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중심으로 재편된 인간관계… 기업활동에도 ‘연결’이 중요

전미영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입력 2023-05-10 03:00 수정 2023-05-10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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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맺기’에서 ‘관계 관리’로… 닉네임으로 근황 공유하고 소통
언제든 내가 원할 때만 ‘연결’… 기업들 플랫폼 확장으로 새 기회


사회생활 10년 차 과장님과 이제 갓 20대가 된 대학생 중 누가 더 발이 넓을까? 어쩌면 인생 경험이 짧은 대학생들이 요즘 어른들보다 더 넒은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 세대는 인간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방식이 기성세대와 다르기 때문이다. 기성세대에게 친구란 휴대전화에 담겨 있는 이름 목록 정도다. 반면, 요즘 세대는 카카오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메타버스 등 넘쳐나는 플랫폼에서 각기 다른 인간관계를 만든다. 소수의 사람들과 두터운 관계를 쌓아가는 것이 예전의 ‘관계 맺기’라면 요즘의 관계란 수많은 인간관계를 관리하며 효용을 극대화하는 ‘관계 관리’에 더 가깝다.

체크리스트 중심의 일정 관리 앱 ‘투두메이트’. Z세대들은 친구 일정표를 열람하며 안부를 묻는다.
요즘 사람들이 관계를 관리하는 방식은 독특하다. 첫째, 서로의 안부를 확인할 때 플랫폼을 활용한다. 때로는 아이디를 공유하는 넷플릭스가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는 데 이용되기도 한다. 넷플릭스에서는 영상을 시청하기 전에 여러 개의 프로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이때 보이는 닉네임을 근황 게시판처럼 사용한다. 가령 가족원 중 누군가 ‘쌍커풀 수술했습니다’처럼 일상 근황을 적는다. 다음 날 다른 가족이 ‘쌍수는 잘되었는가’로 닉네임을 바꾸며 안부를 확인한다. 개인 일정을 관리하는 앱으로 친구들과 근황을 공유하기도 한다. 투두메이트(todomate)는 체크리스트 중심의 일정관리 앱인데, Z세대들은 ‘공유하기’ 기능을 활용해 친구의 일정표를 열람하며 서로 안부를 묻는다.

둘째, 평판을 확인하기 위해서도 플랫폼을 활용한다. 최근 디스코드가 인수한 미국 가스(gas) 앱은 10대의 칭찬 기반 투표 커뮤니티 서비스다. ‘가장 용감하게 문제 해결에 나서는 사람’을 묻는 설문조사가 열리고, 1등에겐 불꽃이 전달된다. 순위권에 들지 않더라도 내가 어떤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았는지 대략 알 수 있다. 국내 버전인 스컬(skrr) 앱도 인기다. ‘롯데월드 같이 가고 싶은 사람’ 등을 묻는 질문에 익명으로 투표하고, 내가 투표를 받으면 알림을 받는다. 만약 누가 나에게 투표했는지 이름이 궁금하다면 구독 상품을 결제하면 된다.

호스트가 색다른 주제로 모임을 만들면 게스트가 참여비를 내고 참가하는 소셜 액티비티 플랫폼.
마지막으로 취미 활동을 즐기기 위해서도 플랫폼을 적극 활용한다. 프립(frip)은 호스트가 색다른 주제로 모임을 만들면 게스트가 참여비를 내고 참여하는 소셜 액티비티 플랫폼이다. ‘코딩 배우기’에서부터 ‘한양도성 산책하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든다. 영화를 볼 때에도 플랫폼에 모여 함께 시청한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왓챠(watcha)는 황석희 번역가, 김혜리 기자 등이 호스트로 참여하는 ‘왓챠 영화파티’ 캠페인을 4월부터 진행하고 있다. 최대 2만 명이 동시에 접속해 실시간 채팅을 하며 같은 콘텐츠를 감상하는데, 파티를 개설한 호스트의 코멘터리는 음성으로도 들을 수 있다.

최대 2만 명이 동시 접속해 실시간 채팅을 하며 같은 콘텐츠를 감상하는 OTT 서비스 왓챠의 ‘왓챠 영화파티’.
이처럼 인간관계가 플랫폼 중심으로 재편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더 이상 사람들이 친구들과 서로 같은 생애주기를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가 비교적 균질적이었던 과거에는 비슷한 나이의 친구들이라면 학교 입학, 취업, 결혼, 출산을 유사한 시기에 했다. 반면 요즘엔 같은 30대라도 결혼해 자녀를 둔 친구도 있고 미혼인 친구도 있다. 당연히 동일한 이슈로 정보를 공유할 만한 기회도 줄어든다. 이때 플랫폼이 각종 정보 교류의 역할을 대신한다.

플랫폼의 기본 속성이 자기중심적이라는 점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언제든 누군가를 팔로할 수 있고 관계를 끊을 수도 있다. 상대가 내게 질문을 했을 때에도 내가 대답하고 싶을 때만 대답하면 된다. 전화에서는 대화가 실시간으로 일어나지만 인스타그램과 같은 플랫폼에서는 내가 원할 때 댓글을 달거나 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내면 된다. 요즘 사람들은 나를 중심으로 관계를 이어가는 플랫폼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을 더욱 편안하게 받아들인다.

앞으로 기업들은 관계 맺기와 무관한 제품에도 관련 기능을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삼성전자는 동일한 생방송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불특정 다수의 시청자들이 실시간으로 채팅하는 ‘라이브 채팅’ 기능을 TV에 추가했다. TV라는 물리적 제품을 관계 플랫폼으로 확장한 것이다.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인간관계’가 변화의 국면을 맞고 있다. 요즘 사람들의 새로운 관계 맺기 방식인 ‘플랫폼 관계’에서 기회를 발굴해 보자.

전미영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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