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정부는 왜 PC 게임의 제왕 ‘블리자드’를 고소했나?[조영준의 게임 인더스트리]

조영준 게임동아 기자

입력 2023-05-18 11:00 수정 2023-08-23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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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먹고 커피 내기 스타 한 판 어때?’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대학가나 직장에서 ‘스타크래프트’로 커피 내기를 하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리그 오브 레전드’가 더 유명세를 떨치고 있지만, 그전까지 ‘스타크래프트’는 한국 게임의 역사를 바꿨다고 할 만큼 인기를 누리던 ‘원조 국민 게임’이었습니다. 20년 넘게 인기가 이어지다 보니 이젠 ‘게임’이 아니라 ‘민속놀이’로 부를 정도입니다.

게임을 스포츠로 변모시킨 e-스포츠의 태동도 이 ‘스타크래프트’와 함께 했습니다. ‘테란의 황제’ 임요환의 군대 문제가 대두되자, 역으로 군대에 프로게임단이 창설되기도 했습니다.

국내에서 ‘원조 국민 게임’이라고 불리는 ‘스타크래프트’를 개발한 블리자드
이러한 ‘스타크래프트’를 개발한 게임사는 바로 북미에 위치한 ‘블리자드’입니다. 2008년에 게임사인 ‘액티비전’과 합쳐지면서 정식 명칭은 ‘액티비전 블리자드’가 됐지만, 여기서는 블리자드로 압축해 부르겠습니다.

블리자드는 ‘스타크래프트’만 유명한 게 아닙니다. ‘디아블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오버워치’ 등 세계를 호령하는 게임이 연이어 출시됐습니다. 이렇게 20년간 승승장구하면서 수많은 팬을 만들어냈고, ‘PC 플랫폼’에서는 적수가 없어서 ‘PC 게임의 제왕’이라는 타이틀도 거머쥐었습니다.

국내에서 ‘원조 국민 게임’이라고 불리우는 ‘스타크래프트’를 개발한 블리자드

그런데 이런 블리자드가 미국 주 정부로부터 고소를 당하면서, 전 세계 게임 마니아들이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오 마이 갓, 나의 블리자드가 그럴 리 없어’라는 글이 게임 커뮤니티 게시판에 도배될 정도로, 블리자드 고소 건은 대단히 큰 이슈가 됐죠.

때는 지난 2021년 7월 22일(북미 현지 시간 기준). CNN 방송과 AFP 통신, 뉴욕타임스 등의 주요 외신들은 캘리포니아주 공정고용주택국(DFEH)이 LA 고등법원에 블리자드를 대상으로 하는 고소장을 제출했다고 일제히 보도했습니다.

이 고소장의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블리자드의 직원 중 20%를 차지하는 여성 직원들이 지난 2년 동안 보수, 승진, 해고 등의 인사 전반에 걸쳐 불이익을 겪었다는 것입니다. 또 남성 직원들은 여성 직원들에게 일을 떠넘긴 뒤 게임을 즐겼으며, 음담패설과 성폭행 관련 농담도 회사 내에서 공공연히 주고받은 걸로 확인됐다고 하네요.

요약하면, 미국 캘리포니아주 정부가 여성 직원들에 대한 차별과 지속적인 성희롱을 이유로 블리자드에 소송을 제기했다는 겁니다. 또 DFEH는 블리자드가 초기 임금을 포함한 급여 조정, 미지급 임금과 복리후생 및 직장 내 보호 준수 등 구제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PC 게임 개발사인 블리자드가 보여준 엄청난 성추행 스캔들. 전 세계의 게이머들은 이에 큰 충격을 받았는데요. 블리자드 측은 이에 즉각 반발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블리자드 측은 공식 성명을 통해 “이는 블리자드의 과거를 왜곡하고 있으며 대부분 거짓”이라고 발표했고, 특히 “DFEH가 주장하는 내용은 오늘날의 액티비전 블리자드와 다르다”라고 공식 반박했습니다.

심각한 유감의 뜻을 나타낸 마이크 모하임 전 블리자드 대표
하지만 블리자드 공동 설립자이자 28년간 회사를 이끌었던 마이크 모하임 전 블리자드 대표가 자신의 SNS에 “이런 일을 겪은 블리자드의 여성 직원들에게 실망을 주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라고 사과의 뜻을 전했는데, 또 14명의 여성 직원들이 블리자드에 대해 성차별을 당했다며 폭로를 이어가면서 블리자드의 반박은 무게감을 잃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500여 명의 사원들이 항의 농성을 이어가면서 결국 제이 알렌 브렉 블리자드 대표가 사퇴를 결정했습니다. 그의 메인 부서였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와우) 팀이 이번 성차별 논란의 주역이었기에, 그의 경질은 불가피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표 경질 후에도 사태가 장기화할 조짐이 보이자 블리자드는 여성 임원인 젠 오닐 개발 부문 총괄 부사장과 마이크 이바라 기술 담당 총괄 부사장을 새로운 공동 대표로 임명하면서 수습에 나섰습니다. 또한 보비 코틱 블리자드 최고경영자(CEO)도 성희롱과 차별 문제에 연관된 “사람들은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며 직장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하기도 했죠.

블리자드와 비슷한 문제로 구설수에 오른 북미 게임사 라이엇 게임즈와 유비소프트
그런데 충격적인 점은 다른 북미 게임 개발사들에서도 이 같은 기행이 있곤 했다는 점입니다. DEFH는 지난 2021년 3월에 ‘리그오브레전드’의 개발사 라이엇 게임즈에 대해 성차별과 성희롱, 여직원에 대한 보복 혐의로 소송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소송 통지서에는 라이엇 게임즈가 여성과 관련하여 고용과 급여, 승진 결정 등의 다양한 부분에서 법을 위반했다고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또 ‘어쌔신 크리드’, ‘저스트 댄스’ 등으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둔 유비소프트도 지난 2020년 7월에 성폭력,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로 지목된 세르쥬 아스코에 CCO, 막심 벨런드 편집 부사장, 야니 말럿 전무 등 남성 임원 3명을 퇴출한 바 있습니다.

이렇게 블리자드를 포함한 북미 주요 게임사들의 연이은 미투 사건에 대해 여전히 많은 게임 팬들이 마음 아파하고 있습니다. 이번 일이 해외 게임사들은 물론 국내 게임사에게도 성차별 없는 업무 문화를 만들기 위해 자신들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조영준 게임동아 기자 jun@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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