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하’ 대신 ‘헬로 펭수’…음성인식 AI 덕분에 영어교사 된 펭수
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입력 2020-10-15 18:13 수정 2020-10-15 18:17
EBS 펭수 (한국방송대상 제공)© 뉴스1
“I‘m eleven years old.(나는 열한 살 입니다.)”
막힘없이 한 번에 영어로 말한 여학생은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EBS 영어교육채널 EBSe가 9월 25일 유튜브에 공개한 영상에는 전남 완도군 노화북초등학교의 영어 수업 장면이 담겼다. 학생들은 선생님 대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보며 영어를 따라 했다. 2021년 교육부가 전국 초등학교에 배포할 예정인 인공지능(AI) 영어 학습 애플리케이션(앱) ’AI펭톡‘이다. EBS의 인기 캐릭터 펭수가 ’AI 영어교사‘로 등장한다.
● 1만 명 이상 음성 데이터 학습시켜
AI펭톡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개발했다. 박전규 ETRI 인공지능연구소 복합지능연구실장은 “AI를 이용해 음성을 인식하고 대화를 처리하며, 발음을 평가하도록 설계했다”며 “성별, 나이, 지역까지 고려해 1만 명 이상에게 영어 문장 수백 개를 읽게 한 뒤 AI에게 학습시켜 정확도를 높였다”고 말했다.ETRI가 음성인식 AI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건 2010년부터다. 2012년에는 간단한 문장을 따라 읽는 수준이 됐고, 2014년에는 영어로 된 문장을 읽으면 정확도를 점수로 나타내주는 영어 대화 프로그램 ’지니튜터‘를 선보였다. 세계 최초로 컴퓨터와 영어로 대화하는 소프트웨어였다.
현재 음성인식 AI 기술에서 가장 앞섰다는 구글도 한국인이 말하는 영어 음성인식에서는 아직 국내 기술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f‘ ’v‘ 등 한국어에 없는 알파벳을 발음할 때 인식률을 높이도록 알고리즘을 개선했다. ’student(학생)‘를 발음할 때 원어민이 마지막 ’t‘ 발음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점까지 고려해 발음평가 모델도 개선했다.
사용자가 날씨 얘기를 이어가다 갑자기 축구로 화제를 바꾸면 챗봇이 즉각 대응해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기능도 추가했다. 박 실장은 “한국인의 음성인식에서 구글의 정확도가 50~60%라면 AI펭톡에 설치된 음성인식 AI의 정확도는 80~90%에 이른다”며 “해외에도 따라 읽기 서비스는 많지만 자유롭게 대화하는 언어교육 플랫폼은 아직 보고된 사례가 없다”고 했다.
AI펭톡은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X프라이즈재단과 매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하는 AI 포 굿 글로벌 서밋의 올해 행사에도 초청돼 이달 15일 온라인을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됐다. 박 실장은 “유네스코가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등 교육 환경이 열악한 지역에 보급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AI펭톡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AI로 외국어 말하기 학습이 가능해지면 과중한 사교육비와 영어 격차 등 사회문제를 해소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말하면 글자로 자동 변환
ETRI는 음성인식 AI 기술을 회의록 작성에도 적용했다. 말하는 사람의 음성을 인식한 뒤 이를 글자로 자동 변환하는 것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은 지난해 서울시와 AI 회의록 자동변환 사업을 시범 진행해 좋은 평가를 받았고, 올해 초부터 본격적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서울시에 이어 전국 시·도의회와 교육지원청 100여 곳에도 AI 회의록 자동변환 서비스가 도입됐다.이는 2015년 개발한 음성인식 엔진 기술이 토대가 됐다. 은행, 증권, 카드사 등은 콜센터를 운영하며 고객의 음성데이터를 쌓고, 이를 분석해 고객의 요구를 파악하는 등 경영에 반영한다. 당시 음성데이터 분석 기술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주도하고 있었는데, 한국어 인식에는 한계가 있었고 해외 개인정보 유출 등 보안도 문제가 됐다. ETRI는 자연어 음성인식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이런 문제를 해결했다. 박 실장은 “10년 뒤에는 스스로 언어 종류를 인지하는 다국어 자동통역이나 드론이 지상의 목소리를 인지하는 수준까지 음성인식 AI가 발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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