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반포 567주년 “한글이름 국산차 다 어디로?”

동아경제

입력 2013-10-09 08:00 수정 2013-10-0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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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이 1446년 훈민정음을 반포한 후 올해로 567주년을 맞았다.

한글날을 맞아 중고차사이트 카즈가 국산차의 한글 사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시판중인 90여대의 국산차 중 한글이름을 가진 차량은 단 한 대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 이름에 가장 많이 활용된 언어는 영어로 국산차의 약 30% 정도가 해당됐다. 일부는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등 라틴어 계열에서 이름을 차용하기도 했다.

현대자동차의 아반떼는 스페인어로 ‘전진’을, 에쿠스는 ‘개선장군의 말’이라는 뜻의 라틴어이다. 미국이나 이탈리아의 휴양지 이름을 빌려오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쉐보레는 말리부, 올란도, 캡티바 등 대부분의 차량에 지역명을 붙여 ‘휴양’의 인상을 주고 있다. 이외에 엑센트, 포르테 등 음악 용어를 활용한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최근 국산차의 한글 활용도는 전무하지만, 과거에는 대우자동차의 맵시나(1983년), 누비라(1997년), 삼성상용차의 야무진(1998년), 쌍용자동차의 무쏘(2003년)처럼 우리말을 활용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에 한글 이름을 붙이지 않는 이유는 수출 및 마케팅 비용과 관련이 있다”며 “수출이 활성화되며 뜻하지 않은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는데 특히 이름과 관련한 웃지 못 할 일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1970년대 지엠의 경우 영어로 신성(新星)을 뜻하는 단어인 ‘노바(Nova)’를 활용해 ‘쉐비 노바(Chevy Nova)’를 출시했다. 하지만 신차는 중남미에선 외면을 받았다. ‘노바’라는 단어가 스페인어로 ‘가지 않는다(Don’t go)’라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같은 이름도 국가에 따라 뜻이 달라질 수 있기에 자동차 회사들은 세계 공용어인 영어를 보편적으로 사용하거나, 내수용과 수출용 이름을 따로 짓는다.

실제로 기아자동차는 프라이드를 수출하며 이름을 리오(Rio)라고 바꿨으며 모닝(Morning)의 수출용 이름은 피칸토(Picanto)로 지었다. 현대차도 아반떼 수출용 이름을 엘란트라(Elantra)로, 그랜저 수출용 이름은 아제라(Azera)로 변경해 출시했다.

그렇다면 내수용과 수출용을 별도의 다른 이름으로 출시해도 되는데 굳이 외국어를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카즈 관계자는 “자동차 이름은 각 분야 전문가들의 연구, 분석을 통해 탄생하는 것으로 기아차의 K7 같은 경우도 한국과학기술원에 의뢰해 1년 넘게 단어 연상, 시선 추적 등 뇌 반응을 분석한 끝에 얻어낸 이름”이라며 “자동차 네이밍 작업에도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데, 내수용 따로 수출용 따로 이름을 붙이면 브랜드 마케팅 측면에서도 일관성이 없어 비용부담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최근 자동차 업계에서는 ‘알파뉴메릭’ 방식으로 자동차 이름을 짓는 경우가 많아졌다. 알파뉴메릭은 알파벳과 숫자를 조합한 언어체계로 영어권 네티즌들 사이에서 유행하며 주목 받았다.

BMW,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푸조, 렉서스 등이 알파뉴메릭 방식을 채택해 자동차 이름을 짓고 있다. 국내에서는 르노삼성차가 최초로 알파뉴메릭 방식을 도입해 SM 시리즈를 탄생시켰다. 자동차 이름에 알파뉴메릭을 적용시키면, 통합 브랜드 구축을 통해 회사와 제품 이미지 관리가 한결 수월해진다. 또 수출시 제품명이 겹쳐 발생하는 분쟁도 피할 수 있다.

아우디 역시 1994년 신형 대형 세단을 출시하면서 A시리즈로 차 이름을 통일해 고급브랜드 이미지를 굳혔다. 국산차의 경우 기아자동차의 K시리즈가 대표적인데, 기아(KIA), 한국(Korea), 강함(그리스어 Kratos)의 머리글자 K에 3,5,7,9의 숫자를 더해 차급을 표현했다.


알파뉴메릭 방식이 유행하면서 한글 이름을 단 국산차를 만나는 일은 더욱 어려워졌다.

카즈 관계자는 “자동차 업계의 흐름이 알파뉴메릭 방식을 차용한 브랜드 네이밍으로 바뀌고 있다”면서 “아쉽지만 앞으로도 한글 이름을 가진 국산차가 출시되는 일은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김훈기 동아닷컴 기자 hoon14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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