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시계 항공기 자동차 남성 로망이 만났다

동아일보

입력 2013-07-04 03:00 수정 2013-07-04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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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틀리와 함께한 브라이틀링 에어쇼, 영국 턴힐서 체험해보니

스위스 시계 브랜드 브라이틀링에 비행은 단순한 마케팅 수단이 아니라 브랜드의 DNA로 불린다. 매년 전 세계 우수 고객과 미디어, 유통업체 관계자들을 초청해 비행을 즐기게 하며 브랜드의 정체성을 공유한다. 사진은 비행기 날개 위에서 다양한 묘기를 펼치는 브라이틀링의 윙 워커 팀. 브라이틀링 제공
진땀이 났다. 여기는 상공 3500m 수송기 안. 유리창 밖으로 하얀 구름과 까마득하게 멀리 조그만 집들이 보였다. 하늘로 15분여 동안 오르기만 하던 수송기가 상승을 멈추고, 문이 열렸다.

‘여기서 뛰어내려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현실을 뇌가 인지하기도 전에 스카이다이빙 강사가 기자를 데리고 그냥 뛰어내려 버렸다. 다행히 못 뛰어내리겠다고 발버둥칠 틈이 주어지질 않았다. 몇 초가 지났을까. 하얀 구름과 아름다운 초원, 염소 떼 무리가 보일락 말락 한다. 50초 동안 차가운 공기와 맞닥뜨리며 자유낙하하는 순간, 몸을 짓누르던 걱정거리와 스트레스도 날아가는 것 같았다.

드디어 낙하산이 펴졌다. 강사가 어깨를 치며 큰 소리로 말했다.

“저 구름을 좀 봐요.”

어릴 때부터 구름 속을 거니는 상상을 했지만 그게 현실이 될지는 몰랐다. 눈앞의 구름을 폭삭 만져보고 싶어 손을 뻗어 봤다.

처음 떠나온 공군기지가 점점 가까이 보이기 시작했다. 부드럽게 착지하자 ‘브라이틀링(Breitling)’이라고 쓰인 낙하산도 잔디밭에 길게 늘어뜨려졌다.

지난달 26일 스위스 고급 시계 브랜드 브라이틀링의 에어쇼가 열린 영국 서부 작은 마을 턴힐의 영국 공군기지는 상상이 현실로 이뤄지는 공간으로 탈바꿈됐다. 올해 행사는 더 특별했다. 영국 럭셔리 카의 대명사 ‘벤틀리’까지 가세했기 때문이다.


▼비행기와 벤틀리의 경주… 지상최고 퍼포먼스에 탄성 연발시계, 비행기, 자동차의 만남


시계, 비행기, 자동차의 만남

날개 달린 B로고를 ‘우연히’ 공유하고 있는 브라이틀링과 벤틀리는 10년 동안 협업해오며 서로를 ‘천생연분’이라고 부른다. 벤틀리 장인이 차량에 들어갈 로고를 깎는 모습(왼쪽), 지난달 영국 턴힐 공군기지에서 열린 브라이틀링 MX2 비행기와 벤틀리 콘티넨털 GT 스피드의 경주 모습. 브라이틀링 제공
일반 기업의 시각으로 브라이틀링의 에어쇼를 보면 잘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다.

첫째, 회사 내 거대한 항공팀 조직. 회사 내에 제조, 영업 및 마케팅 등 다른 부서와 동등하게 큰 항공팀이 있다. 25년 이상 경력의 화려한 공중기술 묘기를 자랑하는 유명한 파일럿 나이절 램은 이 회사의 직원이다. 브라이틀링 관계자는 “마케팅 조직 산하의 일개 팀이 아니라 회사 내에 독립된 거대한 본부로 항공팀이 존재한다는 것은 비행이 브라이틀링의 DNA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비행과 브라이틀링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로고의 두 날개만 봐도 알 수 있다. 1884년 창립 이래 줄곧 ‘파일럿을 위한 최고의 시계’를 개발하는 데 주력해 왔다. 1900년대 초에 이미 파일럿들이 필요로 했던 속도, 거리, 환율 계산용 크로노그래프(계기판)를 선보였고, 1939년에는 영국 공군 ‘로열 에어포스’의 공식 항공시계 제조업체가 되기도 했다.

둘째, 아무도 시계 신제품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스카이다이빙, 윙 워커(비행기 날개 위에 앉아 비행하는 것), 헬리콥터 등 다양한 비행 체험을 하면 그뿐, ‘이래서 우리 시계가 좋다’는 말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12년째 전 세계의 기자들과 우수 고객, 유통업체 관계자들을 초청해 그저 비행을 느껴보라고만 한다.

효과는 확실하다. 백 마디 말보다 하루 종일 이어지는 비행 체험이 브라이틀링 브랜드를 마음에 각인시키게 한다. 비행에 대한 열정, 하늘에 대한 정복 의지라는 브라이틀링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공유하는 행사인 셈이다.

브라이틀링의 에어쇼는 매년 스위스 부옥스 공항에서 약 2주 동안 열려 왔지만 올해는 특별히 영국 서부 지역을 찾은 이유가 있다. 인근에 벤틀리의 공장이 있다. 벤틀리와 브라이틀링의 긴밀한 협업 관계가 올해로 10주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영국에서 열린 것이다.

로망이 현실이 되

벤틀리 GT 시리즈. 차량 색깔부터 시작해 가죽시트 스티치 방식까지 모든 것을 주문자가 선택할 수 있다. 브라이틀링 제공
지난달 26일 공군기지를 찾은 사람들은 모두 탄성을 질렀다. 왼쪽에는 브라이틀링 비행기 10여 대가, 오른쪽에는 벤틀리의 최고급 라인 차들이 도열해 ‘시승’의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계, 항공기, 자동차라는 남성들의 로망 세 가지가 한데 어우러져 환상적인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활주로에서는 보기 드문 ‘세기의 경주’도 열렸다. 비행기와 자동차의 속도 대결이다. 사회를 맡은 이도 전설적인 사람이다. 프랑스에서 열리는 자동차 경주대회 ‘르망 24시’에서 5번 우승한 데렉 벨 씨였다. 그는 70대지만 여전히 자동차에 대한 사랑과 지식으로 벤틀리의 브랜드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벨 씨는 “나도 르망에서 5번 우승했고, 벤틀리도 5번 우승했다. 그게 인연이 되어 10여 년째 벤틀리와 함께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란색 브라이틀링의 MX2 비행기와 벤틀리의 콘티넨털 GT 스피드가 맞붙었다. 당연히 속도로는 차가 비행기를 따라갈 수 없었다. 하지만 낮게 비행하며 한 바퀴를 휘익 도는 비행기와 이를 쫓는 벤틀리 자동차의 모습이 멋졌다.

오전에 비행기를 탔으니 오후에는 벤틀리를 타보기로 했다. 벨 씨는 “안전을 위해 속도는 최대 시속 160마일(약 258km)까지만 내면 된다”고 했다. 첫 번째 차량은 아직 판매되지도 않은 플라잉 서퍼의 뉴 모델이다. 트랙에서 액셀러레이터를 꽉 밟아 시속 160마일 정도까지 올린 뒤 빨간색 푯말 앞에서 급브레이크를 밟아 차의 성능을 테스트해볼 수 있는 시승이었다. 서울 시내에서 규정 속도인 시속 60km를 지키며 달리던 기자에게 시속 160마일은 공포의 속도였다. 가속기를 밟자마자 시속 100마일을 훌쩍 넘겨버려 빨간색 푯말을 보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자꾸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렇게 빨리 속도가 오르더니 브레이크를 밟자마자 거짓말처럼 멈춘다.

이번에는 공군기지 밖에서 벤틀리의 최고급 라인 ‘물산’을 몰아보기로 했다.

“영국에서 집을 살 만한 차죠. 한국의 최고 부자에게 권할 만합니다.”

옆에 탄 벤틀리 관계자가 말했다. 큰 차이지만 핸들링하기에 어려움은 없었다. 갑자기 영국 왕실 사람들이 타는 차는 뭘까 궁금해 물어보니 금세 ‘벤틀리’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여왕은 벤틀리를 몇 대 가지고 있고, 찰스 왕세자는 애스턴 마틴을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정교한 차 조립라인, 정밀+완벽+품격의 명품을 만드는 ‘공방’▼

벤틀리 공장 르포 & 주요 컬렉션


벤틀리 탁상용 시계(위), 벤틀리 B06의 가죽 스트랩과 스틸 스트랩, 벤틀리 GT II(아래 왼쪽부터).
지난달 27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영국 크루의 벤틀리 공장을 찾았다.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접점지대에 위치한 영국 서부의 작은 도시 크루를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애초에 벤틀리의 공장이 크루에 자리 잡은 것은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이 있다.

1938년 당시 벤틀리의 모회사였던 롤스로이스가 군수용 비행기 엔진을 만들기 위해 세운 일종의 비밀 공장인 셈이다. 당시에는 영국 전역에 숨어 있는 ‘그림자 군수 공장’이 많았다고 한다.

이후 1998년 벤틀리의 모회사는 폴크스바겐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크루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명품 자동차를 만들고 있었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벤틀리 차량은 연 1만 대 안팎. 특히 최고급 라인인 물산은 일주일에 30대 정도만 생산한다. 자동차 공장이 아닌 명품 가구회사나 가방 공방을 방문한 것 같았다. 함께 공장을 찾은 브라이틀링 관계자들은 “보이지 않는 곳까지 손으로 정밀하게 세공하는 시계 공장과 닮은 곳”이라며 “명품은 디테일에 대한 집착과 열정에서 나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디테일에 대한 열정

올해 선보인 브라이틀링 포 벤틀리 컬렉션 중 벤틀리 B05 유니타임은 스틸과 레드 골드 소재가 나와 있다. 쉽게 24개의 모든 타임존의 시간을 읽을 수 있어 여행을 즐기는 이들에게 알맞다.브라이틀링 제공
“자동차 한 대에 들어가는 베니어(얇은 나무판)는 모두 같은 나무에서 나온 겁니다. 나무마다 모양이 다르다 보니 재미난 에피소드도 있어요. 우연히 나무 무늬가 해골 모양이 나온 거죠. 고객에게 배달하기 전에 발견해서 다시 만들었어요.”

먼저 우드 숍을 찾았다. ‘자동차 공장에 웬 나무 공방?’이라고 생각할 때 투어를 맡은 필 워드 씨가 벽에 걸린 나무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워드 씨는 “나무 하나를 얇게 잘라 판 30여 장을 만들면 그 30장은 모양이 똑같다”며 “이걸 반으로 잘라서 미러 매칭(양쪽 판의 모양이 서로 거울을 마주 보는 것처럼 일치하는 것)으로 만들면 한 차에는 똑같은 미러 매칭 무늬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공장에서 10년 동안 미러 매칭 일만 하고 있다는 폴 피셔 씨가 시연해 보였다. 얇은 베니어 하나를 반으로 자른 뒤 데칼코마니처럼 보이게 두 개를 재봉틀로 꿰맨다. 그는 일본으로 갈 차량에 들어갈 나무판과 케이스를 만들고 있었다. 주문서에는 일반 자동차의 10배는 넘을 만한 다양한 옵션이 적혀 있었다.

메이플, 올리브 애시, 월넛 등 자동차에 들어갈 나무 종류를 고른 다음에도 선택 사항은 무궁무진했다. 낡은 듯해 보이는 표면 처리를 할 것인지, 색깔을 무엇으로 입힐 것인지, 탄소섬유를 입힐 것인지….

우드 숍 옆 가죽 라인은 가방 공장을 떠올리게 했다. 직원들이 앉아서 카 시트와 핸들용 가죽을 말 그대로 한 땀 한 땀 꿰매고 있었다. 스티치 방식도 주문할 때 선택할 수 있다. 워드 씨는 “중간에 실이 끊어지면 처음부터 다시 꿰맨다”고 말했다. 한 사람이 크로스 스티치를 하는 데에만 37시간이 걸린다.

핸들 파트에서는 직원들이 포크를 들고 있다. 포크 사이사이의 크기만큼 땀을 만들기 위해서란다. 물산 자동차 한 대에는 소 17마리의 가죽이 필요하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질이 나쁘면 버린다.

원하는 색깔은 무엇이든 택할 수 있고, 가죽 시트에 들어갈 자수도 원하는 대로 놓아준다. 벤틀리 관계자는 “한 중국인 부호의 아내는 ‘헬로 키티’의 팬이라며 핑크색을 주문했고, 이탈리아의 유명 디자이너는 연두색을 택했다”며 “벤틀리의 팬인 베컴 부부는 카 시트에 이름을 새기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자동차의 핵심인 조립 라인도 일반 자동차 공장과 달랐다. 특히 물산 라인은 멈춰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일반 자동차가 조립 코너에서 다른 코너로 이동하는 데 90초가 걸린다면 물산은 한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브라이틀링 포 벤틀리 컬렉션

벤틀리의 공장을 보고 나니 ‘브라이틀링 포 벤틀리’ 컬렉션의 디자인이 더욱 새롭게 느껴졌다. 브라이틀링 관계자는 “두 브랜드는 정밀한 기계에 대한 열정, 명성과 성능의 결합, 완벽함에 대한 전통 그리고 날개 달린 B로고 등 럭셔리 회사로서의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며 “브라이틀링 포 벤틀리 컬렉션은 두 브랜드의 본질인 우아함과 업적, 기품과 전문성을 담은 시계 라인”이라고 말했다. 올해 협업 10주년을 맞아 브라이틀링 자사 무브먼트를 달아 더 특별해진 컬렉션을 소개한다.

▽벤틀리 탁상용 시계=올해 최초로 선보인 시계로 벤틀리 차량의 컨트롤 버튼에서 모티브를 얻은 오톨도톨한 베젤이 특징이다. 사이즈 120mm, 무게 800g의 이 시계에는 공장의 우드 숍에서 봤던 인기 베니어가 도입됐다. 애시, 월넛, 다크 월넛 3가지 색상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벤틀리 B05 유니타임=특허 받은 브라이틀링의 자사 무브먼트를 탑재한 월드타임 크로노그래프 시계. 언제든지 24개의 모든 타임존의 시간을 즉시 읽을 수 있는 탁월한 사용자 편의성을 자랑한다. 벤틀리 자동차 휠 테두리 디자인을 차용한 독창적인 디자인이 돋보인다.

▽벤틀리 B06=8분의 1초까지 정확한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브라이틀링 고유의 혁신적인 크로노그래프가 탑재돼 있다. 유명한 벤틀리 차량의 라디에이터 그릴 디자인의 입체적인 모티브가 반영된 베젤은 고성능 엔진을 살짝 보여주는 듯한 오픈형 다이얼이 위를 장식하고 있다.

▽벤틀리 GT II=빨간색 가죽 시트를 장착한 벤틀리 콘티넨털 GT를 떠올리게 만드는 다이내믹한 시계. 벤틀리 고유 색깔에서 영감을 받은 블랙과 레드, 블랙과 그린 컬러가 다이얼 중앙에서 바깥쪽으로 번져나가는 듯한 그러데이션 효과가 특징이다.

턴힐·크루=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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