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 왕좌’ 노리는 인공 다이아몬드

동아일보

입력 2018-10-22 03:00 수정 2018-10-2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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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비어스에서 만든 인공 다이아몬드. 불순물이 없는 높은 순도의 다이아몬드를 빠르게 만들 수 있다. 약간의 불순물을 넣어 미학적인 평가도 높이고 있다. 드비어스 제공
문재인 대통령을 따라 유럽 순방길에 오른 김정숙 여사가 15일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아폴론관에서 형형색색의 거대 다이아몬드가 여럿 박힌 루이 15세의 왕관을 관람했다. 다이아몬드는 그리스어로 부정을 뜻하는 ‘아’와 정복을 뜻하는 ‘다마스’가 합쳐진 단어다. ‘정복할 수 없는 것’이란 뜻이다. 과거에는 강력한 권력이나 막대한 부가 없는 이상 결코 소유할 수 없는 돌이었다.

최근 다이아몬드 산업에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전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약 85조 원 규모)의 70%를 점유하는 영국 드비어스사가 지난달 27일 천연 다이아몬드급의 가치를 갖는 보석용 인공 다이아몬드 브랜드 ‘라이트박스’를 출시했다. 미국의 ‘다이아몬드 파운드리’와 러시아의 ‘뉴 다이아몬드 테크놀로지’ 등 경쟁사에서 30∼40% 낮은 가격에 천연 다이아몬드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하자 드비어스사가 선제적으로 새로운 시장의 문을 연 것이다.

라이트박스는 세공하기 전 기준으로 1캐럿(질량 200mg) 다이아몬드가 90만 원 수준이다. 기존의 천연 다이아몬드(최대 800만 원) 가격의 9분의 1수준이다. 스테퍼니 리긴스 라이트박스 책임연구원은 “기존에는 다이아몬드가 만들어지는 데 10억 년 이상 걸렸다”며 “우리는 50년 이상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세공할 수 있는 크기의 다이아몬드를 2주 만에 실험실에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아무리 기술이 좋다 해도, 사람이 만든 다이아몬드가 천연 보석에 버금가는 가치를 가지려면 몇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다이아몬드는 단순한 보석이다. 재료는 오직 탄소 하나고, 이것이 3차원의 일정하고 규칙적인 구조를 가진다.

자연에서는 이런 조건을 완벽히 만족시키는 다이아몬드를 찾기 힘들다. 수억 년 이상 높은 압력과 온도를 받아야 가능한데, 이 과정에서 질소 등의 불순물이 섞여 들어가기 쉽기 때문이다. 불순물은 종류가 다양한데, 질소가 들어가면 노란색이나 갈색을, 붕소가 들어가면 파란색을 띤다. 광산에서 나오는 다이아몬드의 최소 95%가 이 같은 불순물이 많아 아무리 가공을 해도 보석으로서의 가치가 없다.

크기와 잘린 모양도 중요하다. 결정의 형태에 따라 잘리는 결이 결정되는데, 아무리 큰 덩어리를 캐내도 결이 좋지 못하면 보석으로 쓸 수 있는 부분이 작아진다. 상품 가치가 있는 다이아몬드를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인공 다이아몬드는 이런 조건을 만족시키는 데 유리하다. 밀폐된 곳에서 탄소만을 이용해 빠르게 만들기 때문에 불순물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결도 고르다. 대표적인 제조 방법은 두 가지다. 고온고압법은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이 개발한 기술로, 약 3000도의 온도와 지상의 10만 배의 압력(10만 기압)을 가해 다이아몬드를 만든다.

플라스마를 이용한 화학기상증착법(CVD)은 진공 용기 내부에 메탄과 수소가스를 주입한 뒤 마이크로파 등을 이용해 온도를 3000도 이상으로 높여 기체를 제4의 물질 상태인 플라스마로 바꾼다. 이때 메탄에서 분해돼 나오는 많은 양의 탄소가 바닥에 막을 형성하면서 다이아몬드로 성장하게 된다. 고온고압법보다 속도가 빨라 요즘 널리 쓰인다. 최근에는 1시간에 0.006mm씩 다이아몬드를 키울 수 있다. 일주일이면 1캐럿의 다이아몬드를 생성할 수 있는 속도다. 라이트박스도 이 방법을 이용해 3300도 온도에서 다이아몬드를 만들고 있다.

역설적으로, 인공 다이아몬드는 너무 완벽해서 가치가 떨어진다. 다이아몬드는 불순물이 없을수록 무색투명해 가치가 높지만, 그렇다고 불순물이 제로면 미적으로 아름답지 않다. 불순물이 아주 조금 들어가야 빛이 반사됐을 때 은은한 빛이 감돌고 아름답다. 리긴스 책임 연구원은 “그 때문에 라이트박스의 다이아몬드도 불순물이 살짝 들어가도록 화학적인 조절을 가한 다음, 최적의 다이아몬드를 선별해 상품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선 1987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일진다이아몬드가 공동으로 고온고압법에 기초한 인공다이아몬드 합성 기술을 확보했다. GE와 드비어스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다. 일진다이아몬드의 공업용 다이아몬드는 반도체나 태양광판 제조 산업 등에 널리 활용되고 있다. 당시 연구에 참여했던 이욱성 KIST 전자재료연구단 책임연구원은 “세계적 규모의 기업들이 실험실에서 순도 높은 다이아몬드를 얻는 기술을 확보하면서 다이아몬드 수요에도 변화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며 “실속을 따지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인공 다이아몬드 인기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김진호 동아사이언스 기자 tw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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