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입은’ 채 걷고 뛸 수 있게… “예쁘게 입는 로봇 시장 열 것”[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용인=허진석 기자

입력 2023-05-27 03:00 수정 2023-05-28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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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어러블 로봇 대중화 앞당기는 ‘위로보틱스’… 모터 1개로 작고 가벼운 로봇 구현
허리띠처럼 두르면 무게감 거의 없어… 보행보조-운동 모드 모두 가능
근로자용 허리 보조 로봇도 개발… 팔과 손 근력 돕는 로봇은 개발 중
삼성전자 연구원들이 창업… “누구나 로봇 도움 받을 수 있어야”


모델이 보행 보조 착용형 로봇을 입고 산길을 걷는 모습.
평소보다 훨씬 멀리 빠르게 걷고, 무거운 짐도 쉽게 나를 수 있도록 해주는 ‘입는(웨어러블) 로봇’이 일상화되면 분명 다른 세상이 열릴 것이다. 소방관이나 군인은 훨씬 더 자기의 직분을 잘 수행할 것이고, 힘을 많이 쓰는 근로자의 안전과 생산성은 높아질 것이다.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더 넓은 반경을 여행할 수 있고, 나이가 들어 걷기가 힘들어진 노인들의 일상은 더 윤택해질 것이다.


스타트업 ‘위로보틱스’(WIRobotics·공동대표 김용재, 이연백)는 웨어러블 로봇의 대중화를 목표로 2021년 5월에 설립됐다. 위로보틱스는 작고 가벼운 ‘초소형’ 웨어러블 로봇에 초점을 맞춰 ‘누구나 입고 싶은 로봇’을 만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창업 2년이 채 안 돼 다리와 허리를 보조하는 로봇 개발을 마치고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삼성전자에서 로봇 개발을 10∼20년씩 하던 연구자 5명이 주축이 돼 개발한 덕분이다. 팔과 손을 보조하는 로봇은 다음 단계로 개발 중이다. 다리와 허리 보조 로봇으로 시작해 인간 근육의 대부분을 보강하는 전략으로 보인다.

● 걷기 불편할 때는 물론 운동할 때도 사용 가능
18일 경기 용인시 수지구 위로보틱스 연구소에서 이연백 공동대표(왼쪽)가 김용재 공동대표가 입은 보행 보조 착용형 로봇의 각 부분을 설명하고 있다. 두 사람은 옷처럼 편한 로봇을 만들고 싶어 한다. 용인=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18일 경기 용인시 수지구에 있는 위로보틱스 연구소에서 상용화를 앞둔 ‘보행 보조 착용형 로봇’(모델명 WIM)을 입어 봤다. 가로 약 24cm, 세로 10cm, 두께 5cm의 본체와 허리띠, 허벅지 힘 전달부 전체 무게는 1.4kg으로 손으로 들었을 때는 노트북컴퓨터를 들었을 때와 비슷한 무게감이 느껴졌지만 허리에 부착했을 때는 무게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입는 과정은 30초가 채 걸리지 않을 정도로 간단했다. 노트북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가방에서 로봇을 꺼내 허리띠와 본체를 연결하고 허벅지 착용부와 연결하면 끝이다. 걷기 시작하자 로봇이 걸음 속도와 보폭을 감지하면서 허벅지를 들어주고 밀어주어 걷는 데 드는 에너지를 줄여 줬다. 이연백 공동대표(49)는 “에너지를 20%가량 더 적게 쓰도록 해 두는데 이는 국내외 대기업은 물론 미국 유명 대학에서 연구용으로 개발한 웨어러블 로봇과 비교해도 제일 좋은 성능이다”고 했다.

위로보틱스에 따르면 이 회사 로봇의 무게(1.4kg)는 기존 웨어러블 로봇들의 무게(3∼30kg)보다 가볍다. 기존 로봇들은 기본적으로 사람의 관절 옆에 모터를 부착해 보행을 보조하는 방식이어서 2개 이상의 모터가 필요하다. 위로보틱스는 인체 생체역학을 기반으로 모터 1개로 양다리의 보행을 돕는 방식을 개발해 부피와 무게를 최소화했다. 인공지능(AI) 학습 기능을 갖춘 로봇은 또 사용자의 걷거나 뛰는 자세가 적절한 범위를 벗어나면 바른 동작을 취할 수 있도록 피드백을 제공한다. 배터리는 연속 사용 기준으로 2시간 사용 가능하고, 일상 생활용이면 4∼5시간 사용이 가능하다. 교체해서 사용 시간을 얼마든지 늘릴 수 있다.

현재 경기 수원시 영통구 보건소와 함께 노인 운동 프로그램 사용성 평가를 추진 중이다. 이 대표는 “8주 이상 사용하면 다리 근력이 40%가량 늘고, 균형 감각은 15% 이상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10년가량 더 젊은 보행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했다.

보행 보조 기능뿐만 아니라 힘을 더 쓰게 만드는 운동 보조 기능을 갖춘 것이 기존에 개발된 로봇들과 크게 다른 특징이다. 보행 보조 기능은 재활치료용으로 노인이나 뇌중풍(뇌졸중) 환자의 보행을 돕는 용도로 쓸 수 있고, 운동 보조 기능은 건강한 사람들이 짧은 시간 안에 더 큰 운동 효과를 얻을 수 있도록 해준다. 휴대전화 앱을 통해 운동 보조 기능으로 바꿨더니 허벅지의 움직임이 제한돼 물속을 걷는 것처럼 저항감이 느껴졌다. 김용재 공동대표(49)는 “일상을 함께할 수 있는 로봇을 만들겠다는 목표 덕분에 기존 로봇들과 달리 운동 기능까지 갖춘 로봇을 개발할 수 있었다”고 했다. 위로보틱스는 24일 이 로봇을 공개했다. 내년 1월 판매할 계획이다.

● 근로자용 허리 보조 로봇과 손-팔 보조 로봇
위로보틱스는 건설 현장과 공장 등에서 쓸 수 있는 ‘허리 보조 착용형 로봇(WIBS)’을 올해 1월 미국 소비자가전쇼(CES)에서 공개했다. 등에 1.5kg의 장치를 메고 무릎 뒤쪽 부위와 연결하는 방식으로 허리 부위를 보강하는 로봇이다. 물건을 들어 올릴 때 척추에 가해지는 근육 부하를 최대 40kg까지 보조하는데 동력이 필요 없다. 특정 각도로 고정하는 기능이 있어 구부린 자세로 오래 일할 때도 유용하다. 다양한 신체 형태에 대응이 가능하고, 보조력을 3단계로 조정할 수 있다. 120시간 사용 가능한 배터리와 함께 자세 감지 모듈을 추가할 수도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의 연구과제인 ‘수요맞춤형 서비스 로봇 개발 보급 사업’의 주관기관으로 참여해 대우건설 현장에서 시험 적용하고 있다. 이 대표는 “현재 물류 현장에서 상하차 작업 등에 적용 중인데, 착용 후 경미한 부상 위험은 44%, 허리 부상 확률은 13%가 줄면서도 작업량은 4.4%가량 증가했다”고 했다.

위로보틱스는 팔을 오래 들고 작업해야 하는 근로자를 위해 ‘유연 핸드-암 보조’ 로봇도 개발 중이다. 팔을 들어주고 손의 촉감은 유지하면서 쥐는 힘을 높여주는 기능을 한다. 김 대표는 “보행 보조 로봇과 허리 보조 로봇을 함께 착용하는 것도 가능해 많이 걷고 무거운 것을 자주 들어야 하는 작업장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며 “팔-손 보조 로봇까지 개발되면 인간 대부분의 근육을 보조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 “삼성전자에서 함께 연구한 인연으로 창업”

이 대표와 김 대표는 1974년생으로 둘 다 KAIST 출신이다. 이 대표는 기계공학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김 대표는 전기전자공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삼성전자에 같이 입사해 로봇을 개발했다. 이 대표는 19년 근무하고 2021년 창업을 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뒀다. 김 대표는 이보다 8년쯤 먼저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로 자리를 옮겨 로봇을 연구하다가 위로보틱스 공동대표를 겸직하고 있다. 이 대표는 착용형 로봇 및 휴머노이드 로봇 설계 전문가다. 김 대표는 센서 없이도 사람과 상호작용이 가능한 안전 로봇 팔, 사람의 손처럼 다양한 물건을 쥘 수 있는 자유도를 가진 로봇 손 개발 전문가다.

노창현 재무최고책임자는 고려대 전자공학 석사로 삼성에서 20년간 로봇 구동기 및 소프트웨어를 개발했고, 최병준 최고운영책임자는 성균관대 기계공학 박사로 삼성에서 10년간 로봇 센서 및 상호작용 메커니즘을 연구했다. 임복만 팀장은 서울대 기계공학 박사로 삼성에서 14년간 로봇을 개발한 보행 제어 전문가다.

이 대표는 “삼성전자 연구원 시절 어르신들이 웨어러블 로봇을 입고 4∼8주 동안 주 2회 1시간 정도만 걷기 운동을 해도 자세가 바르게 되면서 자신감을 되찾는 경우를 자주 봤다”며 “웨어러블 로봇을 더 고도화하고 싶어 창업을 하게 됐다”고 했다.

이 대표와 김 대표는 “삼성전자에서 20여 년 전 로봇 분야에 왕성한 투자를 하면서 연구자가 늘었고, 지금은 그들이 학계와 산업계로 퍼져 나가 로봇 생태계가 형성됐다”며 “그 생태계의 일원으로 대중이 좀 더 친숙하게 로봇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했다.

대중화를 위해 개발되는 로봇은 소비자들이 구독료를 내는 형태로 적은 부담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사용자의 운동 시간과 형태, 작업 자세 등에 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건강 증진 프로그램을 만들어 정부나 민간 기업으로부터 구독료 보조를 받는 방안도 구상 중이다.

위로보틱스는 웨어러블 로봇을 재활치료실이 아닌 일상에서 쓸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미로 자사 제품에 ‘웨어러블 모빌리티(입는 이동수단)’라는 이름을 붙였다. 차나 휠체어에서 내려서 걷는 ‘마지막 1마일’에서도 불편함을 없애고, 건강한 사람이 더 높이 오르거나 더 멀리 걸을 수 있도록 돕겠다는 의미다.



용인=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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