒤 여러 사람이 무조건 무시하는 방법도 있다.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이 건네는 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다가 다른 학생이 말을 걸면 일시에 다 같이 열광적으로 대답해주는 것이다.
‘카톡 멤놀’은 ‘카카오톡 멤버 놀이’의 준말로 좋아하는 연예인의 말투와 행동을 모방하는 10대들의 신종 인터넷 사교 문화를 말한다. 모든 일을 주관하는 총괄과 부총괄, 신입 멤버들을 관리하는 출석 관리자, 신입 관리자 등 간부들과 새로 온 신입을 뜻하는 ‘임관’ 등으로 구성되는데 간부들은 신입들의 행동에 모두 관여한다고 한다. 신입들은 간부의 허가 없이는 채팅방을 나가서도 안 되고, 욕설과 음담패설도 허락을 받아야 할 수 있다. 이런 멤버 놀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을 ‘종합병원’이라 부르며 비하한다. 일정 기간마다 싫어하는 멤버를 투표로 뽑아 일명 ‘물갈이’라고 불리는 강제 퇴장도 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리벤지 포르노(revenge porno)도 넓게 보면 사이버불링의 한 형태다.
○ 별것 아니라는 인식도 문제
한국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정보화진흥원의 지난해 사이버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6000명(학생 4500명, 성인 1500명) 중 사이버 폭력을 경험한 사람은 4명 중 1명꼴인 26%에 달했다.
피해 수단으로는 ‘채팅, 메신저’가 45.6%로 가장 많았고, 온라인게임이 38.8%, 페이스북 등 SNS가 35.3%, 커뮤니티가 6.8%, e메일 또는 문자 6.6%, 개인 홈페이지 2.1% 순이었다. 사이버폭력을 행사한 적이 있다고 답한 사람들은 가해 이유로 ‘상대방이 싫거나 화가 나서’(42.2%)를 가장 많이 들었다. ‘상대가 먼저 그런 행동을 해서 또는 보복하기 위해서’가 40%로 뒤를 이었으며, ‘그저 장난이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라는 대답도 23.8%에 달했다.
특기할 만한 점은 피해를 입었음에도 상당수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같은 조사에서 피해자들에게 ‘사이버폭력에 왜 직접적인 대응을 하지 않느냐’고 묻자 무려 76%가 ‘별일 아니라고 생각해서’라고 답했다. 23.6%는 ‘신고해도 소용없을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27.1%는 ‘나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생각해서’라고 답했다. 이 밖에 ‘상대가 누구인지 몰라서’(7.9%), ‘더 심한 따돌림을 받을까봐’(4.8%),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할지 몰라서’(4.4%), ‘고자질하는 것 같아서’(4.4%), ‘상대가 보복할까봐’(3.5%) 등을 이유로 들었다.
전문가들은 “사이버폭력은 오프라인에서 벌어지는 물리적 폭력보다 주변에서 알아차리기가 더 힘든 만큼 문제가 드러났을 때는 심각한 상태인 경우가 많다”며 “가정과 학교에서 교육을 통해 사이버폭력의 문제점을 끊임없이 교육하고, 다양한 소통을 통해 이상 징후를 파악해 대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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