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나이도 학교도 묻지않는 요즘 은행들

남건우 기자

입력 2019-06-10 03:00 수정 2019-06-10 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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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취업비리 사태 1년, 확 바뀐 채용 풍경


"H ○○○번 지원자는 은행에 지원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홍모 씨(27)는 지난해 KEB하나은행 면접장에서 이름이 아닌 번호로 불렸다. 면접이 나이 출신 학교 전공 이름 등을 모두 가린 채 진행됐기 때문이다. 홍 씨는 “2017년 채용 비리 사태 이후 은행들이 블라인드 면접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지난해 6월 대검찰청은 구속 12명을 포함해 38명을 기소하는 내용의 시중은행 채용 비리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수사 결과 특정인을 합격시키기 위해 채용 조건을 임의로 바꾸는가 하면 ‘청탁 대상자 명부’까지 관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은행 인사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진 지 1년, 은행권의 채용 풍경이 완전히 바뀌었다. 본보 취재팀이 은행권 취업준비생 5명과 최근 2년 내 은행에 취업한 5명을 인터뷰한 결과 은행들은 필기시험을 외부 업체에 위탁하거나 채점자의 주관이 개입할 수 있는 논술 전형을 폐지하는 등 논란을 차단하려 애쓰고 있었다.


○ 이름도 나이도 안 묻는 블라인드 채용 확산


강모 씨(24)는 지난해 우리은행 채용면접 전 은행 인사 담당자로부터 ‘출신 학교나 나이 등 자신을 나타낼 수 있는 내용을 절대 말하지 말라’는 당부를 수차례 들었다. 김모 씨(27) 역시 실수로 전공과 관련된 내용을 IBK기업은행 면접에서 말했다가 “그런 건 말하면 안 된다”는 지적을 받았다.

지원자들은 블라인드 면접에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강 씨는 “완전히 믿을 단계는 아니지만 은행이 신뢰를 회복하려 애쓴다는 느낌이 들었다”라고 했다. 김 씨도 “예전에는 ‘은행에 들어가려면 나이가 어릴수록 유리하다’는 말이 많았는데 요즘 면접장에 가보니 30대 후반이 있을 뿐더러 입사 동기 중에는 30대 중반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블라인드라는 채용 방식을 강조한 탓에 은행들이 자율적으로 다양한 인재를 뽑기 어려워졌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블라인드 면접을 하면 도리어 합격자가 특정 대학이나 지역 출신에 쏠릴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그는 “전국에 지점을 둔 은행은 지역별 채용 비중을 감안할 필요도 있는데 지금 방식으로는 그런 안배가 어렵다”고 털어놨다.

은행 중에는 채용 과정 자체를 외부 업체에 전적으로 위탁하는 곳도 있다. 공정성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한 시도지만 그러다 보니 시험 관리에 문제점이 노출되기도 한다. 홍 씨는 “예시문제를 설명하는 시간에는 본문제를 풀면 안 되는데도 본문제를 먼저 풀거나 시험시간이 끝난 이후에도 일부 지원자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계속 문제를 푸는 등 시험 관리가 미흡한 측면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 이공계 늘리는 은행 신규 채용


은행들은 블라인드 방식으로 채용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한편 핀테크 등 새로운 분야에 맞는 인재를 뽑기 위한 다양한 채용 방식을 도입할 예정이다. 국민은행 인사 담당자는 “정보기술(IT) 인력 수요가 늘어나며 인턴십이나 공모전 같은 채용 방식도 고려하고 있다”며 “일반행원 공채의 경우 현행 방식이 유지되지만 IT 분야는 대학과 연계한 채용 프로그램 등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은행 업무의 디지털화로 인해 그동안 인문계가 장악했던 신규 채용시장에 이공계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A은행의 신규 채용자 중 공학 전공자 비중은 2008년 9.6%에서 지난해 14.5%로 늘었다. B은행의 경우 전체 행원 가운데 디지털 인력 비중이 2008년 2.5%에서 지난해 4.1%로 증가했다. 일부 디지털 인력은 임금이 일반 행원에 비해 파격적으로 높고, 출퇴근 등 근태에서도 자율성이 허락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중은행 인사 담당자들은 앞으로도 은행권의 이공계 우대 풍조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남건우 기자 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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