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실시간 영상 보며 멍~…불멍·물멍 이어 ‘라멍’

주현우기자

입력 2023-05-18 20:15 수정 2023-05-18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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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화면 캡처

“한강과 반포대교가 실시간으로 나오는 영상을 틀어놓고, 공부하다 답답할 때 보면서 멍 때리면 제법 힐링이 됩니다.”

대학원생 박모 씨(29)는 서울 마포구의 집에서 태블릿PC 화면에 유튜브 채널 ‘서울 라이브 카메라-한강’을 틀어놓고 공부한다며 이 같이 말했다. 이 채널에는 서울 반포대교 일대 전경이 실시간 송출된다. 이 채널 외에도 17일 저녁 기준으로 한강변을 비추는 라이브 채널 7, 8곳에 접속한 실시간 시청자 수는 1000명 이상이었다.

최근 젊은층 사이에서 이른바 ‘라멍(라이브 멍때리기)’이 인기를 모으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여행에 대한 갈증을 달래는 차원에서 확산된 트렌드가 멍 때리기와 만나 ‘힐링 수단’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 전 세계 랜드마크 라이브 영상 인기
최근 수년 동안 머리 속에서 잡생각을 지우기 위한 수단으로 ‘멍 때리기’가 인기를 모았다. ‘불멍’(불이 타오르는 모습을 멍하게 보는 것)이나 ‘물멍’(물이 흐르는 모습을 멍하게 보는 것) 같은 단어도 유행했다. 여기에 방구석 여행을 결합해 전 세계 특정 장소를 비추는 실시간 영상을 틀어놓고 보는 것이 이른바 ‘라멍’이다.

해외 유튜브 채널 중에는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 일본 도쿄 시부야의 스크램블 교차로(전 방향 횡단보도) 등 명소를 보여주는 라이브 영상이 인기다. 한국에서는 한강을 보여주는 라이브 채널이 많은데 그 밖에 남산타워 등 관광명소나 양재천 등 동네 힐링 포인트를 보여주기도 한다.

한강 라이브 영상을 즐겨 본다는 지방 거주 고등학생은 18일 기자와의 라이브 채팅에서 “공부하다 지칠 때마다 한강 뷰를 보면서 열심히 공부해 꼭 서울 소재 대학에 진학하겠다면서 스스로에게 동기를 부여한다”고 말했다. 한국 곳곳을 비추는 라이브 영상을 즐겨 틀어놓는다는 한 외국인은 “한국 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을 영상으로 달래고 있다”고 했다.

일부 시청자들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국제우주정거장(ISS)이 촬영한 지구의 모습을 실시간 송출하는 영상을 틀어놓고 어느 나라를 지나고 있는지 지켜보며 머리 속을 정리하기도 한다.

● “매달 30만 원 나와, 용돈벌이로도 쏠쏠”


한강 등의 라이브 영상을 내보내는 유튜버들은 대부분 개인이다.

한강 반포대교와 남산타워 전경을 실시간으로 송출 중인 고모 씨(42)는 지난해 5월 서울 서초구 아파트로 이사한 직후 집이 한강 뷰라는 점에 착안해 방송을 시작했다. 고 씨는 “가장 현실감 있게 전경을 보여줄 수 있도록 고화질로 방송하기 위해 1000만 원 가량 투자해 촬영 및 송출 장비를 샀다”며 “초기 비용이 들었지만 추가 노력 없이 틀어놓기만 하면 유튜브로 매달 30만 원 가량의 수익을 올릴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했다.

멍때리기 대회를 열며 라멍족들을 오프라인으로 이끌어내는 지방자치단체도 늘고 있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는 21일 잠수교에서 ‘2023 한강 멍때리기 대회’를 여는데 경쟁률이 45대 1에 달한다. 27일 부산에서 처음 열리는 ‘해운대 멍때리기 대회’에는 70팀을 선발하는데 1285팀이 참가를 신청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최근 라멍 트렌드에 대해 “정보가 넘치고 경쟁이 심한 사회 속에서 피로한 청년들이 아무 것도 안 하고 쉬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신동원 성균관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멍 때리는 동안 뇌가 얻은 정보를 정리하며 과부하를 막을 수 있어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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