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男’ 지목돼 속수무책 유포… 생사람 잡는 ‘SNS 지라시’

이지훈 기자

입력 2018-08-06 03:00 수정 2018-08-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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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까지 허위사실 피해 확산

5년 차 직장인 박모 씨(33)는 두 달 전 다른 회사에 다니는 대학 후배로부터 받은 ‘지라시’(사설 정보지)를 보고 경악했다.

‘박 씨가 같은 회사의 유부녀 상사, 인턴 등과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글에 박 씨의 이름, 나이, 회사명이 적시돼 있었고 박 씨의 사진까지 첨부돼 있었다. 완전히 거짓이었고 박 씨는 지난달 경찰서에 고소장을 냈다. 하지만 이미 이 지라시는 널리 퍼진 상태여서 속수무책이었다.

박 씨는 “이미 다른 회사에까지 퍼졌는데 우리 회사 사람들은 오죽하겠느냐”며 “누가 무슨 억하심정을 갖고 이런 걸 뿌렸는지 모르겠지만 마주치는 사람마다 일일이 해명할 수도 없고 미칠 노릇”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일반인의 사생활이 적힌 ‘일반인 지라시’가 유포되는 일이 최근 들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유명인을 대상으로 했던 지라시가 일반인들에게까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 과장되거나 허위사실이지만 불특정 다수의 ‘퍼나르기’로 인해 피해자들은 큰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

직장인 A 씨(26·여)도 지라시에 이름이 올라 피해를 입었다. ‘A 씨가 여러 명의 사내 남자 동료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내용이 지난달부터 온라인상에 퍼졌다. A 씨는 물론이고 상대 남성들의 사진, 이름, 나이, 결혼 여부 등도 함께였다. A 씨가 근무하는 회사 관계자는 “명백한 허위사실이며 생산과 유포에 관여한 이들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반인 사생활 털기는 2016년 등장한 ‘강남패치’가 시초 격이다. 당시 이 SNS 계정에는 주로 ‘화려한 외모나 사생활로 화제를 모은 일반인 SNS 스타들이 실제로는 유흥업 종사자’라는 주장과 함께 실명, 성형 전후 사진, 전 애인과 가족사진까지 올라왔다. 근래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지라시는 여성혐오 등의 목적보다는 타인의 사생활을 흥밋거리로 유포하는 경우가 많다.

유명인들은 허위 정보가 돌면 언론을 통해 해명할 길이라도 있지만 일반인에게는 ‘반론권’조차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다. 허위사실이 유포되더라도 이를 바로잡을 창구가 전혀 없다. 한 달 전 피해를 당한 B 씨(27·여)는 “결혼을 하고도 불륜을 저질렀다는 거짓 지라시가 돌았는데 해명할 방법도 없고 호소할 데도 없어서 죽고 싶었다”며 울먹였다.

지라시를 생산하는 행위뿐 아니라 무비판적으로 유포하는 행위는 모두 범죄다. 사이버 명예훼손이나 모욕죄에 해당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받는다. 처벌되는 건수도 크게 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2012년 6000여 건에 불과했던 사이버 명예훼손·모욕 범죄 건수는 5년 만에 2배 이상으로 늘어 지난해에는 1만3348건에 달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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