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법도 몰라요” EU 탄소배출 신고 1주앞 기업들 혼란
김예윤 기자 , 김재형 기자 , 파리=조은아 특파원
입력 2024-01-23 03:00 수정 2024-01-23 03:19
EU ‘탄소배출량’ 31일까지 신고
신고 안하면 수출기업에 과징금
국내 1700개 기업 준비 미흡
“바이어 측 요구사항이라 이달 말까지 꼭 제출해야 하는데 탄소배출량 신고 자료를 어떻게 채워야 할지 막막할 따름입니다.”
유럽연합(EU) 지역에 철강제품을 수출하는 부산의 제조업체 A사는 최근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지난해 12월 말 현지 고객사로부터 ‘다음 달 말까지 수출 제품의 탄소배출량 신고 자료를 제출해 달라’는 요구가 온 게 발단이었다. A사는 아직 업무 담당자도 못 정했던 상태에서 부랴부랴 내부 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했지만 뚜렷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EU 바이어가 요구한 탄소배출량을 산정하려면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 같은 직접 배출량뿐 아니라 수출 제품을 만들기 위해 기계를 가동할 때 소요된 전력까지 계산해야 한다. A사 관계자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어떤 기계를 몇 시간 작동했는지 등을 따져 계산해야 한다. 관련 데이터만 엑셀로 3만∼4만 줄”이라며 “어떻게 자료를 만들어야 할지 막막해 정부 설명회도 찾아다녔지만 개념 중심이라 큰 도움이 안 됐다”고 했다.
이달 31일 EU가 도입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의 첫 탄소배출량 보고 기한을 앞두고 관련된 국내 기업 1700여 곳이 혼란에 빠졌다. CBAM은 EU가 수입 제품의 생산·제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배출량에 따라 ‘탄소국경세’를 부과하는 제도다. 탄소배출량 규제가 강한 EU 기업들이 불이익을 받는 걸 막겠다며 만든 관세 장벽이라 국제적으로는 ‘유럽판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통한다. 이 제도에 따라 2022년 기준으로 한국의 대 EU 수출액 중 약 7.5%인 51억 달러(약 6조8000억 원)의 품목이 이달 말부터 탄소배출량 신고 대상이 됐다.
한국철강협회 주최로 열린 ‘중소·중견 철강기업 EU CBAM 설명회’에 중소·중견기업 관계자 등 40여 명이 모였다. 참석자들은 노트에 필기를 하거나 강연 프레젠테이션 화면을 촬영하기도 했다. 강연을 마치자 참석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포항에서 온 철강 제조업체 관계자는 “대기업들은 국내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들에는 ‘탄소배출량 신고’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78.3%는 ‘EU 탄소국경세’에 대해 모른다고 답했다. 2022년 EU 수출 실적이 있거나 진출 계획이 있는 기업 142개 중 54.9%도 ‘특별한 대응 계획이 없다’고 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정부와 민간 유관 기관이 합동 설명회 등을 열며 홍보하고 있지만 해당되는 기업 1700여 곳에 일일이 연락하며 상황을 설명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결국 기업들은 신고 기한이 닥쳐서야 정부에 문의를 쏟아내고 있다. 환경부의 헬프데스크 상담은 지난해 10월 29건에서 11월 49건, 12월 59건, 그리고 이달은 22일 현재까지 111건으로 급증했다.
EU 집행위원회는 탄소배출량 산정에 필요한 일부 계수를 지난해 12월 말에 발표하기도 했다. 한국철강협회 관계자는 “기업들이 협회로도 질문을 많이 하는데 EU 규정 자체가 불확실한 부분이 있어 우리도 시원하게 대답을 못 할 때가 적지 않다”고 했다.
정부는 ‘범부처 대응 전담팀(TF)’을 운영하고 있지만 현장 상담창구는 제각각이다. 산자부 헬프데스크는 규정 등 개념 관련 질의를, 환경부 헬프데스크는 탄소배출량 산정 방법에 대한 조언을 돕고 있다. 한편 중소벤처기업부는 이달 11일에야 부처 내 전담 지원조직 설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길게는 1년 반 전부터 자체적으로 대응팀을 운영하며 대비해 온 대기업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2022년 8월부터 사내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해 온 포스코는 이미 지난해 4분기 생산된 수출품의 탄소 배출량을 EU 지역 수입사에 보고했다. 지난해 5월 탄소 중립 로드맵을 발표한 현대제철도 지난해 4분기 탄소배출량 보고를 여유 있게 마쳤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국내 대형 철강사들은 탄소국경세 도입을 중국산 철강제의 추격을 뿌리칠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있다”고 했다.
탄소국경세는 EU 외에도 영국 등에서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영국은 2027년 탄소국경조정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기후 정책이 덜 엄격한 국가에서 수입되는 저렴한 제품에 비해 자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 우려된다며 올해 대상 품목을 정하고 이행 규정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미국은 아직 제도가 마련되진 않았지만 지난해 6월 상원에 관련 법안이 발의되며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신고 안하면 수출기업에 과징금
국내 1700개 기업 준비 미흡
16일 서울 강남구 섬유센터 콘퍼련스홀에서 한국철강협회 주최로 열린 ‘중소·중견 철강기업 유럽연합(EU) 탄소국경조정제도 설명회‘에서 기업 관계자 등 40여 명이 강연을 듣고 있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바이어 측 요구사항이라 이달 말까지 꼭 제출해야 하는데 탄소배출량 신고 자료를 어떻게 채워야 할지 막막할 따름입니다.”
유럽연합(EU) 지역에 철강제품을 수출하는 부산의 제조업체 A사는 최근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지난해 12월 말 현지 고객사로부터 ‘다음 달 말까지 수출 제품의 탄소배출량 신고 자료를 제출해 달라’는 요구가 온 게 발단이었다. A사는 아직 업무 담당자도 못 정했던 상태에서 부랴부랴 내부 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했지만 뚜렷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EU 바이어가 요구한 탄소배출량을 산정하려면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 같은 직접 배출량뿐 아니라 수출 제품을 만들기 위해 기계를 가동할 때 소요된 전력까지 계산해야 한다. A사 관계자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어떤 기계를 몇 시간 작동했는지 등을 따져 계산해야 한다. 관련 데이터만 엑셀로 3만∼4만 줄”이라며 “어떻게 자료를 만들어야 할지 막막해 정부 설명회도 찾아다녔지만 개념 중심이라 큰 도움이 안 됐다”고 했다.
이달 31일 EU가 도입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의 첫 탄소배출량 보고 기한을 앞두고 관련된 국내 기업 1700여 곳이 혼란에 빠졌다. CBAM은 EU가 수입 제품의 생산·제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배출량에 따라 ‘탄소국경세’를 부과하는 제도다. 탄소배출량 규제가 강한 EU 기업들이 불이익을 받는 걸 막겠다며 만든 관세 장벽이라 국제적으로는 ‘유럽판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통한다. 이 제도에 따라 2022년 기준으로 한국의 대 EU 수출액 중 약 7.5%인 51억 달러(약 6조8000억 원)의 품목이 이달 말부터 탄소배출량 신고 대상이 됐다.
‘7조원 EU수출품목’ 탄소배출 신고 대상… 中企 절반 무대책
EU 탄소배출 신고 혼란
中企 78% 탄소국경세 아예 몰라… 신고기한 닥쳐서야 정부 문의 봇물
대기업은 1년전부터 준비 ‘여유’
英-美도 도입 움직임… 부담 커질듯
16일 서울 강남구 섬유센터 콘퍼런스홀.中企 78% 탄소국경세 아예 몰라… 신고기한 닥쳐서야 정부 문의 봇물
대기업은 1년전부터 준비 ‘여유’
英-美도 도입 움직임… 부담 커질듯
한국철강협회 주최로 열린 ‘중소·중견 철강기업 EU CBAM 설명회’에 중소·중견기업 관계자 등 40여 명이 모였다. 참석자들은 노트에 필기를 하거나 강연 프레젠테이션 화면을 촬영하기도 했다. 강연을 마치자 참석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포항에서 온 철강 제조업체 관계자는 “대기업들은 국내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들에는 ‘탄소배출량 신고’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 중소기업 78% “제도 자체 모른다”
EU는 2019년경부터 2050년 탄소 실질 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다는 탄소 중립을 목표로 내세우며 ‘탄소국경세’를 추진해 왔다. 또 지난해 탄소국경세 도입 일정을 확정해 지난해 4분기(10∼12월) EU에 대상 품목을 수출한 기업들은 이달 31일까지 첫 탄소배출량을 보고해야 한다.그런데 지난해 10월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78.3%는 ‘EU 탄소국경세’에 대해 모른다고 답했다. 2022년 EU 수출 실적이 있거나 진출 계획이 있는 기업 142개 중 54.9%도 ‘특별한 대응 계획이 없다’고 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정부와 민간 유관 기관이 합동 설명회 등을 열며 홍보하고 있지만 해당되는 기업 1700여 곳에 일일이 연락하며 상황을 설명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결국 기업들은 신고 기한이 닥쳐서야 정부에 문의를 쏟아내고 있다. 환경부의 헬프데스크 상담은 지난해 10월 29건에서 11월 49건, 12월 59건, 그리고 이달은 22일 현재까지 111건으로 급증했다.
● 신고 기한 닥쳤는데 정부 지원 ‘제각각’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는 건 EU에서 요구하는 탄소배출량 계산 방법이 워낙 복잡하기 때문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국내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는 공장 단위로 배출량을 계산한다. 그런데 EU는 제품 단위로 생산 공정 내 모든 탄소배출량을 계산해 방법이 더 복잡하다”고 설명했다.EU 집행위원회는 탄소배출량 산정에 필요한 일부 계수를 지난해 12월 말에 발표하기도 했다. 한국철강협회 관계자는 “기업들이 협회로도 질문을 많이 하는데 EU 규정 자체가 불확실한 부분이 있어 우리도 시원하게 대답을 못 할 때가 적지 않다”고 했다.
정부는 ‘범부처 대응 전담팀(TF)’을 운영하고 있지만 현장 상담창구는 제각각이다. 산자부 헬프데스크는 규정 등 개념 관련 질의를, 환경부 헬프데스크는 탄소배출량 산정 방법에 대한 조언을 돕고 있다. 한편 중소벤처기업부는 이달 11일에야 부처 내 전담 지원조직 설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길게는 1년 반 전부터 자체적으로 대응팀을 운영하며 대비해 온 대기업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2022년 8월부터 사내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해 온 포스코는 이미 지난해 4분기 생산된 수출품의 탄소 배출량을 EU 지역 수입사에 보고했다. 지난해 5월 탄소 중립 로드맵을 발표한 현대제철도 지난해 4분기 탄소배출량 보고를 여유 있게 마쳤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국내 대형 철강사들은 탄소국경세 도입을 중국산 철강제의 추격을 뿌리칠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있다”고 했다.
● 영국, 미국 등도 가세… 부담 커질 듯
2022년 조하현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팀 연구에 따르면 한국 기업이 EU 탄소국경세 도입으로 추가 부담해야 하는 금액은 연간 약 5309억 원으로 추산된다. 2026년 제도가 본격 도입되면 철강, 알루미늄 등 6개 품목에서 대상이 EU 수입품 전체로 확대되면서 부담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탄소국경세는 EU 외에도 영국 등에서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영국은 2027년 탄소국경조정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기후 정책이 덜 엄격한 국가에서 수입되는 저렴한 제품에 비해 자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 우려된다며 올해 대상 품목을 정하고 이행 규정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미국은 아직 제도가 마련되진 않았지만 지난해 6월 상원에 관련 법안이 발의되며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탄소국경세 |
탄소배출량에 따라 부과되는 무역 관세. 지난해 유럽의회는 철강 등 6개 업종에 탄소국경세 부과를 결정했다. 현재는 시범 기간으로 2026년부터 관세가 부과된다. 하지만 탄소배출량 신고 의무는 생겨 올 1월 말까지 신고를 안 하면 1t당 10∼50유로(약 1만5000∼7만5000원)의 과징금이 부과된다. |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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