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박자 행정에… 실거주 유예 5만채 전세보험 막혀

최동수 기자

입력 2024-05-30 03:00 수정 2024-05-3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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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거주 유예에도 전매제한 그대로
보증사 “경매-회수 어려워” 보험 거절
세입자들 “전세사기 불안” 혼란 커져
국토부-HUG 등 손 놓다가 뒷북 대책



분양가상한제 단지로 ‘실거주 의무 3년’을 적용받은 인천의 870채 규모 아파트. 김모 씨는 올해 2월 실거주 의무를 3년 유예하는 주택법 개정안이 통과됐다는 소식을 듣고 이 단지에서 전세계약을 체결했다. 김 씨가 은행에서 받은 전세자금대출은 2억2000만 원. 잔금을 치른 뒤 전세보증금반환 보증보험에 가입하려고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문의했다 ‘불가’ 통보를 받았다. HUG 담당자는 “현행법상 실거주 의무 적용 아파트는 소유권 이전이 제한돼 보증사고 발생 시 경매를 통한 보증금 회수가 어렵다”고 거절 사유를 설명했다. 김 씨는 “전세사기 사건이 여전히 많은데 이러면 누가 안심할 수 있겠냐”고 토로했다.

실거주 의무가 3년간 유예된 수도권 분양가상한제 아파트의 임차인들이 전세보증금 반환보험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실거주 의무’ 폐지를 추진하다 무산되면서 집주인들이 혼란을 겪자 여야는 ‘3년 유예’에 합의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세입자 보호를 위한 전세보증보험 가입이 안 되면서 ‘엇박자’가 난 것이다. 정부는 법 통과 석 달이 지난 뒤에야 제도의 허점을 파악하고 뒤늦게 관계기관 협의에 나섰다.

29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전세보증보험 상품을 취급하는 HUG와 한국주택금융공사(HF), SGI서울보증보험 등 3개 기관이 실거주 의무 3년이 적용된 수도권 분상제 아파트 세입자들의 전세보증보험 가입 신청을 거절하고 있다. 올해 2월 21대 국회는 실거주 의무를 ‘최초 입주일’에서 ‘입주 후 3년 이내’로 완화하는 주택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된 수도권 아파트는 2∼5년을 실제 거주해야 한다. 동시에 이 기간을 채울 동안 집을 팔 수 없는 ‘전매제한’이 걸린다. HUG와 HF, SGI가 문제 삼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집주인이 보증금을 떼어먹은 경우 경공매 등을 진행해 보증금을 회수해야 하는데, 집을 팔 수가 없으니 이 절차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실거주 의무는 3년간 유예됐는데, 전매제한 규정은 그대로 남아 있어 사각지대가 발생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보증기관들이 관련 규정을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주택법에 따르면 분양가상한제 주택을 분양받은 사람이 실거주 의무를 채우지 않으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만 해당 주택을 매각할 수 있다. 다만 분양을 받은 소유자가 국가·지방자치단체 및 금융기관에 대한 채무를 이행하지 못해 경공매가 시행될 때는 LH 동의를 얻어 팔 수 있다. 이때 HUG와 SGI서울보증보험은 ‘금융기관’에 자신들이 포함되지 않아 예외조항 적용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금융기관인 HF 역시 “전세보증금은 세입자에 대한 소유주의 채무이지 금융기관에 대한 채무가 아닐 수도 있다”며 가입을 거절하고 있다.

문제는 현장에서 가입이 계속 거절되는데도 보증기관이나 국토교통부, HUG 등이 아무런 협의 없이 손을 놓고 있었다는 점이다. 국토부는 본보가 관련 규정을 문의한 뒤에야 각 보증기관에 “보증보험 가입에 적극 협조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국토부 관계자는 “보증사고가 발생하면 LH가 해당 집을 분양가에 은행 이자를 더한 가격으로 매입하게 돼 있다”며 “소유자가 LH로부터 받은 자금에 대해 보증기관이 구상권을 청구하면 된다”고 했다.

이주현 지지옥션 전문위원은 “전세보증보험에 가입이 안 되면 세입자는 아무런 보증금을 지킬 안전장치를 가질 수 없게 된다”며 “기관별로 해석이 애매하면 질의를 해서 적극적으로 답변을 듣고 관계기관끼리 협의해 풀어야 한다”고 했다.



최동수 기자 firefl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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