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보드 맨 위에 ‘KJ CHOI’…그것은 아들 이름이었다
스포츠동아
입력 2013-10-25 07:00 수정 2013-10-25 07:00
서울 용산 최경주재단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최경주. 최경주는 스포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세계적인 골프스타로서 뿐만 아니라 가족이야기 등 ‘인간’ 최경주로서의 이야기도 아낌없이 털어놓았다. 주영로 기자
■ 다시 클럽 짊어지고 리더보드 맨 위 노리는 최경주
1998년 브리티시오픈 당시 장내 선수 소개 때
한국 이름 발음 어려워 ‘경주’를 ‘콩주’라 불러
쉽게 부를 수 있는 ‘KJ’로…코리안 탱크의 탄생
셋째 강준, 아빠 뒤이어 미니골프 대회서 우승
내 이름만 보다가 또 다른 KJ CHOI 보니 뭉클
앞으로 2승 추가…명예의 전당에 이름 올릴 것
한국 남자골프의 간판스타 최경주(43·SK텔레콤). 그가 잠시 클럽을 내려놨다. 편히 쉴 줄 알았는데 그게 마음대로 안 된다.
그가 바쁘게 움직였다. 지난 13일 자신의 이름을 걸고 개최한 ‘최경주-CJ인비테이셔널’을 끝낸 뒤 관훈클럽 강연, 완도어린이 초청 골프클리닉, 후원의 밤, 자선골프대회 참석 등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 쓰고 있다.
최경주는 24일부터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CIMB클래식에서 2013∼2014시즌 첫 스타트를 끊었다. 말레이시아로 떠나기 전 서울 용산에 위치한 최경주재단 사무실에서 그와 마주했다.
프로골퍼를 벗은 그린 밖의 ‘인간’ 최경주는 어떤 모습일까.
● ‘최경주’, ‘KJ CHOI’가 되다
1998년 브리티시오픈. 최경주는 그날을 잊을 수 없다. 그는 처음으로 영국 땅을 밟는 영광을 누렸다. 컷을 통과하고 본선까지 진출했다. 3라운드 1번홀에서 장내 아나운서의 소개가 이어졌다.
“프럼 사우스 코리아 ‘콩주 초이’”
박수가 쏟아졌지만 최경주의 귀를 거슬리는 게 하나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게 씁쓸했다.
“아나운서가 나를 소개를 하는데 이름을 ‘콩주 초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다음날에도 소개를 하면서 또 ‘콩주’라고 불렀다. 그래서 아나운서에게 ‘콩주’가 아니고 ‘경주’라고 가르쳐 줬다. 그런데도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아나운서에게 ‘내 이름을 어떻게 부르는 것이 좋겠느냐’라고 물었더니 ‘이름의 앞글자만 따서 KJ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이름도 쉽고 발음도 잘 됐다. 그날로 내 이름은 ‘최경주’에서 ‘KJ CHOI’가 됐다.”
‘KJ CHOI’라는 이름은 그렇게 해서 탄생됐다. 우연일지 모르지만 그로부터 1년 뒤 최경주는 미국 PGA 투어 퀄리파잉스쿨을 통과하며 한국인 최초로 PGA 투어 입성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PGA 투어로 진출한 그는 당시 지었던 ‘KJ CHOI’라는 이름을 쓰게 됐고 미국 팬들은 그의 이름을 쉽게 기억해줬다.
지금까지 ‘최경주’로 살아왔던 그는 ‘KJ CHOI’로 다시 태어났다.
● 대한민국은 나의 스폰서
2000년 미국 땅을 밟았다. 영어 한 마디 하지 못했던 그는 주눅 들었다. 스스로를 알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느 날 눈에 확 들어오는 한 가지를 발견했다.
“선수들이 골프백이나 신발, 모자 등에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의미 있는 로고를 새겨 넣고 다니는 걸 봤다. 호주 선수는 캥거루, 캐나다 선수는 단풍잎 등 다양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어떤 로고를 새겨 넣을까 고민하다가 태극기를 선택했다.”
처음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저 다른 선수들처럼 자신을 표현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나 막상 태극마크를 새겨 넣은 뒤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희한하게도 태극기를 새겨 넣은 이후 내가 잘못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통째로 욕을 먹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보니 욕을 하거나 클럽을 내 팽개치는 일도 하지 않게 됐다. 원래는 나도 매너 좋은 선수가 아니었는데 태극기를 단 이후 행동을 조심하게 됐다. 그전까지는 몰랐지만 없던 애국심도 생겨났다.”
우연히 새긴 태극기였지만 그에겐 큰 의미로 다가왔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국가대표가 되어갔다. 태극기 덕분인지 2002년에는 PGA 투어에서 첫 승을 올리며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최경주는 14시즌 동안 8승을 기록하며 아시아를 대표하는 선수가 됐다.
그의 자서전 ‘코리안 탱크 최경주’에는 태극기와 얽힌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소개돼 있다. 그는 “태극기를 새겨 넣은 뒤 어떤 동료선수가 ‘너는 나라에서 스폰서를 해주나?’라고 짓궂게 묻기도 했다. 그의 말이 맞다. 태극기를 달고 다니면서부터 우승하기 시작한 걸 보면 대한민국은 나의 가장 든든한 스폰서다”라고 소개했다.
● 집에선 ‘아들바보, 딸바보’
최경주는 올해 나이 마흔 셋이다. 1995년 KPGA 투어 팬텀오픈에서 프로 데뷔 첫 우승을 차지한 뒤 김현정 씨와 결혼해 세 아이(호준, 신영, 강준)를 두고 있다. 골프채를 놓으면 여느 아버지와 다르지 않았다. ‘아들바보’, ‘딸바보’라는 말이 잘 어울렸다.
아이들 자랑엔 목소리가 커졌다. 그 중에서도 막내 얘기엔 눈빛이 반짝였다.
“셋째 아이가 아들이라는 소리를 듣고 나서 처음부터 운동을 시킬 생각이었다. 그래서 이름도 ‘강준’이라고 지었다. ‘강하고 준수하게 커라’라는 뜻도 있지만 강의 ‘K’와 준의 ‘J’를 따서 또 다른 ‘KJ CHOI’라고 지었다. 영어로 풀 네임은 ‘대니얼 KJ CHOI 주니어’다.”
그 아이가 커서 어느덧 아빠의 뒤를 걷고 있다. 최근에는 지역에서 열린 미니골프대회에 나가 우승을 차지해 재능을 보이기도 했다.
“동네마다 작은 골프대회가 많이 열린다. 얼마 전 9세 이하의 어린아이들이 출전하는 9홀 골프대회에 나가서 우승을 했다. 리더보드 맨 위에 ’CHOI’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고 가슴이 뭉클했다. 평생동안 리더보드에 써 있는 내 이름의 ‘CHOI’만 보고 살아왔는데 내가 아닌 또 다른 ‘CHOI’를 보면서 느낌이 새로웠다. ‘부모의 마음이 이런 것인가’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또 다른 감동을 느꼈다.”
잠시 골프채를 내려놓은 올해는 처음으로 아빠 노릇도 하게 됐다.
최경주는 “처음이었다. 막내가 학교 숙제로 지도를 사야한다고 해서 지도를 사는 것보다 그려보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함께 지도를 그렸다. 별것 아닌 것 같았지만 아들에게는 큰 의미가 되었던 것 같다. 나와 함께 그린 그림을 방 한 구석에 잘 보관해두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왠지 모를 뿌듯함이 생겼다”라며 멋쩍게 웃었다.
최경주에겐 세 명의 아이 이외에도 90명의 아이가 더 있다. 바로 2007년 설립한 최경주재단을 통해 알게 된 아이들이다.
그는 이 아이들에게 무언가 뜻 깊은 일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꿈의 둥지’가 바로 그것이다.
“언젠가 우리의 학교 수업에서 체육이 빠졌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허무했다. 우리 아이들이 갖고 있는 열정을 충분히 쏟아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꿈의 둥지’는 최경주의 경험과 철학, 그리고 열정이 녹아 있는 프로젝트다. 2만 평의 부지에 골프연습장과 그립센터, 파3 골프장 등의 시설을 갖춘 골프 전용 시설과 체육관 등을 마련한다. 골프 꿈나무 그리고 어려운 환경에서 운동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꿈의 장소다. 향후 5년 내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 “마르고 있지만 아직은 남아 있다”
그에게도 시련이 있었다. 2008년 세계랭킹 5위에 올랐던 그는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변화를 줬다. 하지만 독이 됐다. 체중 조절 실패로 인해 경기력까지 떨어졌다. 세계랭킹은 93위까지 추락했다. 그대로 무너질 것 같았다. 그러나 최경주는 독을 약으로 삼았다. 그리고 다시 도약했다.
“새로운 시도를 위해 살도 빼고 안 먹고 이러다 보니 나중에 스윙감각도 떨어지고 밸런스도 흐트러졌다.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이대로는 안 된다. ‘한 번 더 할 수 있다’라는 다짐을 하게 됐다.”
3년 4개월이란 시간은 그를 다시 깨웠다. 실패가 최경주를 더 크게 만들었다.
2011년 5월은 그의 골프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해가 됐다. PGA 투어의 꽃으로 불리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우승으로 다시 한번 ‘KJ CHOI’를 알리게 됐다.
“그런 실패가 없었더라면 나의 인생에서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은 없었을 것이다. 그 이전에 나는 바닥을 쳤고 기어 다니는 상태였다.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었다.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이 나를 바꿔 놓는 계기가 됐다.”
그의 별명은 탱크다. 멈추지 않고 앞을 향해 돌진하는 모습이 딱 어울린다.
최경주는 한 가지 약속했다.
“내년에 우승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고 2승을 더 추가해 10승을 채우면 명예의 전당에도 이름을 올릴 수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나의 샘물은) 마르고 있지만 아직은 조금 남아 있다는 것이다.”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트위터 @na1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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