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개의 비경 아홉번의 탄성… 신선들 놀이터에 앉아 바둑 한판

글·사진 괴산=안영배 기자·철학박사

입력 2022-08-27 03:00:00 수정 2022-08-27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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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구곡 산수문화의 꽃’ 충북 괴산
수몰된 연하구곡 일부 산막이옛길 둔갑
층층이 탑바위 병풍같은 병암 자태 여전
연하협구름다리 건너면 신선세상의 입구


계곡이 깊기로 유명한 괴산 중에도 외지고 깊은 골에 위치한 갈은구곡은 때 묻지 않은 절경으로 최근 주목받고 있다. 8월 늦여름 무더위를 식히기 위해 계곡에서 한가로이 물놀이하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계곡의 물줄기를 따라 펼쳐지는 아홉 곳의 빼어난 경치를 ‘구곡(九曲)’이라고 한다. 중국 송나라 때 유학자 주자가 푸젠(福建)성 우이산(무이산) 계곡에서 노래한 ‘무이구곡’에서 따온 말이다. 조선 성리학자들은 주자의 도를 존숭하는 의미로 우리나라 산중 계곡에 110개가 넘는 구곡을 설정했다. 그중 화양구곡(화양동계곡)으로 유명한 괴산군에만 무려 7개의 구곡이 존재한다. ‘자연산수’인 계곡이 구곡이란 인문학적 이름을 얻으면 ‘문화산수’로 변신하게 된다. 8월 하순 늦무더위를 식힐 겸 괴산에서 ‘구곡 산수문화(山水文化)’를 즐겨본다.
○ 산막이옛길로 둔갑한 연하구곡

괴산 구곡 문화의 중심점은 군자산(948m)이라고 할 수 있다. 군자산자락 남쪽 계곡으로는 선유구곡과 화양구곡이 음양 짝처럼 펼쳐져 있고, 북동쪽으로는 쌍곡구곡이, 서쪽으로는 연하구곡(산막이옛길)과 갈은구곡이 연달아 존재하기 때문이다.

괴산댐이 만들어놓은 고즈넉한 호수 정경. 호수의 반영이 아름다운 곳이다.
구곡 산수문화의 주창자인 이상주 전 중원대 교수와 함께 군자산 서쪽 괴산호에서부터 답사를 시작했다. 괴산호는 1957년 남한강 지류인 달천에 괴산댐이 완공되면서 형성된 호수다. 경치가 아름다운 데다 협곡을 끼고 도는 산막이옛길로 최근 유명해지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 바로 이곳이 조선 선비들이 심신을 수양하고 학문을 연구하던 연하구곡(煙霞九曲)의 현장이었음을 아는 이는 드물다. 연하구곡의 존재를 밝혀낸 이 전 교수는 “괴산댐과 함께 수몰된 연하구곡은 노성도가 남긴 ‘연하구곡가’를 통해 실체가 확인됐다”고 말한다. 노성도는 이곳에서 유배 생활을 했던 선조 노수신(조선중기 문신)을 기리기 위해 구곡을 조성했다. 현재 남아 있는 곳은 제1곡 탑바위(탑암·塔巖)와 제9곡 병암(屛巖)이다. 탑바위는 마치 탑을 쌓아놓은 듯 바위가 층층이 쌓여 있는 형태이고, 병암은 천장봉 아래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곳인데 바위에 글씨가 새겨져 있다. 비록 수몰 현장이지만 연하구곡의 아름다운 절경은 달천을 오가는 배를 이용하거나 산막이옛길을 거닐면서 즐길 수 있다. 차돌배기선착장에서 유람선이나 보트를 이용하면 제5곡에서 제9곡까지 물굽이가 태극선으로 휘돌아 흐르면서 자아내는 강변 풍경이 일품이다.

산막이옛길(연하구곡 구간)을 걷다가 호반에서 만난 삼신바위. 삼신에게 소원을 빌려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다.

산막이옛길은 2011년 괴산군이 연하구곡 구간 일부를 개발해 지은 둘레길(칠성면 외사리 사오랑마을∼산막이마을 약 4km 구간)이다. 이 전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산막이’는 산막(山幕)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곳 산에서 분청사기를 굽던 도공들이 가마의 불을 관리하기 위해 지은 임시 집, 즉 산막에서 마을 이름이 나왔다는 것이다. 현재도 산막이나루터에서 산기슭 쪽 도랑가에는 당시의 가마터 흔적이 여러 곳 남아 있고 도자기 파편 등도 쉽게 발견된다. 괴산호를 끼고 도는 산막이옛길은 옛 정취가 흠씬 묻어난다.

괴산호를 가로지르는 출렁다리인 연하협구름다리(167m)에서 자동차로 불과 10분 정도 거리에 갈론계곡(칠성면 갈론리)이 있다. 갈은구곡(葛隱九曲)으로 불리는 이곳은 ‘칡뿌리를 캐먹으며 숨어 지내는 곳’이라는 이름처럼 외진 곳이어서 최근에야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됐다.

갈론마을 끝에서 계곡 길을 따라 1km 정도 가면 오른쪽에 ‘갈은동문(葛隱洞門)’이라고 새겨진 바위 절벽이 있다. 갈은구곡의 신선세상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라는 뜻이다. 갈은구곡은 계곡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차례로 구곡 이름이 붙여져 있다. 괴산 출신 전덕호(1844∼1922)가 만들었다는 이곳은 아홉 개의 바위 절경마다 각각 다양한 서체의 한시가 새겨져 있는 점이 독특하다. 구곡시가 바위에 빠짐없이 새겨진 유일한 구곡이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바람 앞의 등불처럼 흔들리던 구한말 시대를 살아가던 조선 선비가 이상세계(선계)를 그리워하는 애잔한 정서도 느낄 수 있다. 신선이 내려온 강선대(降僊臺·제3곡), 신선을 상징하는 일곱 마리 학이 사는 칠학동천(七鶴洞天·제8곡), 신선들이 바둑을 두는 바위인 선국암(仙局암·제9곡) 등이 그렇다. 선국암에는 실제로 바둑판도 새겨져 있다. 2015년 9월 선국암에서는 바둑으로 입신의 반열에 오른 김인과 유창혁의 대결이 벌어졌다. 두 입신은 두루마기를 걸치고 음각된 바둑판에서 신선놀음을 했다.

한낮 무더위에 찾은 갈은구곡에서는 뒤늦게 피서를 즐기는 관광객들도 눈에 띄었다. 계곡의 승경과 맑은 물을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갈은구곡을 소개하는 안내판 하나도 없는 게 옥에 티라고나 할까.
○자동차로 즐기는 화양구곡과 선유구곡
군자산 남쪽의 화양구곡과 선유구곡은 자동차를 이용해 구곡을 즐길 수 있다. 먼저 화양구곡은 조선시대 성리학자인 우암 송시열(1607∼1689)이 한때 머물렀던 곳으로 유명하다. 2014년 전국의 구곡 중 최초로 명승(국가지정문화재)으로 등록된 화양구곡은 보통 주차장 옆에 위치한 제1곡인 경천벽을 출발점으로 해서 제9곡인 파천까지의 3.1km 거리를 가리킨다.

화양구곡의 암서재(위)와 물속 모래가 금싸라기 같다고 해서 붙여진 금사담(제4곡·아래 물길).
구름이 맑게 비치는 옥빛 연못 같은 제2곡 운영담을 지나면 동그란 구멍이 무늬처럼 새겨진 제3곡 읍궁암, 제4곡 금사담이 나타나는데 이 일대가 바로 송시열 유적지다. 금사담 건너편에는 송시열이 후학을 길렀다는 암서재가 운치 있게 자리 잡고 있다. 인근에 복원된 만동묘와 화양서원도 송시열과 관련이 깊은 유적지다.

이곳이 조선 성리학의 정신적 중심 역할을 한 때문인지 일제강점기에 박아놓은 쇠말뚝이 유독 많이 발견됐다고 한다. 이 전 교수는 “읍궁암 암반에서 5개, 금사담 암반에서 6개의 쇠말뚝이 나왔다”면서 “조선 유교문화의 도맥을 이어가는 성소(구곡)에다 정기를 끊기 위해 쇠말뚝을 박은 것은 일제의 용서받지 못할 범죄 행위”라고 말했다.

계곡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큰 바위가 첩첩이 쌓인 제5곡 첨성대, 구름을 찌를 듯 높다는 제6곡 능운대가 나온다. 암벽마다 구곡 이름을 새긴 각자(刻字)를 찾아보는 즐거움도 있다. 이곳을 관리하는 속리산국립공원사무소는 화양동 탐방지원센터에서 능운대까지 친환경 무공해 전기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버스는 15명이 탑승할 수 있고, 운행 횟수는 하루 8회로 무료다.

용이 누워 꿈틀거리는 모습을 닮았다는 제7곡 와룡암부터는 산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청학이 바위 위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았다는 제8곡 학소대를 지나면 최종 목적지인 제9곡 파천(혹은 파곶)이 나온다. 파천은 흰 바위들이 넓게 펼쳐져 있고 그 위로 흐르는 물결이 용의 비늘을 꿰 놓은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는 계곡의 물 흐름이 ‘巴’ 형상으로 흐르기 때문에 붙여진 것으로도 보인다. 파천에는 수백 년 전부터 자신이 다녀갔음을 인증하는 이름과 벼슬명이 바위 곳곳에 새겨져 있다.

선유구곡의 연단로(제4곡)는 평평한 바위 윗부분은 가운데가 절구처럼 파였는데, 신선들이 불로장생 약인 금단(金丹)을 만드는 화로라는 뜻을 갖고있다.
화양구곡이 송시열로 상징된다면 선유구곡은 퇴계 이황과 깊은 관련이 있다. 퇴계는 이녕이 설정한 선유8경의 시를 지어주었다. 그 후 1700년대 노론계열 4명의 선비가 제1곡인 선유동문을 비롯해 경천벽, 학소암, 연단로, 와룡폭포, 난가대, 기국암, 구암, 은선암 등 선유9곡을 지었다고 한다. 계곡 입구에 대규모 주차장이 있고 승용차를 이용해 계곡 끝까지 올라갈 수 있다. 승용차를 이용할 때는 구곡 길이 일방통행이므로 반드시 입구인 제1곡에서 제9곡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구곡 중간중간에 쉼터가 있어 잠깐씩 멈춰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글·사진 괴산=안영배 기자·철학박사 oj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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