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바다 품은 광양… 지조의 동백잎은 별빛처럼 빛나고[수토기행]
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입력 2023-12-02 01:40 수정 2023-12-02 01:40
전남 광양
《‘철의 도시’ 전남 광양이 역사적 스토리를 품은 문화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광양 앞바다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정유 7년전쟁을 끝내기 위해 하늘에 목숨을 건 맹세를 한 곳이자, 민족시인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세상에 빛을 볼 수 있도록 육필 원고를 보관해 온 곳이기도 하다. 통일신라 말 도선국사의 자취가 담긴 옥룡사지 동백숲 또한 눈이 부시도록 반짝거려 겨울 산책 코스로 인기가 높다.》
순천에서 남해까지 20여 km에 이르는 바다에서 치러진 전쟁을 ‘광양만 해전’이라고도 부른다. 이순신 장군이 순천왜성 앞바다에서 일본 군과 전투를 벌인 이후 남해군 노량 앞바다 전투에서 사망하기까지 60여 일간 지속적으로 이어진 해상 전쟁이기 때문이다. 일본 측은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협에서 일본 함대와 전투를 벌이는 틈을 타 고니시 유키나가 군이 순천왜성에서 도망할 수 있었던 이 전쟁에 대해서만 유일하게 패배를 인정한다. 우리가 임진·정유 7년전쟁을 ‘이긴 전쟁’이라고 규정하는 것도 광양만에서의 장군의 숭고한 희생 덕분이다.
웅장하게 서 있는 이순신대교(총 연장 2260m)는 이순신 장군이 태어난 해(1545년)를 기려 주탑 사이 거리가 1545m로 건설된 해상 교량이다. 콘크리트로 세워진 주탑으로는 세계 최고 높이(270m)라고 한다.
국문학자 정병욱(1922∼1982)은 대일항쟁기의 연희전문학교 시절 윤동주와 인연을 맺은 인물이다. 정병욱은 선배 윤동주가 일본으로 유학 가며 맡긴 시집 원고를 자기 집 마루 밑에다 꽁꽁 숨겨 보관했다. 1945년 윤동주가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사망한 후, 광복 후인 1948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그의 유고 시집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일제하에서 윤동주 유고를 목숨처럼 지켜낸 정병욱 가족 덕분이다.
백두대간의 북쪽 끝인 북간도 룽징(龍井) 출신인 윤동주의 시혼(詩魂)이 백두대간의 남쪽 끝자락인 망덕산의 정병욱 가옥에서 살아났다는 점이 이채롭다. 망덕포구에는 윤동주의 시를 모티브로 한 여러 조형물들이 설치돼 있어 발길을 멈추게 한다. 최근 영국 국왕 찰스 3세가 버킹엄궁에서 개최한 윤석열 대통령과의 국빈 만찬 중 낭송했던 윤동주의 ‘바람이 불어’ 시비도 새겨져 있다.
동백숲은 통일신라 말 선승이자 풍수 대가인 도선국사(827∼898)가 옥룡사의 땅 기운을 보강하기 위해 심었다는 전설을 전한다. 도선국사에게 따라다니는 ‘비보(裨補)풍수’의 현장인 것이다.
비보풍수는 특정한 땅에 그에 어울리는 특정한 나무나 화초류 등을 심고 가꿈으로써 활성화한 땅 기운(지기·地氣)이 사람에게 이로움을 제공하는 환경적 행위를 가리킨다.
기자조선을 세운 기자가 조선의 평양 땅에다 버드나무를 심게 했다는 일화도 그런 예다. 기자는 조선의 풍속이 너무 강하고 모진 것을 보고 평양의 백성들에게 버드나무를 심도록 장려했다. 이는 부드러운 성질을 가지고 있는 버드나무를 심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인심을 순화시키는 효과를 거두기 위한 것이었다. 평양을 버드나무 유(柳) 자를 써서 ‘류경(柳京)’으로 부르는 배경이다. 마찬가지로 동백꽃은 지고한 사랑, 생명의 영속성과 순환 등을 상징한다고 한다. 도선국사는 백두대간의 끝자락에 해당하는 이곳에서 우리나라 지기가 순환을 통해 영원히 이어지도록 염원하는 차원에서 동백나무를 심었던 것일까.
도선국사는 통일신라 때 창건한 옥룡사에서 35년간 머물다 입적했다고 전한다. 번성했던 사찰은 1878년 화재로 폐허가 됐고 당시 심었다는 동백나무만이 무성하게 숲을 이루고 있다.
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드론으로 촬영한 광양시 광양만 일대. 정유재란 당시 최후의 격전지였던 이곳은 광양시와 여수시를 잇는 이순신대교(가운데)가 당시를 기념하듯 웅장하게 서 있다.
《‘철의 도시’ 전남 광양이 역사적 스토리를 품은 문화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광양 앞바다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정유 7년전쟁을 끝내기 위해 하늘에 목숨을 건 맹세를 한 곳이자, 민족시인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세상에 빛을 볼 수 있도록 육필 원고를 보관해 온 곳이기도 하다. 통일신라 말 도선국사의 자취가 담긴 옥룡사지 동백숲 또한 눈이 부시도록 반짝거려 겨울 산책 코스로 인기가 높다.》
● 정유재란 최후·최대의 전쟁터
1598년 12월 16일 초겨울 새벽. 전남 광양의 앞바다는 폭풍전야처럼 고요했다. 그러나 잔잔한 바다 물결과는 달리 조선 판옥선 함대에는 한껏 당긴 활시위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오늘 진실로 죽음을 각오하오니, 하늘에 바라옵건대 반드시 이 적을 섬멸하게 하여 주소서.”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은 목숨을 걸고 하늘에 맹세했다. 이어 일본 함대와 최후의 결전이 벌어졌다. 임진·정유 7년전쟁의 최대 규모 결전이 광양만 바다에서 전개됐던 것이다. 전남 광양시 구봉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일몰 풍경. 햇빛을 받아 영롱히 반짝이는 동백잎이 인상적인 이곳은 야경 명소로도 인기가 높다.
해발 473m의 광양시 구봉산 전망대. 425년 전 바로 그 광양만 앞바다는 물론이고 순천, 여수, 하동, 남해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이순신 장군이 숨통을 끊으려 했던 왜장(倭將) 고니시 유키나가 군의 주둔지인 순천왜성, 조선과 명나라 연합수군의 전진 기지였던 묘도와 장도, 저 멀리 남해군 노량대교와 이순신 장군 순국 장소인 관음포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순천에서 남해까지 20여 km에 이르는 바다에서 치러진 전쟁을 ‘광양만 해전’이라고도 부른다. 이순신 장군이 순천왜성 앞바다에서 일본 군과 전투를 벌인 이후 남해군 노량 앞바다 전투에서 사망하기까지 60여 일간 지속적으로 이어진 해상 전쟁이기 때문이다. 일본 측은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협에서 일본 함대와 전투를 벌이는 틈을 타 고니시 유키나가 군이 순천왜성에서 도망할 수 있었던 이 전쟁에 대해서만 유일하게 패배를 인정한다. 우리가 임진·정유 7년전쟁을 ‘이긴 전쟁’이라고 규정하는 것도 광양만에서의 장군의 숭고한 희생 덕분이다.
구봉산 전망대의 메탈아트 봉수대.
구봉산 전망대에서는 역사적 장소를 무료 망원경으로 세밀히 살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출과 일몰을 감상할 수 있다. 이곳은 바다 위로 피어나는 물안개, 광양 컨테이너 부두를 오가는 대형 선박 등 이국적인 항구 야경을 즐길 수 있는 명소로도 유명하다. 석양이 바다를 물들이기 시작하면 전망대의 은빛 메탈아트 봉수대(9.4m)가 금빛으로 빛나고 광양제철소, 이순신대교 등 야경이 황홀하게 펼쳐진다. ● 백두대간 끝에서 부활한 윤동주의 시혼(詩魂)
윤동주 시인의 유고를 보관해 온 정병욱 가옥.
광양에서는 여명의 감동과 노을의 여운을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명소가 있다. 550리 섬진강이 마침내 그 유장한 흐름을 마무리 짓고 바다로 흘러드는 망덕포구다. 임진왜란 당시 판옥선을 만들던 선소였던 이곳은 민족시인 윤동주의 친필 유고를 보존한 ‘정병욱 가옥’(1925년 건립)으로도 유명하다. 국문학자 정병욱(1922∼1982)은 대일항쟁기의 연희전문학교 시절 윤동주와 인연을 맺은 인물이다. 정병욱은 선배 윤동주가 일본으로 유학 가며 맡긴 시집 원고를 자기 집 마루 밑에다 꽁꽁 숨겨 보관했다. 1945년 윤동주가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사망한 후, 광복 후인 1948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그의 유고 시집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일제하에서 윤동주 유고를 목숨처럼 지켜낸 정병욱 가족 덕분이다.
백두대간의 북쪽 끝인 북간도 룽징(龍井) 출신인 윤동주의 시혼(詩魂)이 백두대간의 남쪽 끝자락인 망덕산의 정병욱 가옥에서 살아났다는 점이 이채롭다. 망덕포구에는 윤동주의 시를 모티브로 한 여러 조형물들이 설치돼 있어 발길을 멈추게 한다. 최근 영국 국왕 찰스 3세가 버킹엄궁에서 개최한 윤석열 대통령과의 국빈 만찬 중 낭송했던 윤동주의 ‘바람이 불어’ 시비도 새겨져 있다.
‘별헤는 다리’(왼쪽)와 ‘해맞이다리’(오른쪽)로 연결된 배알도(가운데)는 정원으로 꾸며져 놀멍, 물멍 명소로 인기를 끈다.
한편 망덕포구 산책로에서 바다 쪽으로는 배알도라고 불리는 자그마한 섬이 있다. 망덕산을 향해 배알하는 형국에서 그 이름을 얻었다고 전한다. 오래된 고목, 푸른 잔디가 펼쳐진 배알도 해변의 섬 정원은 물멍과 놀멍 명소로 유명하고, 섬 정상에는 일출과 일몰 및 섬 주변을 감상할 수 있는 해운정이 있다. ‘해맞이다리’. 왼편 멀리 ‘별헤는 다리’가 보인다.
배알도는 망덕포구에서 섬을 잇는 ‘별헤는 다리’와 섬에서 맞은편 수변공원을 잇는 ‘해맞이 다리’가 독특한 운치를 자랑한다. 2개의 해상보도교는 유려한 곡선미로 눈길을 끈다. ● 옥룡사지의 동백숲 산책로
백계산(505m)의 옥룡사지 동백숲도 빼놓을 수 없는 역사 산책로다. 옥룡사지 주변에는 수령 100년 이상의 동백나무 1만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동백나무 군락지(천연기념물 제489호)다.동백숲은 통일신라 말 선승이자 풍수 대가인 도선국사(827∼898)가 옥룡사의 땅 기운을 보강하기 위해 심었다는 전설을 전한다. 도선국사에게 따라다니는 ‘비보(裨補)풍수’의 현장인 것이다.
비보풍수는 특정한 땅에 그에 어울리는 특정한 나무나 화초류 등을 심고 가꿈으로써 활성화한 땅 기운(지기·地氣)이 사람에게 이로움을 제공하는 환경적 행위를 가리킨다.
기자조선을 세운 기자가 조선의 평양 땅에다 버드나무를 심게 했다는 일화도 그런 예다. 기자는 조선의 풍속이 너무 강하고 모진 것을 보고 평양의 백성들에게 버드나무를 심도록 장려했다. 이는 부드러운 성질을 가지고 있는 버드나무를 심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인심을 순화시키는 효과를 거두기 위한 것이었다. 평양을 버드나무 유(柳) 자를 써서 ‘류경(柳京)’으로 부르는 배경이다. 마찬가지로 동백꽃은 지고한 사랑, 생명의 영속성과 순환 등을 상징한다고 한다. 도선국사는 백두대간의 끝자락에 해당하는 이곳에서 우리나라 지기가 순환을 통해 영원히 이어지도록 염원하는 차원에서 동백나무를 심었던 것일까.
도선국사는 통일신라 때 창건한 옥룡사에서 35년간 머물다 입적했다고 전한다. 번성했던 사찰은 1878년 화재로 폐허가 됐고 당시 심었다는 동백나무만이 무성하게 숲을 이루고 있다.
동백숲이 조성된 옥룡사지(위쪽 원형 빈터)와 운암사.
옥룡사지에서 인근 운암사로 이어지는 동백나무 오솔길은 상쾌한 숲 향기가 마음의 근심을 씻어주는 치유의 산책로다. 겨울철에 걸어 보는 동백숲은 또 다른 멋이 있다. 붉은 꽃송이 하나 달려 있지 않지만 한낮의 햇빛을 한껏 머금은 동백잎은 대낮에 반짝이는 별을 보는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옥룡사지와 소망의 샘(아래).
옥룡사지에는 ‘소망의 샘’이라는 샘물이 솟아난다. 이 물을 마신 뒤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됐다는 일화가 안내판에 새겨져 있다. 그래서 옥룡사지를 방문한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며 샘물을 마시기도 한다. 여유가 있다면 옥룡사지 동백나무숲 인근의 도선국사마을, 백운산 자연휴양림도 들러볼 만하다.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비즈N 탑기사
- ‘은퇴’ 추신수, SSG 프런트로 새 출발…육성 파트 맡을 듯
- ‘179㎝’ 최소라 “5주간 물만 먹고 45㎏ 만들어…그땐 인간 아니라 AI”
- 이승환 “난 음악하는 사람…더 이상 안 좋은 일로 집회 안 섰으면”
- 치킨집 미스터리 화재…알고보니 모아둔 ‘튀김 찌꺼기’서 발화
- 구의원 ‘엄마 찬스’로 4년간 583회 무료주차한 아들 약식기소
- 알바생 월급서 ‘월세 10만원’ 빼간 피자집 사장…“너도 상가 건물 쓰잖아”
- “40년전 무임승차 이제야 갚아요” 부산역에 200만원 놓고 사라진 여성
- 맹승지, 사랑니 빼고 예뻐졌다?…“원래 얼굴보다 괜찮은 듯”
- 배우 김승우, 리틀야구연맹 회장 출마 “새로운 도약”
- 아이유 광고모델 쓴 기업에 불똥?…“해지했다” vs “오히려 잘 팔릴듯”
- ‘텍스트 힙’의 부상… 밀리의서재 서비스 체험기
- 머스크가 비행기에서 즐긴 이 게임…카카오게임즈도 덕 볼까
- “월 평균 70GB 쓰셨네요. 이 요금제 어때요?”…통신료 추천서비스 나온다
- 웜GPT로 피싱 문구 생성…“내년 AI 악용한 사이버 위협 증가”
- 아이패드 부진에 태블릿 OLED 주춤…“2026년부터 본격 성장”
- 동막골 체험-논길 자전거 여행… 농촌 매력 알린 크리에이투어
- 착한 아파트 ‘평택 브레인시티 수자인’ 분양
- 올해 신규설치 앱 1~3위 모두 ‘해외 플랫폼’…테무 압도적 1위
- 수천 년 역사 품은 ‘전망 맛집’ 이스탄불 4대 타워… 남다른 스케일로 다가오는 감동
- [르포]흑백요리사 중식 쉐프들 맛의 비결은 바로 ‘이금기’… 136년 맛의 비밀은 창업자 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