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된 바람개비… 풍력발전기 아래서 누리는 ‘바람멍’의 여유[청계천 옆 사진관]

양회성 기자

입력 2024-02-27 10:30 수정 2024-02-2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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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제주시 구좌읍 ‘동복·북촌풍력발전단지’ 위로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다. 기피 시설인 매립장과 채석장 주변에 자리 잡은 이곳은 발전시설 설치 과정에서 경관 훼손을 줄인 모범 사례로 꼽힌다. 제주도 동편인 함덕해변과 김녕해변 중간쯤에 설치된 15대의 풍력발전기(총 30MW)는 아침 해와 함께 장관을 이뤄내며 발전기로 향하는 길 또한 숲과 갈대밭이 잘 어우러져 멋들어진 풍경을 자랑한다. 제주=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붉은 하늘 아래 저 멀리 바람개비가 보인다. 언덕 위 뾰족한 기둥과 날개 사이로 태양이 머리를 내밀지만, 이내 옅은 구름 뒤로 수줍게 숨어버린다.

이른 아침, 제주시 조천읍에서 마주한 이 풍경은 모닥불의 ‘불멍’이나 파도가 주는 ‘물멍’만큼이나 아름답다. 바람을 전기로 바꿔주는 풍력발전기의 거대한 날개가 풍성한 ‘바람멍’을 선사하고 있다. 볼거리 많은 대표 관광지 제주도의 또 다른 매력이다.

제주시 한경면 신창리에서 고사리까지 이어지는 ‘신창풍차해안도로’는 최근 종영한 드라마 ‘웰컴투 삼달리’의 배경지로 관광객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저녁 시간대에 맞춰 가면 조명과 아우러진 해상발전기를 볼 수 있어 또 다른 묘미가 있다. 제주=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인천, 강원, 부산, 목포 등 전국에서 풍력발전 사업이 진행 중이지만 제주도에서 이뤄지는 풍력발전은 의미가 남다르다. 2030년까지 탄소 없는 섬으로 거듭나겠다는 목표 아래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고 있는 제주도에 풍력발전은 현재 어떠한 에너지원보다 대량으로 깨끗한 전기를 생산할 방안이다.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제동목장에 3kW급 풍력발전기가 세워진 1975년 2월 27일을 기념해 한국풍력산업협회가 올해부터 매년 2월 27일을 한국 풍력의 날로 삼기도 했다.

3만여 평의 광활한 부지에 총 13기(15MW)의 풍력발전기가 세워진 ‘가시리 풍력발전단지’는 국내 최초로 공모를 통해 발전 부지가 선정된 곳이다. 거대한 발전기 아래로 농가에서 콩 무, 더덕 등 밭작물을 키우는 이색적인 광경이 펼쳐진다. 특히 유채꽃과 벚꽃이 피는 봄이나 갈대밭이 어우러지는 가을에는 사진 맛집으로 관광객이 몰린다. 3~4월경 열리는 유채꽃 축제에 맞춰 방문하면 다양한 공연과 즐길 거리를 함께 만날 수 있다. 제주=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데다 높은 산맥이 등줄기를 지탱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풍력발전은 효율적이고 이상적인 에너지 생산 수단으로 평가된다. 바다와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만으로도 발전할 수 있어 화력발전이나 원자력 발전과는 달리 에너지원 구입 비용이 크게 줄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기를 생산하는 단계에서 온실가스나 오염물질이 배출되지 않아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도 최소화할 수 있다. 초원의 목장이나 어촌마을 등에도 풍력발전기가 자리 잡을 수 있는 이유다. 2022년 기준 전국 115곳의 발전단지에 777기의 풍력발전기가 운영돼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경북 영양군 영양읍 무창리 ‘영양 풍력발전단지’는 3.3MW급 발전기 18대가 설치된 1단지와 영양군 석보면 삼의리에 3.2MW급 발전기 10대가 설치된 2단지로 구성돼 있다. 영양 군민과 발전기 인근 마을 주민들의 투자를 받아 건설해 풍력발전을 통해 얻은 이익을 공유하는 동시에 지역 인재를 채용하는 등 지역상생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영양=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경북 영덕읍 창포리에 자리잡은 ‘영덕 풍력발전단지’는 24개의 풍력발전기(총 39.6MW)로 이뤄져 있다. ‘해맞이 길’이라는 도로명 주소에서 엿볼 수 있듯 동해와 맞닿아 있으며 발전단지 인근에는 생태문화체험공원, 축구장, 비행기 전시장 등 다양한 체험을 기대할 수 있다. 무엇보다 탁 트인 산꼭대기에서 풍력발전기와 바다를 바라보면 남다른 해방감이 느껴진다. 영덕=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탈탄소를 위한 재생에너지 확보는 기업과 나아가 국가의 경쟁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나라가 자연환경은 물론, 철강·조선업계 등 풍력발전과 밀접한 산업에서 전통적으로 강한 면모를 보여온 것은 다행인 부분이다. 전국 지자체도 풍력발전을 미래 산업으로 점찍고 앞다퉈 경쟁하고 있다.

파란 하늘 아래 거대한 세 개의 날개가 배경이 될 ‘인생샷 포인트’가 늘어난다는 것은 카메라를 든 사람으로서 반가운 일이다. 전국 각지에서 마주하게 될 아름다운 ‘바람멍’을 기대해 본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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