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장관, 공론화 거쳐 전세제도 손본다

황재성 기자

입력 2023-05-24 13:00 수정 2023-05-24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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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기자들과 만나 전세제도 개편 등에 대해 말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제공

“전세를 제거하려는 접근은 하지 않겠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23일(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전세처럼) 사회에 뿌리내린 제도가 생긴 데에는 참여자들의 여러 이유가 있고, 이런 행동의 뿌리는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원 장관은 불과 일주일 전인 지난 16일 “전세제도가 그동안 해온 역할이 있지만 이제 수명을 다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이는 시장에서 ‘전세무용론’이나 ‘전세폐기론’으로 받아들여졌다. 이후 시장에서는 정부의 전세제도 폐기정책의 실현 가능성과 실효성에 대한 뜨거운 논란이 펼쳐졌다.

원 장관의 폴란드 발언은 이러한 논란을 잠재우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원 장관은 앞으로 추진할 임대차제도의 개선방안에 대한 밑그림을 소개하면서 전세제도와 관련한 금융시스템 개선방안 등을 언급했다. 하지만 전세사기나 역전세 등으로 전세 문제가 사회적인 관심사로 떠오른 시점에서 주무부처 장관이 성급한 발언으로 시장의 혼란을 부추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 전세제도 유지하면서 보완해 나가겠다
원 장관은 현재 우크라이나 재건사업 참여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폴란드 바르샤바를 찾았다. 23일 간담회는 이를 취재하기 위해 원 장관과 동행한 기자단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 원 장관은 “전세를 선호하는 참여자나 전세가 해온 역할을 한꺼번에 무시하려는 접근은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무제한 전세대출을 끼고 갭(gap) 투자를 하고, 경매로 넘기는 것 빼고는 보증금을 돌려받을 방법이 없는데도 천연덕스럽게 재테크 수단인 것처럼 얘기 되는 부분은 손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즉 전세제도를 없애려는 시도는 하지 않겠지만 시스템은 보완하겠다는 것이다.

보완방법에 대해서는 “일정 숫자 이상의 갭 투자를 금지 또는 제한하는 방안을 논의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즉 갭 투자 규모가 무한하게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대출 받거나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경우 여러 채를 살 수 없게 하겠다는 것이다.

또 “선순위 보증금, 근저당 등과 같은 기존 채무가 있을 경우에 보증금을 제한하는 방안”도 언급했다. 담보가치가 남아 있는 부분의 일정 비율만큼만 전세 보증금으로 받도록 한도를 두고, 나머지는 월세를 받도록 하자는 것이다. 임차인(세입자)의 보증금을 보장 받을 수 있는 안전판을 만들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원 장관은 이어 “(전세제도 보완을 포함한 임대차제도 개선방안에)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도 반영할 것”이라며 “공론화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나아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국토부는 국토연구원을 통해 주택 임대차법 개선을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용역 결과는 내년 1월 이후 나올 예정인데, 이 과정에서 정부의 일방통행은 없다는 의미이다.

● 에스크로제 도입 없다
원 장관은 16일 언급했던 에스크로(ESCROW·결제대금예치제도) 도입에 대해서도 “가장 극단적으로 에스크로까지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뜻으로 당시 언급한 것”이라며 도입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당시 시장에서는 원 장관의 에스크로 도입 발언을 전세제도의 무력화 조치로 받아들였다.

에스크로는 인터넷이나 휴대전화 등을 이용한 전자상거래에서 물품대금을 거래 완료 때까지 제 3자에게 예치해 두는 것이다. 반면 전세제도는 세입자가 맡긴 전세보증금을 집주인(임대인)이 재테크 등의 종자돈(시드머니)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 기반하고 있다. 따라서 에스크로가 도입되면 세입자가 전세보증금을 신탁사나 보증기관 등에 맡겨야 하고, 집주인은 이자에 해당하는 수익 정도만 기대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임대인들의 집단 반발 등을 불러왔다. 원 장관도 이를 의식한 듯 “넘겨받은 보증금을 전액 금융기관에 맡기고 쓰지 말라고 하면 전세를 하지 말라는 얘기”라며 “현재까지 검토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에스크로 도입 언급은 원 장관의 전세제도 무용론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의 빌미가 되기도 했다. 부동산 관련 에스크로제는 2000년 공인중개사법(당시 부동산중개업법)이 개정될 때 도입됐다. 당시 개정 법에 따르면 중개업자는 거래계약의 이행이 완료될 때까지 거래당사자에게 계약금 및 중도금을 금융기관·신탁회사 등에 예치하도록 권고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계약이 파기될 경우 계약금 등의 반환채무의 이행이 보장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현재 국내에서 부동산 에스크로를 운용하는 회사는 없다. 2004년 7월 대한공인중개사협회(현 한국공인중개사협회)와 다올부동산신탁(현 하나자산신탁) 등이 농협의 전자금융시스템을 활용한 상품 판매에 나섰다가 실패했다. 원인은 비싼 0.3%에 달하는 높은 수수료에 있었다.

이에 국토부는 2016년 2월 발표한 ‘부동산 서비스산업 발전방안’의 일환으로 2016년 9월 퍼스트아메리칸권원보험(FA)과 직방, 우리은행 등과 협약을 맺고 다시 상품을 선보였지만 또다시 호응을 얻지 못했다. 이번에는 0.05%에 불과한 낮은 수수료가 문제가 됐다. 은행은 시큰둥했고, 보험사도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았다. 여기에 부동산 중개업소도 의무사항도 아니고, 이득이 없자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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