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당근은 없이 “임금 올려라”… 재계 “경제살릴 생각있나”
김준일기자 , 김창덕 기자 , 홍수용기자
입력 2015-04-03 03:00 수정 2015-04-03 03:00
[경제수렁 속 한국/韓, 정-관-재계 3각 갈등]
일본 경제가 정부, 정치권, 재계의 ‘3각 협력’ 덕에 기지개를 켜는 것과 달리 한국은 ‘3각 갈등’으로 인해 경기 회복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공무원연금 개혁, 노동시장 구조개혁 등 민감한 정책에 대해 뒷짐을 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마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단기적 성과를 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재계는 정부와 정치권의 경기부양 의지에 의문을 제기하며 신규 고용과 투자를 보류하는 기류다. 한국 경제가 이대로 구조개혁의 적기를 놓치면 올해 하반기 이후 미국 금리 인상 등 글로벌 시장 격변기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당근’ 없이 요구만 내놓는 정부
지난달 이완구 국무총리,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이 입각하면서 총리와 17개 부처 장관 가운데 6명이 정치인 출신으로 채워졌다. 의원내각제를 시행 중인 일본처럼 한국도 정부와 국회가 공조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는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일본에서는 소비세 인상 등 고통이 따르는 개혁 과제에 대해 3각 공조가 이뤄진 반면 한국 정부는 표에 도움이 되는 단기 과제에 치중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치인 출신 장관들이 조바심을 내고 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내년 4월 총선에 출마하려면 내년 1월 13일 이전에 공직을 사퇴해야 하는데 짧은 기간 내에 ‘성공한 장관’이 되려다 보니 경제 여건을 정밀하게 고려하지 않고 설익은 정책을 쏟아낸다는 것이다.
임금 인상과 사정(司正) 기조가 대표적인 사례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7월 취임 이후 줄곧 경기부양과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구조개혁을 강조했다. 하지만 올 3월 들어 임금 인상을 통한 성장론으로 정책의 궤도를 크게 수정하고 나섰다. ‘소득 주도 성장론’을 주장해온 새정치민주연합은 “정부가 기존 정책을 포기하고 새정치연합의 정책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최 부총리는 “작년 취임 무렵부터 주장해온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때아닌 ‘저작권’ 논란이 벌어진 셈이다.
대내외 요인 때문에 실적이 악화된 기업들은 기업 활동에 도움을 주는 ‘당근’ 없이 무조건 인건비를 올리라는 정부의 요구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노동, 금융, 공공, 교육 등 4대 부문 구조개혁은 미로에 빠졌다. 정부 내에서는 최 부총리가 정치권으로 돌아가기 전 노동구조 개혁이라도 성공하고 나머지 과제를 다음 경제팀으로 넘기는 방안이 최상의 시나리오라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최 부총리로서는 갈등 소지가 많은 구조개혁보다 민심을 얻기 쉬운 임금 인상 등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질 개연성이 크다.
정치인 장관의 지역구와 관련된 정책이 부처의 주요 과제로 부상하기도 한다. 해수부는 지난달 유기준 장관 취임 이후 해운보증기금 설립과 해양경제특별구역법 제정에 주력하고 있다. 유 장관의 출신지인 부산 지역의 호응이 큰 정책이다.
일부 부처는 정치인 출신 장관의 이미지를 높이는 행사에 공을 들이고 있다. 부처가 정치인의 보좌관 역할을 하는 셈이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정치인 장관을 보내다 보니 선거와 연결되는 단기 성과에 치중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위기감 높아진 경제, 불신 커진 재계
정부 정책이 단기 성과 위주로 운영되는 가운데 각종 경제 지표는 위기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4%로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7월(0.3%) 이후 가장 낮았다.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 우려가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3월 수출은 470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4.2% 줄었다. 기업 투자와 가계 소비도 동반 부진에 빠진 상황이다.
재계는 정부와 정치권이 구조개혁이라는 핵심을 두고 변죽만 울리고 있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기업들은 지난달 초 시행된 기업소득환류세제 등에 따라 배당금을 크게 늘렸다. 또 통상임금 확대와 정년 연장이 맞물리면서 비용 부담이 한꺼번에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임금 인상과 채용 확대까지 압박하고 나서자 기업인들 사이에 “너무한 것 아니냐”는 불만이 나온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생존을 건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데 정부와 정치권은 근시안적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다”며 “민간 기업이 판단해야 할 사안까지 ‘감 놔라 배 놔라’ 해선 안 된다”고 성토했다.
재계에서는 정부와 정치권이 여론의 눈치를 보느라 노동구조 개혁에 너무 소극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청년 일자리 확충을 위해선 기성세대의 고통 분담이 필요하지만 기업들에만 부담을 지우고 있다는 주장이다. 자신들의 기득권 지키기에만 집중하고 있는 대기업 노조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곱지 않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지금 같은 불황에 임금 인상과 채용 확대를 동시에 감당할 수 있는 기업은 많지 않다”며 “임금 인상폭을 줄이고 임금피크제를 확대 시행하는 등 기업들도 숨쉴 틈을 줘야 청년 일자리도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종=홍수용 legman@donga.com·김준일 / 김창덕 기자
일본 경제가 정부, 정치권, 재계의 ‘3각 협력’ 덕에 기지개를 켜는 것과 달리 한국은 ‘3각 갈등’으로 인해 경기 회복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공무원연금 개혁, 노동시장 구조개혁 등 민감한 정책에 대해 뒷짐을 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마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단기적 성과를 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재계는 정부와 정치권의 경기부양 의지에 의문을 제기하며 신규 고용과 투자를 보류하는 기류다. 한국 경제가 이대로 구조개혁의 적기를 놓치면 올해 하반기 이후 미국 금리 인상 등 글로벌 시장 격변기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당근’ 없이 요구만 내놓는 정부
지난달 이완구 국무총리,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이 입각하면서 총리와 17개 부처 장관 가운데 6명이 정치인 출신으로 채워졌다. 의원내각제를 시행 중인 일본처럼 한국도 정부와 국회가 공조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는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일본에서는 소비세 인상 등 고통이 따르는 개혁 과제에 대해 3각 공조가 이뤄진 반면 한국 정부는 표에 도움이 되는 단기 과제에 치중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치인 출신 장관들이 조바심을 내고 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내년 4월 총선에 출마하려면 내년 1월 13일 이전에 공직을 사퇴해야 하는데 짧은 기간 내에 ‘성공한 장관’이 되려다 보니 경제 여건을 정밀하게 고려하지 않고 설익은 정책을 쏟아낸다는 것이다.
임금 인상과 사정(司正) 기조가 대표적인 사례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7월 취임 이후 줄곧 경기부양과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구조개혁을 강조했다. 하지만 올 3월 들어 임금 인상을 통한 성장론으로 정책의 궤도를 크게 수정하고 나섰다. ‘소득 주도 성장론’을 주장해온 새정치민주연합은 “정부가 기존 정책을 포기하고 새정치연합의 정책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최 부총리는 “작년 취임 무렵부터 주장해온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때아닌 ‘저작권’ 논란이 벌어진 셈이다.
대내외 요인 때문에 실적이 악화된 기업들은 기업 활동에 도움을 주는 ‘당근’ 없이 무조건 인건비를 올리라는 정부의 요구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노동, 금융, 공공, 교육 등 4대 부문 구조개혁은 미로에 빠졌다. 정부 내에서는 최 부총리가 정치권으로 돌아가기 전 노동구조 개혁이라도 성공하고 나머지 과제를 다음 경제팀으로 넘기는 방안이 최상의 시나리오라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최 부총리로서는 갈등 소지가 많은 구조개혁보다 민심을 얻기 쉬운 임금 인상 등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질 개연성이 크다.
정치인 장관의 지역구와 관련된 정책이 부처의 주요 과제로 부상하기도 한다. 해수부는 지난달 유기준 장관 취임 이후 해운보증기금 설립과 해양경제특별구역법 제정에 주력하고 있다. 유 장관의 출신지인 부산 지역의 호응이 큰 정책이다.
일부 부처는 정치인 출신 장관의 이미지를 높이는 행사에 공을 들이고 있다. 부처가 정치인의 보좌관 역할을 하는 셈이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정치인 장관을 보내다 보니 선거와 연결되는 단기 성과에 치중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위기감 높아진 경제, 불신 커진 재계
정부 정책이 단기 성과 위주로 운영되는 가운데 각종 경제 지표는 위기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4%로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7월(0.3%) 이후 가장 낮았다.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 우려가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3월 수출은 470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4.2% 줄었다. 기업 투자와 가계 소비도 동반 부진에 빠진 상황이다.
재계는 정부와 정치권이 구조개혁이라는 핵심을 두고 변죽만 울리고 있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기업들은 지난달 초 시행된 기업소득환류세제 등에 따라 배당금을 크게 늘렸다. 또 통상임금 확대와 정년 연장이 맞물리면서 비용 부담이 한꺼번에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임금 인상과 채용 확대까지 압박하고 나서자 기업인들 사이에 “너무한 것 아니냐”는 불만이 나온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생존을 건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데 정부와 정치권은 근시안적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다”며 “민간 기업이 판단해야 할 사안까지 ‘감 놔라 배 놔라’ 해선 안 된다”고 성토했다.
재계에서는 정부와 정치권이 여론의 눈치를 보느라 노동구조 개혁에 너무 소극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청년 일자리 확충을 위해선 기성세대의 고통 분담이 필요하지만 기업들에만 부담을 지우고 있다는 주장이다. 자신들의 기득권 지키기에만 집중하고 있는 대기업 노조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곱지 않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지금 같은 불황에 임금 인상과 채용 확대를 동시에 감당할 수 있는 기업은 많지 않다”며 “임금 인상폭을 줄이고 임금피크제를 확대 시행하는 등 기업들도 숨쉴 틈을 줘야 청년 일자리도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종=홍수용 legman@donga.com·김준일 / 김창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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