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이슈&뷰]발전설비의 ‘파손’과 ‘정지’를 구별해야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입력 2020-09-22 03:00 수정 2020-09-2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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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으로 고리-월성 원전 정지
송전선 고장으로 복구 이후 가동
원전은 자연재해에 대비해 설계
가장 마지막까지 발전할 설비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지난 태풍에 원자력발전소가 정지한 것을 놓고 말들이 많다. 원전이 안전하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안전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이 많고, 또 원전이 위험하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무엇이 위험한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원전의 위험성에 대한 개인의 판단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라기보다는 감(感)으로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의견은 누구나 가질 수 있으나 근거 없는 의견을 주장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이번 폭우에 꽤 많은 산사태가 발생하였고 태양광발전 시설이 파손되었다. 물론 풍력발전기도 많이 넘어졌다. 이들은 문자 그대로 파손된 것이다. 더 이상 발전기로서의 성능을 발휘할 수 없는 폐기물이 된 것이다.

태풍에 고리와 월성 원전이 정지되었다. 송전선이 고장 나서 발전(發電)한 전기를 보낼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니 원전을 정지시킨 것이다. 이것은 발전소로서의 기능이 상실된 것이 아니다. 송전선만 복구하여 다시 가동하면 그만인 것이다.

지구 온난화가 다가오는 위험이고 실재하는 위험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온실가스를 줄이는 일인가 아니면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것인가? 이 두 가지는 같지 않다.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것은 온실가스를 줄이는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예컨대 태양광이나 풍력 자원이 좋은 곳에서는 전력 생산이 잘되고 온실가스를 줄여줄 것이다. 그러나 햇빛도 바람도 좋지 않은 곳에서는 땅만 낭비할 뿐 많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온실가스를 가장 잘, 그리고 값싸게 줄일 수 있는 원자력발전을 제외하고 온실가스를 줄이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선동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하여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 사고가 발생하였다. 후쿠시마 일대에 남은 시설이 하나도 없을 정도였다. 2만 명 이상이 지진해일(쓰나미) 때문에 사망하였으며, 원자력발전소도 침수되고 발전소 사고로 이어졌다.

같은 날 동일본 대지진 진앙에서부터 후쿠시마 원전보다 더 가까운 원자력발전소가 있었다. 오나가와(女川) 원자력발전소이다. 이 지역도 쓰나미로 인하여 4층 건물 높이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살아남은 시설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오나가와 원전은 살아남았다. 갈 곳이 없어진 지역 주민 200여 명이 오나가와 원전 강당에 모여 거기서 지냈다. 오나가와 원자력발전소장은 그분들의 식량을 구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고 술회하였다.

원자력발전소는 본질적으로 위험한 기술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시설에 비해 훨씬 더 위험한 자연재해에 대비하여 설계되어 있다. 이 말은 다른 시설이 더 약한 강도의 자연재해에 의해 파손될 때 파손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소는 큰 자연재해가 왔을 때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남아서 발전을 할 설비이다. 발전을 못 하게 된다면 정지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파손된 것은 아니다.

나는 현명한 국민이 파손과 정지를 동일시하지 않기를 바란다. 원전의 정지나 고장을 사고라고 우기는 선동에 속지 않기를 바란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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