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계정 공유 서비스가 업계의 예상을 벗어나는 수준으로 진화하고 있다. 기존 계정 공유 서비스가 공유를 희망하는 이들을 모아 연결해줬던 수준에 그쳤다면 아예 ‘1일 이용권’을 저가로 제공하는 플랫폼까지 등장했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부터 등장한 사이트 ‘페이센스’는 넷플릭스, 웨이브, 티빙, 왓챠, 디즈니플러스 등 주요 OTT들의 1일 이용권을 판매하고 있다. 1일 이용권의 가격은 넷플릭스가 600원으로 가장 비싸고, 웨이브·티빙·왓챠는 500원, 디즈니플러스는 400원이다.

이같은 1일 이용권 판매는 OTT 플랫폼의 범람으로 피로감을 느낀 이용자들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OTT별 대표 콘텐츠 1~2개 외에는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데도 해당 콘텐츠를 보려면 반드시 한달 이용권을 구매해야 하는 구독형 방식에 염증을 느낀다는 반응이 속속 나오고 있다.


◆OTT-페이센스-소비자 구조서 ‘OTT만 손해’…계정공유 빈틈 찌르기

페이센스는 모두 ‘프리미엄’ 이용권 만을 제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넷플릭스 기준 최대 4명까지 동시접속이 가능한 프리미엄 요금제의 가격은 월 1만7000원이다. 페이센스의 넷플릭스 1일권이 600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넷플릭스 계정 1개당 일 최대 2400원을 벌 수 있고, 단순 계산해보면 계정당 월 1만7000원으로 최대 7만2000원을 벌어들일 수 있는 셈이다.

페이센스의 주장대로 소비자 입장에서도 손해는 아니다. 예를 들면 OTT의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 1개를 ‘정주행’할 경우 최대 일주일을 넘지 않을 가능성이 큰데, 소비자들은 본인이 원하는 드라마 하나를 3000~4000원만 내고 볼 수 있게 된다. 콘텐츠 하나를 위해 굳이 1만7000원에 달하는 월 구독료를 낼 필요가 없으니 오히려 이득이 되는 셈이다. 결국 OTT-페이센스-소비자의 구조에서 OTT가 모든 손해를 떠안게 되는 형국이다.

페이센스가 이같은 1일 이용권 판매를 추진할 수 있는건 소비자 호응과 수익성 뿐만 아니라 각 OTT 플랫폼들이 이용자 모집을 위해 계정공유를 암묵적으로 허용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넷플릭스는 이용약관을 통해 “넷플릭스의 모든 콘텐츠는 개인적, 비상업적 용도로만 사용해야 하며 가구 구성원이 아닌 개인과 공유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으나 친구, 지인 간 이뤄지는 계정 공유를 적극적으로 제한하고 있지는 않다.


◆페이센스, OTT 약관 위배 소지 있어…넷플 ‘계정공유 제한’에 명분 줄 수도

페이센스 측은 “페이센스 서비스는 불법이 아니다”라는 입장이지만 OTT 플랫폼들의 이용약관을 살펴보면 OTT 측의 강경대응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OTT 대표주자인 티빙과 웨이브의 경우 이용약관을 통해 “회원은 회사(OTT)의 승인 없이 유료 서비스를 이용한 어떠한 영리 행위도 할 수 없다. 회원의 영리 행위로 회사가 손해를 입을 경우 회사에 대해 손해배상 의무를 진다”며 OTT 유료서비스를 이용한 영업활동을 금지하고 있다. 페이센스는 OTT 측과 별도의 계약이나 제휴 등을 체결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페이센스와 같은 사이트의 등장이 최근 계정 공유 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넷플릭스에게 명분을 실어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넷플릭스는 1분기 실적 악화 이후 “넷플릭스 콘텐츠는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지만 계정 공유 등으로 역풍을 만났다. 세계적으로 계정 공유를 통해 무료로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들이 1억명에 달한다”며 가구원 외 계정 공유 금지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페이센스의 서비스가 OTT 측에 명백한 손해를 줄 공산이 큰 만큼 이같은 움직임에 속도가 붙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OTT업계 관계자는 “페이센스의 서비스가 약관 위반 소지가 충분한 만큼 국내 OTT들도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단순한 OTT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CP(콘텐츠제공자)들의 수익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가볍게 볼 순 없을 것”이라며 “아직은 서비스 초기라 당장 타격이 있는 건 아니지만 1일 이용권은 너무 명확한 수익 침해의 부분이 있는 만큼 대응을 안할 수가 없다”고 진단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