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 꺼! 반칙운전/2부]‘광란 질주’ ‘떼빙’ 무개념 폭주 운전자…
동아일보
입력 2013-02-20 03:00 수정 2013-02-20 09:01
시속 380km 광란 질주… KTX보다 빠른 ‘도로의 폭력배’
“속도 줄이세요. 어서요.”
8일 인천 중구 중산동 신공항고속도로. 순찰차 옆으로 검은색 승합차가 ‘휙’ 하고 지나갔다. 과속 현장을 보겠다며 경찰을 따라나선 지 채 5분도 안 된 시점. 어찌나 빨리 달리는지 곧 시야에서 멀어졌다. 이곳 규정 속도는 시속 100km. 앞서가던 차량들을 눈 깜짝할 사이에 제친 검정 차량은 언뜻 보기에도 시속 200km 가까이는 돼보였다.
순찰차가 경고 방송을 던지며 따라붙었다. 처음엔 보란 듯이 속도를 더 높이던 차량은 곧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고속도로 순찰대 이승혁 경장은 “낮에는 그나마 덜한 편”이라며 “밤에는 단속이 쉽지 않다는 점을 악용해 시속 300km 가까이 폭주하는 운전자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 이곳에서는 시속 250km로 속칭 ‘떼빙’(무리지어 달리는 행위)하던 BMW와 벤츠 등 외제차 6대가 적발됐고, 11일 낮에는 고급 외제차 페라리가 과속으로 질주하다 중앙분리대와 가드레일을 들이받는 사고를 내기도 했다.
○ 자유로 등은 광란의 파티 장소
“용인∼서울고속도로에서 달리기 좋아요. 수원까지 카메라가 딱 한 대 있어서 ‘칼질’(차량 사이를 마구 끼어들며 달린다는 뜻의 은어)해 달리면 시속 200km까지 쏠 수 있어요.” “인천 신공항고속도로에서 드디어 시속 300km 찍었어요. 다음엔 350km가 목표입니다.”
한 자동차 동호회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글이다. 이곳 게시판에는 여러 대의 차량이 모여 아찔한 레이싱을 펼치거나 최고 속도로 주행한 경험담이 연일 올라온다. 비 오는 날 ‘미끄럼 주의’ 표지판을 지나 시속 270km로 달리는 모습을 촬영한 것부터 다른 차량 사이를 위험하게 끼어들며 속도를 뽐내는 ‘칼질’ 동영상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문제는 경험담의 장소가 일반 운전자들도 다니는 도로라는 점이다. 이들은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인천 신공항고속도로 △일산 자유로 △동탄신도시 등을 최대 시속 350km로 질주할 수 있는 ‘파티 장소’로 꼽는다.
북악스카이웨이는 급커브 구간이 많아 몸이 휘청거릴 정도의 스릴 있는 레이싱을 벌이기 좋고, 자유로는 상당 구간 곧게 뻗은 도로에서 여러 대가 경주할 수 있을 만큼 넓어 폭주족의 집결지가 되고 있다. 이 밖에도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송추 나들목과 의정부 나들목 사이 ‘사패산 터널’(약 4km)은 터널에 진입하면서부터 빠져나올 때까지 두 대 이상의 차량이 경쟁하며 ‘승자’를 가리거나 차량의 최고 속도를 측정하는 코스로 악명을 떨치고 있다. 터널은 대형 사고 발생 시 접근이 쉽지 않은 폐쇄적 구조라 제한 속도를 더 엄격하게 지켜가며 안전운전을 해야 하지만 일부 무개념 운전자들의 자동차 성능시험장이자 레이싱장으로 활용되는 셈이다.
서울지방경찰청 김홍주 교통범죄수사팀 팀장은 “과거에는 폭주라고 하면 오토바이만 떠올렸지만 최근에는 자동차 폭주 건수가 더 많고 심각한 수준”이라면서 “오토바이는 주로 서울 도심에서 폭주를 해 단속이 수월하지만 차량들은 서울 외곽으로 나가 달리기 때문에 단속도 어렵고 고속도로를 주로 이용하는 만큼 사고가 날 경우 위험성도 더 크다”고 설명했다.
○ ‘뭐가 문제죠?’라는 폭주 운전자
시속 380km는 1초에 무려 106m를 갈 수 있는 속도다. 길에 예상치 못했던 작은 돌조각 하나가 있거나 앞차가 급히 차로를 변경한다면 운전자가 쇼트트랙 스케이트 선수만큼 뛰어난 운동신경을 갖췄더라도 대형사고를 피할 길이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반 운전자들은 심야시간 도로를 달릴 때 불안할 수밖에 없다. 경기 파주에 사는 황지윤 씨(32·여)는 “폭주 차량을 최대한 피해 운전하고 싶었지만 밤에 무서운 속도로 다가와 추월하고 앞에서도 차로를 지그재그로 바꾸며 달려 진땀이 났다”면서 가슴을 쓸어내린 경험을 전했다.
○ 솜방망이 처벌, 비웃음 당하는 단속
낮은 수준의 범칙금이 폭주족의 무법 질주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계속된다. 도로교통법상 단속 카메라에 적발됐을 당시 승용차의 경우 규정 속도에서 20km 이하를 넘었다면 3만 원, 20∼40km를 넘었다면 6만 원, 40∼60km를 넘었다면 9만 원, 60km를 초과해 넘었으면 12만 원이 부과된다. 아무리 과속해도 최대 12만 원만 물면 된다.
반면 선진국은 과속을 엄중하게 처벌한다. 프랑스는 제한속도보다 시속 50km 이상 초과하면 벌금은 물론이고 최대 3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한다. 아무리 과속해도 인명사고만 내지 않으면 형사처벌하지 않는 한국과 대조적이다. 2010년 스위스 동부 장크트갈렌 지방법원은 페라리를 몰고 상습적으로 과속한 사람에게 범칙금 29만 달러(약 3억1300만 원)를 물려 화제가 됐다. 제한 속도가 시속 80km인 마을에서 137km로 질주한 결과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속도 줄이세요. 어서요.”
8일 인천 중구 중산동 신공항고속도로. 순찰차 옆으로 검은색 승합차가 ‘휙’ 하고 지나갔다. 과속 현장을 보겠다며 경찰을 따라나선 지 채 5분도 안 된 시점. 어찌나 빨리 달리는지 곧 시야에서 멀어졌다. 이곳 규정 속도는 시속 100km. 앞서가던 차량들을 눈 깜짝할 사이에 제친 검정 차량은 언뜻 보기에도 시속 200km 가까이는 돼보였다.
순찰차가 경고 방송을 던지며 따라붙었다. 처음엔 보란 듯이 속도를 더 높이던 차량은 곧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고속도로 순찰대 이승혁 경장은 “낮에는 그나마 덜한 편”이라며 “밤에는 단속이 쉽지 않다는 점을 악용해 시속 300km 가까이 폭주하는 운전자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 이곳에서는 시속 250km로 속칭 ‘떼빙’(무리지어 달리는 행위)하던 BMW와 벤츠 등 외제차 6대가 적발됐고, 11일 낮에는 고급 외제차 페라리가 과속으로 질주하다 중앙분리대와 가드레일을 들이받는 사고를 내기도 했다.
○ 자유로 등은 광란의 파티 장소
“용인∼서울고속도로에서 달리기 좋아요. 수원까지 카메라가 딱 한 대 있어서 ‘칼질’(차량 사이를 마구 끼어들며 달린다는 뜻의 은어)해 달리면 시속 200km까지 쏠 수 있어요.” “인천 신공항고속도로에서 드디어 시속 300km 찍었어요. 다음엔 350km가 목표입니다.”
한 자동차 동호회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글이다. 이곳 게시판에는 여러 대의 차량이 모여 아찔한 레이싱을 펼치거나 최고 속도로 주행한 경험담이 연일 올라온다. 비 오는 날 ‘미끄럼 주의’ 표지판을 지나 시속 270km로 달리는 모습을 촬영한 것부터 다른 차량 사이를 위험하게 끼어들며 속도를 뽐내는 ‘칼질’ 동영상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문제는 경험담의 장소가 일반 운전자들도 다니는 도로라는 점이다. 이들은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인천 신공항고속도로 △일산 자유로 △동탄신도시 등을 최대 시속 350km로 질주할 수 있는 ‘파티 장소’로 꼽는다.
북악스카이웨이는 급커브 구간이 많아 몸이 휘청거릴 정도의 스릴 있는 레이싱을 벌이기 좋고, 자유로는 상당 구간 곧게 뻗은 도로에서 여러 대가 경주할 수 있을 만큼 넓어 폭주족의 집결지가 되고 있다. 이 밖에도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송추 나들목과 의정부 나들목 사이 ‘사패산 터널’(약 4km)은 터널에 진입하면서부터 빠져나올 때까지 두 대 이상의 차량이 경쟁하며 ‘승자’를 가리거나 차량의 최고 속도를 측정하는 코스로 악명을 떨치고 있다. 터널은 대형 사고 발생 시 접근이 쉽지 않은 폐쇄적 구조라 제한 속도를 더 엄격하게 지켜가며 안전운전을 해야 하지만 일부 무개념 운전자들의 자동차 성능시험장이자 레이싱장으로 활용되는 셈이다.
서울지방경찰청 김홍주 교통범죄수사팀 팀장은 “과거에는 폭주라고 하면 오토바이만 떠올렸지만 최근에는 자동차 폭주 건수가 더 많고 심각한 수준”이라면서 “오토바이는 주로 서울 도심에서 폭주를 해 단속이 수월하지만 차량들은 서울 외곽으로 나가 달리기 때문에 단속도 어렵고 고속도로를 주로 이용하는 만큼 사고가 날 경우 위험성도 더 크다”고 설명했다.
○ ‘뭐가 문제죠?’라는 폭주 운전자
지난해 말 인천 신공항고속도로에서 과속 차량들(왼쪽과 오른쪽)이 정상속도로 달리는 차량(가운데)을 무서운 속도로 제치며 달리고
있다. 경찰은 이 두 대가 시속 약 250km로 레이싱을 펼친 것으로 보고 있다. 인천지방경찰청 고속도로순찰대 제공
폭주 당사자들의 반응은 덤덤하다. 최근 경찰 폭주족 단속에서 적발돼 검찰 송치를 기다리는 이모 씨(29)는 “주로 신공항고속도로와 외곽순환고속도로에서 폭주를 즐겼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기자에게 “내가 달린 최고 속도는 시속 380km였다”며 “바퀴가 돌아가는 게 아니라 허공에 떠있는 느낌이 들 때 스트레스가 확 풀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인적이 드문 도로에서 달리기 때문에 ‘폭주족’이라고 불리는 건 억울하다”고 항변했다. 시속 380km는 1초에 무려 106m를 갈 수 있는 속도다. 길에 예상치 못했던 작은 돌조각 하나가 있거나 앞차가 급히 차로를 변경한다면 운전자가 쇼트트랙 스케이트 선수만큼 뛰어난 운동신경을 갖췄더라도 대형사고를 피할 길이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반 운전자들은 심야시간 도로를 달릴 때 불안할 수밖에 없다. 경기 파주에 사는 황지윤 씨(32·여)는 “폭주 차량을 최대한 피해 운전하고 싶었지만 밤에 무서운 속도로 다가와 추월하고 앞에서도 차로를 지그재그로 바꾸며 달려 진땀이 났다”면서 가슴을 쓸어내린 경험을 전했다.
○ 솜방망이 처벌, 비웃음 당하는 단속
낮은 수준의 범칙금이 폭주족의 무법 질주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계속된다. 도로교통법상 단속 카메라에 적발됐을 당시 승용차의 경우 규정 속도에서 20km 이하를 넘었다면 3만 원, 20∼40km를 넘었다면 6만 원, 40∼60km를 넘었다면 9만 원, 60km를 초과해 넘었으면 12만 원이 부과된다. 아무리 과속해도 최대 12만 원만 물면 된다.
반면 선진국은 과속을 엄중하게 처벌한다. 프랑스는 제한속도보다 시속 50km 이상 초과하면 벌금은 물론이고 최대 3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한다. 아무리 과속해도 인명사고만 내지 않으면 형사처벌하지 않는 한국과 대조적이다. 2010년 스위스 동부 장크트갈렌 지방법원은 페라리를 몰고 상습적으로 과속한 사람에게 범칙금 29만 달러(약 3억1300만 원)를 물려 화제가 됐다. 제한 속도가 시속 80km인 마을에서 137km로 질주한 결과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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