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점-카톡 드나들며 1020 탐구… SKT, 지친 청춘 다독이다
장윤정 기자
입력 2018-10-17 03:00 수정 2018-10-17 03:00
새 브랜드 ‘0’ 내세워 신세대 공략
○ 젊은 사원들이 주축 돼 1020세대 관찰
1020세대와의 진정한 공감을 위해 SK텔레콤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기존 틀을 깼다. 경험이 많은 10년 차 이상 고참 매니저들에게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겨 왔던 전통에서 벗어나 신입사원과 2, 3년 차 새내기 직원을 주축으로 태스크포스를 구성했다. 태스크포스에 참여한 SK텔레콤 박상욱 매니저는 “인력 구성도 새로웠지만 그보다 더 파격적이었던 것은 매출이나 가입자 수와 같은 정량적인 목표가 핵심성과지표(KPI·Key Performance Indicator)로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가입자 수와 같은 목표 대신 이들에게 주어진 특명은 ‘1020세대의 니즈를 제대로 읽어, 그들의 공감을 살 브랜드를 만들라’는 것이었다. 사실 어떻게 보면 가입자 수를 채우는 것보다 더 어려운 목표였다. 10대를 모아놓고 인터뷰를 해봤지만 묻는 질문에만 겨우 단답형으로 답하는 그들의 진짜 속내를 알기란 어려웠다. 이들은 전략을 바꿨다. 설문조사와 포커스 그룹 인터뷰 대신 그들이 속내를 털어놓는 곳을 뒤져가며 6개월 이상 천천히 그들을 관찰했다. 고등학교 앞 분식집을 헤매는 것은 기본이요, 지인들을 총동원해 초대한 10대들과 카카오톡 단체 채팅 룸에서 6개월 이상 대화를 나눴다. 1020세대 유튜버들의 일상이 담긴 ‘브이로그’, 280만여 명의 대학생이 수업일정 관리, 생활정보 공유를 위해 활용하고 있는 애플리케이션 ‘에브리타임’, 익명 커뮤니티인 ‘대나무숲’ 등 각종 커뮤니티도 그들의 탐구 대상이었다.
수백 시간의 카톡 대화와 손품, 발품을 판 끝에 서서히 1020세대의 니즈를 파악할 수 있었다. 문자와 전화보다 데이터 소비량이 높은 ‘모바일 네이티브’라는 소비자적 특성은 그들의 일부일 뿐이었다. 학업에 치이고, 대학생이 된 뒤에도 또다시 취업 준비를 위해 스펙 쌓기 경쟁을 벌이고, 자기 자신을 들여다볼 시간을 갖지 못한 채 쉼 없이 달리는 그들의 맨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 물량 공세 대신 진정성 있는 소통
SK텔레콤은 마케팅 비용을 쏟아붓고 할인 공세를 하기보다는 ‘0’을 통해 지친 1020세대에게 진정성 있는 응원을 보내기로 했다. 그래서일까. ‘0’은 1020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한 요금제 ‘0플랜’뿐만 아니라 다양한 콘텐츠로 구성되어 있다. ‘스테이션 0’은 SK텔레콤이 SM엔터테인먼트와 손잡고 1020세대들의 미래를 응원하는 메시지가 담긴 음원을 선보이는 문화 프로젝트. 가수 태연과 멜로망스가 협업한 ‘Page 0’을 시작으로, EXO의 멤버 찬열, 세훈의 ‘위 영(We Young)’ 등 발표되는 음원마다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런가 하면 ‘0순위 여행’은 스펙 쌓기, 아르바이트 등으로 바쁜 20대를 응원하기 위한 여행 지원 프로젝트다. 이용 중인 통신사에 상관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게끔 문턱도 낮췄다.
1020세대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응원을 건네려 한 취지가 통한 것인지 반응은 뜨겁다. ‘스테이션 0’을 통해 선보인 음원들의 유튜브 뮤직비디오 조회수는 무려 3850만 건을 돌파했고, 0브랜드의 ‘영한동 홈페이지’ 방문자는 한 달 만에 160만 명을 넘어섰다. ‘0순위 여행’에는 100명을 모집하는 데 무려 1만여 명이 지원해 경쟁률 100 대 1을 기록했다.
사실 매출만 생각하면 음원을 출시하고, 타사 이용자에게도 여행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것이 언뜻 납득이 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투자라고 생각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승윤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미래고객을 확보하고, 차세대 먹거리를 준비해야 하는 기업들에 1020세대는 포기할 수 없는 핵심 타깃”이라며 “1020세대가 ‘궁금해하는 브랜드’를 만드는 게 모든 기업들의 목표”라고 전했다. SK텔레콤 역시 ‘0’을 발판 삼아 브랜드 이미지를 젊게 바꿔 나간다는 복안이다. 실제로 ‘0’ 브랜드 론칭 전에 조사한 ‘SK텔레콤 하면 떠오르는 상위 5개 이미지’는 △품질이 좋은 △생활에 도움이 되고 편리한 △믿음이 가는 △앞서가는 △고객을 배려하는 등이었다. 하지만 조사에 따르면 0브랜드는 △젊은 △유쾌하고 즐거운 △독특하고 새로운 △기발한 △지금까지와 다른 등의 이미지를 연상시키고 있었다.
서성원 SK텔레콤 MNO사업부장은 “‘0’ 브랜드는 당장의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함이 아닌, 1020세대에게 긍정적인 호감을 얻기 위한 시도”라며 “기존 통신 서비스의 틀을 벗어나 1020세대와 소통하고 이들의 미래를 응원하며 하나의 문화적 브랜드로 ‘0’이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SK텔레콤은 20대를 대상으로 일상을 벗어나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갖는 ‘0순위 여행’을 기획해 참가 지원을 받은 뒤 면접을 거쳐
50개팀 100명을 선발했다. 사진은 ‘0순위 여행’을 떠나게 될 참가자들이 이달 6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한 카페에 모여
출정식을 하는 모습. SK텔레콤 제공
1999년 광고 속 신비로운 빨간 머리 소녀와 암호 같은 브랜드명 ‘TTL’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Time to love(사랑할 시간)’와 같이 TTL의 뜻을 추리하는 열성 팬들이 쏟아졌다. TTL 덕분에 SK텔레콤은 당시 1020세대의 폭발적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TTL세대가 어느덧 30, 40대로 성장하면서 SK텔레콤도 점차 젊은층과 멀어졌다. ‘통화 품질은 좋지만 중장년층이 주로 사용한다’는 이미지가 생겨나면서 SK텔레콤의 고민도 깊어졌다. 향후 소비를 주도할 미래 고객들과 심리적인 거리를 좁혀야만 했다. 올 8월 SK텔레콤은 TTL을 출시한 지 약 20년 만에 브랜드 ‘0(영·Young)’을 들고 다시 1020세대를 겨냥하고 나섰다.○ 젊은 사원들이 주축 돼 1020세대 관찰
1020세대와의 진정한 공감을 위해 SK텔레콤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기존 틀을 깼다. 경험이 많은 10년 차 이상 고참 매니저들에게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겨 왔던 전통에서 벗어나 신입사원과 2, 3년 차 새내기 직원을 주축으로 태스크포스를 구성했다. 태스크포스에 참여한 SK텔레콤 박상욱 매니저는 “인력 구성도 새로웠지만 그보다 더 파격적이었던 것은 매출이나 가입자 수와 같은 정량적인 목표가 핵심성과지표(KPI·Key Performance Indicator)로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가입자 수와 같은 목표 대신 이들에게 주어진 특명은 ‘1020세대의 니즈를 제대로 읽어, 그들의 공감을 살 브랜드를 만들라’는 것이었다. 사실 어떻게 보면 가입자 수를 채우는 것보다 더 어려운 목표였다. 10대를 모아놓고 인터뷰를 해봤지만 묻는 질문에만 겨우 단답형으로 답하는 그들의 진짜 속내를 알기란 어려웠다. 이들은 전략을 바꿨다. 설문조사와 포커스 그룹 인터뷰 대신 그들이 속내를 털어놓는 곳을 뒤져가며 6개월 이상 천천히 그들을 관찰했다. 고등학교 앞 분식집을 헤매는 것은 기본이요, 지인들을 총동원해 초대한 10대들과 카카오톡 단체 채팅 룸에서 6개월 이상 대화를 나눴다. 1020세대 유튜버들의 일상이 담긴 ‘브이로그’, 280만여 명의 대학생이 수업일정 관리, 생활정보 공유를 위해 활용하고 있는 애플리케이션 ‘에브리타임’, 익명 커뮤니티인 ‘대나무숲’ 등 각종 커뮤니티도 그들의 탐구 대상이었다.
수백 시간의 카톡 대화와 손품, 발품을 판 끝에 서서히 1020세대의 니즈를 파악할 수 있었다. 문자와 전화보다 데이터 소비량이 높은 ‘모바일 네이티브’라는 소비자적 특성은 그들의 일부일 뿐이었다. 학업에 치이고, 대학생이 된 뒤에도 또다시 취업 준비를 위해 스펙 쌓기 경쟁을 벌이고, 자기 자신을 들여다볼 시간을 갖지 못한 채 쉼 없이 달리는 그들의 맨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 물량 공세 대신 진정성 있는 소통
SK텔레콤은 마케팅 비용을 쏟아붓고 할인 공세를 하기보다는 ‘0’을 통해 지친 1020세대에게 진정성 있는 응원을 보내기로 했다. 그래서일까. ‘0’은 1020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한 요금제 ‘0플랜’뿐만 아니라 다양한 콘텐츠로 구성되어 있다. ‘스테이션 0’은 SK텔레콤이 SM엔터테인먼트와 손잡고 1020세대들의 미래를 응원하는 메시지가 담긴 음원을 선보이는 문화 프로젝트. 가수 태연과 멜로망스가 협업한 ‘Page 0’을 시작으로, EXO의 멤버 찬열, 세훈의 ‘위 영(We Young)’ 등 발표되는 음원마다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런가 하면 ‘0순위 여행’은 스펙 쌓기, 아르바이트 등으로 바쁜 20대를 응원하기 위한 여행 지원 프로젝트다. 이용 중인 통신사에 상관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게끔 문턱도 낮췄다.
1020세대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응원을 건네려 한 취지가 통한 것인지 반응은 뜨겁다. ‘스테이션 0’을 통해 선보인 음원들의 유튜브 뮤직비디오 조회수는 무려 3850만 건을 돌파했고, 0브랜드의 ‘영한동 홈페이지’ 방문자는 한 달 만에 160만 명을 넘어섰다. ‘0순위 여행’에는 100명을 모집하는 데 무려 1만여 명이 지원해 경쟁률 100 대 1을 기록했다.
사실 매출만 생각하면 음원을 출시하고, 타사 이용자에게도 여행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것이 언뜻 납득이 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투자라고 생각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승윤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미래고객을 확보하고, 차세대 먹거리를 준비해야 하는 기업들에 1020세대는 포기할 수 없는 핵심 타깃”이라며 “1020세대가 ‘궁금해하는 브랜드’를 만드는 게 모든 기업들의 목표”라고 전했다. SK텔레콤 역시 ‘0’을 발판 삼아 브랜드 이미지를 젊게 바꿔 나간다는 복안이다. 실제로 ‘0’ 브랜드 론칭 전에 조사한 ‘SK텔레콤 하면 떠오르는 상위 5개 이미지’는 △품질이 좋은 △생활에 도움이 되고 편리한 △믿음이 가는 △앞서가는 △고객을 배려하는 등이었다. 하지만 조사에 따르면 0브랜드는 △젊은 △유쾌하고 즐거운 △독특하고 새로운 △기발한 △지금까지와 다른 등의 이미지를 연상시키고 있었다.
서성원 SK텔레콤 MNO사업부장은 “‘0’ 브랜드는 당장의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함이 아닌, 1020세대에게 긍정적인 호감을 얻기 위한 시도”라며 “기존 통신 서비스의 틀을 벗어나 1020세대와 소통하고 이들의 미래를 응원하며 하나의 문화적 브랜드로 ‘0’이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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