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Up]브랜드-기술력 상징 슈퍼카, 한국에만 왜 없나 ?
동아일보
입력 2012-10-25 03:00 수정 2012-10-25 13:05
만들면 적자… 나중엔 웃는 ‘슈퍼카의 경제학’
13일 전남 영암군 코리아인터내셔널서킷. 포뮬러원(F1) 경주에 앞서 스포츠카 한 대가 V8엔진 특유의 우렁찬 배기음을 내뿜으며 트랙을 달리기 시작했다. 이 차는 메르세데스벤츠의 ‘SLS AMG GT’. F1 경주 중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안전을 위해 투입되는 공인 세이프티카다. 최고출력은 시판 모델보다 20마력 높은 591마력으로 벤츠의 모델 중 가장 강력한 성능을 가진 ‘슈퍼카’다.
벤츠의 슈퍼카가 F1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동안 국내 자동차 업계에는 비보가 전해졌다. 한국 최초의 슈퍼카로 주목받던 어울림모터스의 ‘스피라’ 생산이 중단된 것이다. 스피라는 2010년 출시 이후 30여 대가 팔리는 데 그치는 부진을 겪었고 제조회사도 상장 폐지 위기에 몰렸다. 한국산 슈퍼카의 명맥이 사실상 끊겼다.
반면 해외 자동차 회사들의 고성능 스포츠카 개발 경쟁은 더 뜨거워지고 있다. 전문 스포츠카 브랜드는 물론이고 도요타나 제너럴모터스(GM) 같은 대중차 업체도 고성능 스포츠카를 속속 내놓으며 브랜드 이미지를 끌어올리는 ‘아이콘’으로 삼고 있다.
한국은 지난해까지 6년 연속으로 세계 5위 자동차 생산 국가(2011년 427만 대)에 올랐지만 내세울 만한 고성능 스포츠카가 없다. 현대자동차가 스포츠카인 ‘제네시스 쿠페’를 내놓았지만 성능이나 정통성 측면에서 유명 슈퍼카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는 갈 길이 멀다.
슈퍼카에 대한 투자 효과는 어느 정도일까. ‘저렴하고 적당한 성능을 가진 차’를 내세워 성장해온 한국 자동차 회사들에 슈퍼카 생산은 무리일까.
○ 수천억 원의 적자가 오히려 득
출력이 500마력을 넘는 슈퍼카는 엄청난 개발비용과 적자를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은 슈퍼카 개발을 주저하지 않는다. 장기적인 시각에서 브랜드 이미지 제고와 기술력 확보 등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무형의 이득’이 훨씬 크다는 판단에서다.
일반적인 신차 개발에는 3000억∼4000억 원이 든다. 업체들이 개발비용을 공개하지는 않지만 고성능 스포츠카의 개발은 대중차보다 1.5∼2배의 비용이 든다는 게 정설이다.
고성능 스포츠카의 판매로 수익을 남기는 업체는 많지 않다. 포르셰와 페라리, 람보르기니 같은 스포츠카 전문 브랜드 외에는 대부분 적자다. 스포츠카 전문 브랜드와 달리 ‘0’에서부터 모든 걸 일궈야 하고 판매량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 도요타자동차가 지난해 고급 브랜드인 렉서스를 통해 출시한 슈퍼카 ‘LFA’의 가격은 약 4억 원. 일본 언론이 추정한 이 차의 실질적인 대당 제조원가(개발비와 마케팅비 포함)는 1억 엔(약 14억 원)이다. 이 차는 500대가 한정 판매된다. 단순 계산으로 5000억 원의 적자가 나는 셈이다.
그러나 도요타가 슈퍼카 판매로 얻는 마케팅 효과는 적자를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2009년 대규모 리콜 사태로 브랜드 이미지가 크게 떨어진 렉서스의 판매는 LFA 출시를 전후해 점차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 렉서스는 정숙성과 안락함을 강조하던 기존 개발 방향에서 벗어나 역동적인 브랜드라는 새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있다.
독일 아우디는 슈퍼카 개발로 좋은 성과를 거뒀다. 아우디가 2007년 출시한 첫 고성능 스포츠카 ‘R8’는 ‘진보(progress)’라는 회사 슬로건을 등에 업고 등장했다. 이 차는 2008년 할리우드 영화 ‘아이언맨’에 등장해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다. 아우디는 그해 처음으로 연간 판매 100만 대를 돌파한 뒤 고급차 업체 중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영업이익률은 세계 최고 수준인 13%대에 이른다.
○ 대중은 왜 슈퍼카에 열광하나
슈퍼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동차를 차가운 기계가 아닌 혼이 실린 작품으로 인식하게 한다. 브랜드의 역사, 가치, 기술력 등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대중이 슈퍼카에 얽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입소문 마케팅은 시작된다.
SLS AMG는 1950년대 출시된 벤츠의 전설적인 스포츠카 ‘300 SL’의 오마주(경의의 표시)다. 60여 년 전 제품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초고성능 스포츠카로 재탄생시켰다. R8는 세계 3대 자동차 대회인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우승한 아우디 레이싱카 ‘R8 LMP1’의 이름과 기술을 물려받았다. 시속 400km를 넘긴 부가티의 성능은 단순한 광고만으로는 기대하기 힘든 파급 효과를 지녔다. 부가티는 폴크스바겐그룹이 소유하고 있다.
LFA는 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주행로로 불리는 독일 뉘르부르크링에서 개발됐다. 도요타의 나루세 히로무 수석 테스트 드라이버가 이곳에서 LFA의 시제품을 운전하던 중 사고로 숨진 사건은 자동차 마니아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일본 스포츠카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닛산 ‘GT-R’는 개발 배경을 담은 만화가 출판됐을 정도다.
○ ‘한국산 슈퍼카’ 왜 없나
국내 수입차 시장은 올해 처음으로 점유율 10%를 돌파했다. 수입차 시장을 선도하는 독일 업체들은 최근 수년간 자사의 고성능 모델을 국내 시장에 지속적으로 소개해왔다. 판매량은 적지만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윤대성 한국수입자동차협회 전무는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업체는 고성능 모델 출시를 통한 이미지 상승에서 힘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자동차 회사에서도 ‘한국산 슈퍼카’의 개발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최근 독일 뉘르부르크링 인근에 연구시설 설립을 추진하는 등 슈퍼카 개발을 검토하고 있다. 대중적인 차를 통한 성장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고성능 모델을 내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이다.
피터 슈라이어 기아차 디자인총괄 부사장은 최근 콘셉트카인 ‘GT’를 선보이며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서는 이런 스포츠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도 고성능 스포츠카 개발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현대·기아차 내부의 반대도 만만찮다. 수익성을 중시하는 재무부서와 일부 경영진은 “시기가 아니다”라며 슈퍼카 개발에 부정적인 의견을 보이고 있다.:: 슈퍼카 ::
일반적으로 최고출력이 500마력을 넘고, 최고속도가 시속 300km 이상인 고가의 스포츠카를 뜻한다. 눈길을 사로잡는 뛰어난 디자인도 한몫한다. 전통적인 슈퍼카 회사로는 페라리와 람보르기니, 부가티, 파가니 등이 있고 스포츠카 브랜드인 포르셰와 고급차 회사인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등도 슈퍼카를 만든다. 여기에 대중차 회사인 도요타, 닛산, GM 등이 가세하며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진석 기자 gene@donga.com
메르세데스벤츠의 슈퍼카 ‘SLS AMG’. 정지 상태서 시속 100km까지 3.8초, 최고속도 시속 317km. 최고출력은 571마력이며 가격은 2억8550만 원. 갈매기의 날개처럼 하늘을 향해 열리는 ‘걸윙(gullwing)’ 도어는 1950년대 출시된 ‘300 SL’에서 따왔다.
‘우르르릉∼.’13일 전남 영암군 코리아인터내셔널서킷. 포뮬러원(F1) 경주에 앞서 스포츠카 한 대가 V8엔진 특유의 우렁찬 배기음을 내뿜으며 트랙을 달리기 시작했다. 이 차는 메르세데스벤츠의 ‘SLS AMG GT’. F1 경주 중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안전을 위해 투입되는 공인 세이프티카다. 최고출력은 시판 모델보다 20마력 높은 591마력으로 벤츠의 모델 중 가장 강력한 성능을 가진 ‘슈퍼카’다.
벤츠의 슈퍼카가 F1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동안 국내 자동차 업계에는 비보가 전해졌다. 한국 최초의 슈퍼카로 주목받던 어울림모터스의 ‘스피라’ 생산이 중단된 것이다. 스피라는 2010년 출시 이후 30여 대가 팔리는 데 그치는 부진을 겪었고 제조회사도 상장 폐지 위기에 몰렸다. 한국산 슈퍼카의 명맥이 사실상 끊겼다.
반면 해외 자동차 회사들의 고성능 스포츠카 개발 경쟁은 더 뜨거워지고 있다. 전문 스포츠카 브랜드는 물론이고 도요타나 제너럴모터스(GM) 같은 대중차 업체도 고성능 스포츠카를 속속 내놓으며 브랜드 이미지를 끌어올리는 ‘아이콘’으로 삼고 있다.
한국은 지난해까지 6년 연속으로 세계 5위 자동차 생산 국가(2011년 427만 대)에 올랐지만 내세울 만한 고성능 스포츠카가 없다. 현대자동차가 스포츠카인 ‘제네시스 쿠페’를 내놓았지만 성능이나 정통성 측면에서 유명 슈퍼카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는 갈 길이 멀다.
슈퍼카에 대한 투자 효과는 어느 정도일까. ‘저렴하고 적당한 성능을 가진 차’를 내세워 성장해온 한국 자동차 회사들에 슈퍼카 생산은 무리일까.
○ 수천억 원의 적자가 오히려 득
출력이 500마력을 넘는 슈퍼카는 엄청난 개발비용과 적자를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은 슈퍼카 개발을 주저하지 않는다. 장기적인 시각에서 브랜드 이미지 제고와 기술력 확보 등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무형의 이득’이 훨씬 크다는 판단에서다.
일반적인 신차 개발에는 3000억∼4000억 원이 든다. 업체들이 개발비용을 공개하지는 않지만 고성능 스포츠카의 개발은 대중차보다 1.5∼2배의 비용이 든다는 게 정설이다.
고성능 스포츠카의 판매로 수익을 남기는 업체는 많지 않다. 포르셰와 페라리, 람보르기니 같은 스포츠카 전문 브랜드 외에는 대부분 적자다. 스포츠카 전문 브랜드와 달리 ‘0’에서부터 모든 걸 일궈야 하고 판매량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 도요타자동차가 지난해 고급 브랜드인 렉서스를 통해 출시한 슈퍼카 ‘LFA’의 가격은 약 4억 원. 일본 언론이 추정한 이 차의 실질적인 대당 제조원가(개발비와 마케팅비 포함)는 1억 엔(약 14억 원)이다. 이 차는 500대가 한정 판매된다. 단순 계산으로 5000억 원의 적자가 나는 셈이다.
그러나 도요타가 슈퍼카 판매로 얻는 마케팅 효과는 적자를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2009년 대규모 리콜 사태로 브랜드 이미지가 크게 떨어진 렉서스의 판매는 LFA 출시를 전후해 점차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 렉서스는 정숙성과 안락함을 강조하던 기존 개발 방향에서 벗어나 역동적인 브랜드라는 새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있다.
독일 아우디는 슈퍼카 개발로 좋은 성과를 거뒀다. 아우디가 2007년 출시한 첫 고성능 스포츠카 ‘R8’는 ‘진보(progress)’라는 회사 슬로건을 등에 업고 등장했다. 이 차는 2008년 할리우드 영화 ‘아이언맨’에 등장해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다. 아우디는 그해 처음으로 연간 판매 100만 대를 돌파한 뒤 고급차 업체 중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영업이익률은 세계 최고 수준인 13%대에 이른다.
○ 대중은 왜 슈퍼카에 열광하나
슈퍼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동차를 차가운 기계가 아닌 혼이 실린 작품으로 인식하게 한다. 브랜드의 역사, 가치, 기술력 등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대중이 슈퍼카에 얽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입소문 마케팅은 시작된다.
SLS AMG는 1950년대 출시된 벤츠의 전설적인 스포츠카 ‘300 SL’의 오마주(경의의 표시)다. 60여 년 전 제품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초고성능 스포츠카로 재탄생시켰다. R8는 세계 3대 자동차 대회인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우승한 아우디 레이싱카 ‘R8 LMP1’의 이름과 기술을 물려받았다. 시속 400km를 넘긴 부가티의 성능은 단순한 광고만으로는 기대하기 힘든 파급 효과를 지녔다. 부가티는 폴크스바겐그룹이 소유하고 있다.
LFA는 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주행로로 불리는 독일 뉘르부르크링에서 개발됐다. 도요타의 나루세 히로무 수석 테스트 드라이버가 이곳에서 LFA의 시제품을 운전하던 중 사고로 숨진 사건은 자동차 마니아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일본 스포츠카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닛산 ‘GT-R’는 개발 배경을 담은 만화가 출판됐을 정도다.
○ ‘한국산 슈퍼카’ 왜 없나
국내 수입차 시장은 올해 처음으로 점유율 10%를 돌파했다. 수입차 시장을 선도하는 독일 업체들은 최근 수년간 자사의 고성능 모델을 국내 시장에 지속적으로 소개해왔다. 판매량은 적지만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윤대성 한국수입자동차협회 전무는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업체는 고성능 모델 출시를 통한 이미지 상승에서 힘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자동차 회사에서도 ‘한국산 슈퍼카’의 개발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최근 독일 뉘르부르크링 인근에 연구시설 설립을 추진하는 등 슈퍼카 개발을 검토하고 있다. 대중적인 차를 통한 성장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고성능 모델을 내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이다.
피터 슈라이어 기아차 디자인총괄 부사장은 최근 콘셉트카인 ‘GT’를 선보이며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서는 이런 스포츠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도 고성능 스포츠카 개발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현대·기아차 내부의 반대도 만만찮다. 수익성을 중시하는 재무부서와 일부 경영진은 “시기가 아니다”라며 슈퍼카 개발에 부정적인 의견을 보이고 있다.:: 슈퍼카 ::
일반적으로 최고출력이 500마력을 넘고, 최고속도가 시속 300km 이상인 고가의 스포츠카를 뜻한다. 눈길을 사로잡는 뛰어난 디자인도 한몫한다. 전통적인 슈퍼카 회사로는 페라리와 람보르기니, 부가티, 파가니 등이 있고 스포츠카 브랜드인 포르셰와 고급차 회사인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등도 슈퍼카를 만든다. 여기에 대중차 회사인 도요타, 닛산, GM 등이 가세하며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진석 기자 ge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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