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회사 몰래 가죽 바느질 배우는 ‘넥타이 부대’
동아일보
입력 2017-02-23 15:50 수정 2017-02-23 15:53
#1
회사 몰래 가죽 바느질 배우는 ‘넥타이 부대’
#2.
“김 대리, 또 반차 냈네. 어머니가 많이 아프신 거야?”
21일 오후 2시 서울의 한 제약회사 영업부.
박모 팀장은 걱정 반, 의심 반의 목소리로 김모 대리를 불러 세웠습니다.
김 대리는 미안한 표정을 짓고는 서둘러 가방에 서류를 챙겨 사무실을 나섭니다.
#3.
“어머니가 편찮다”는 반차 사유는 거짓말.
제약사 영업사원 1년 차인 그가 반차를 내고 찾아간 곳은 회사 부근 가죽 공방(工房).
공방엔 멀쑥한 양복 차림의 남성 10여 명이 어울리지 않는 앞치마를 두른 채
느리고 서툰 솜씨로 가죽에 바느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모두 취업 1¤3년 차인 새내기 직장인.
#4.
‘회사 몰래’ 6개월째 공방 수업을 듣는 김 대리는 1년 전 100곳이 넘는 기업에 이력서를 넣었습니다.
희망하던 회사에서는 모두 낙방.
유일하게 합격한 곳이 중소 규모 제약사 영업부.
#5.
그러나 새벽까지 이어지는 술자리, 상사와 업체의 비상식적인 요구를 견디지 못하고
퇴사를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취업보다 어려운 것이 재취업.
“퇴사를 생각하다가 공방이 눈에 들어왔다.
뭐라도 만들어 팔면 밥벌이는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열심히 배우고 있다.”
- 중소 제약사 영업부 김 대리
#6.
지난해 청년(만 15~29세) 실업률은 9.8%로 역대 최고치.
힘겹게 들어간 직장 상황도 좋지 못합니다.
지난해 전국 306개 기업에서 1년 이내 퇴사한 대졸 신입사원의 비율은 27.7%.
퇴사 이유는 상당수가 ‘조직과 직무 적응 실패’.
취업난에 적성이나 근로조건과 상관없이
‘무작정’ 들어간 회사에 적응하지 못하는 직장인이 속출하는 셈이죠.
#7.
하지만 당장 퇴사를 하고 싶어도 재취업을 할 수 없을 것이란 불안감과
직장생활에 대한 회의감으로 공방에 손기술을 배우러 온 직장인들,
이른바 ‘생존형 공방족’이 늘고 있습니다.
#8.
20, 30대 직장인들이 생존형 공방족이 되는 건 취업난이 불러온 일종의 후유증이라는 분석.
“취업문이 워낙 좁다 보니 적성과 근로조건을 고려하지 않는 ‘묻지 마’ 취업이 늘고
이는 결국 사회 초년생의 퇴사 문제로 이어진다.
자신이 꿈꾸던 직장생활과 너무 다른 현실에 재취업보다는
심적 스트레스가 덜한 창업을 택하려는 것도 공방으로 몰리는 원인 중 하나다.”
-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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