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금고’된 상조회사… “자금운용 규제 검토”

이동훈 기자

입력 2024-05-29 03:00 수정 2024-05-29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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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단위 자금운용 별도 규정없어… 대주주가 만든 펀드에 출자하거나
회장 ‘빌딩 쇼핑’ 자금 쓰이기도
일각 “투자손실땐 고객 피해 우려”… 기재부 “상조회사 규제안 검토중”





상조회사에 맡긴 고객 자금이 조(兆) 단위를 넘어가고 있지만 자금 운용에 관한 별도 규정이 없어 ‘대주주 사금고’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상조회사의 선수금이 대주주 펀드나 관계사의 주식매입 자금 혹은 대여금으로 쓰이는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는 대규모 손실 등의 위험을 막기 위해 상조회사의 자금 운용에 대한 별도 규제를 만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 주머니 쌈짓돈으로 쓰이는 상조회비



28일 상조업계에 따르면 A상조회사가 고객 돈 500억 원을 대주주가 만든 펀드에 출자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상조회사가 국내 사모펀드(PEF)에 뭉칫돈을 넣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B상조회사의 경우 고객 자금으로 수백억 원어치의 관계사 주식을 매수했고, C상조회사는 관계사 대여금으로 자금을 운용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 상조업계 관계자는 “일부 상조회사들이 고객 돈을 주머니 쌈짓돈처럼 운용하고 있다”며 “상조회사 회장의 빌딩 쇼핑에 고객 자금이 쓰이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상조회사는 미래에 일어날 장례 절차에 대비해서 고객들로부터 선수금을 받고 있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상조회사의 선수금 규모는 8조3890억 원으로 1년 전보다 12% 넘게 증가했다. 프리드라이프와 교원라이프, 대명스테이션 등 국내 상위권 상조회사의 경우 회사별 예수금이 조 단위를 넘어섰다.



막대한 자금이 상조회사로 몰리는 가운데 자금 운용에 대한 특별한 규제가 없다 보니, 대주주 혹은 관계사 등에 대해 자금 지원도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자칫 대규모 투자 손실로 인해 상조회사 고객들의 피해가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상조회사가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다 보니 대주주의 사금고로 전락하는 모습을 보인다”며 “추가적인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자금 운용에 대한 법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상조회사 금융규제법 만들지 ‘촉각’



상조회사는 선불식 할부 거래 회사로 공정거래위원회의 관리를 받고 있다. 상조회사 부실로 인한 소비자 피해가 커지자 정부가 2010년 할부거래법을 개정하면서 상조회사를 규율한 법적 근거가 사실상 처음 생겼다.

하지만 할부거래법에 따라 선수금의 절반가량을 예치해둬야 하는 것을 제외하고 자금 운용에 대한 규제는 전무한 상황이다. 상조회사의 대주주 관련 거래에 대해 공정위 측은 “법적 처벌 근거가 없다”고 했다. 법의 허점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할부거래법은 상조회사를 관리하기 위해 도입된 법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금융업계에서는 자금 운용을 통해 회사 수익을 챙긴다는 측면에서 상조회사도 금융위원회나 금융감독원 등 금융 당국의 규제를 받아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금융기관들의 경우 대주주 사금고화나 위험 전이를 막기 위해 대주주나 특수관계인과의 거래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다만, 일부 거래에 한해서는 이사회 전원 동의나 홈페이지 공시, 금융위 보고의 절차를 거칠 경우 허용하고 있다. 캐피털이나 보험 등 여신전용금융회사의 경우 대주주 등과 10억 원 이상 거래를 할 때 이 같은 절차를 거쳐야 한다. 상조회사들도 금융기관들과 동일한 규제를 받을 경우 대주주와의 거래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기획재정부가 상조회사 관련 법을 새롭게 만들기 위해 나선 가운데 자금 운용에 대한 규제 법안도 포함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기재부 관계자는 “상조회사 지원과 함께 규제안도 검토하고 있다”며 “상조회사의 자금 운용 관련 규제를 위해 기존에 있는 법과의 정합성을 따져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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