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경영’ 현대차, 제네시스 급발진 대처법 “이럴 수가…”
동아경제
입력 2013-02-04 00:01 수정 2013-02-04 00:01
현대자동차 제네시스가 지난 1월 7일 서울 영등포구 근로복지공단 후문에 위치한 가로수를 들이 받았다. 현재 이 사고는 영등포경찰서에 급발진 추정사고로 접수돼 조사를 받고 있다. 운전자 제공
“분명히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차가 멈추질 않았어요.”
사고차량 운전자 박옥연 씨(58·여)는 약 3주가 지난 사고 순간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했다.
박 씨는 “주행 중 차량에 엄청나게 속도가 붙었다”며 “브레이크를 밟아도 딱딱한 느낌만 들 뿐 제동이 전혀 안됐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말로만 듣던 급발진 현상이 실제로 눈앞에서 벌어졌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밟아도 말 안 듣는 브레이크
딱딱한 느낌이 아직도 생생“
급발진 의심 현상을 일으킨 차량은 현대자동차 2013년 형 제네시스. 지난해 10월 출고된 새 차다.
박 씨가 제공한 블랙박스 영상을 보면 지난달 7일 제네시스는 지하철 1호선 신길역을 지나 오후 1시38분 경 영등포역 방향 왕복 6차선 도로에 진입했다. 이후 1분 동안 특이사항 없이 주행하던 차량은 터널을 통과하자마자 76미터 가량의 도로를 굉음과 함께 질주했다. 같은 시점 후방을 비추는 블랙박스 영상에는 차량 유리 뒤면 중앙에 위치한 브레이크 등에 희미하게 불이 들어온 것이 보인다. 이 불 때문에 운전자는 급발진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박 씨는 “그때 브레이크 작동이 안됐을 뿐더러 핸들까지 잠겨 차량 제어가 아예 불가능했다”며 “속도를 주체하지 못한 차량이 차도와 인도의 경계 턱을 뛰어넘어 가로수를 들이받았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운전자는 오른쪽 무릎 연골이 파열됐고 갈비뼈 5대가 부러지는 등 큰 부상을 입었다. 차량 역시 운전석과 조수석 에어백이 모두 전개되는 등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앞부분이 심하게 파손됐다.
블랙박스 녹화 사고 3초전 멈춰
“차량 전기적 이상 신호 가능성”
특이한 점은 사고 직전 블랙박스도 함께 오작동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사고차량에 창작된 블랙박스는 충돌 3초 전부터 영상 녹화를 잠시 중단했다가 40초 이후 다시 영상을 기록했다.
이는 블랙박스의 결함이 아니라면 차량 내부에서 오작동 신호를 미리 전달받았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의 의견이다. 기계고장분석전문가 장석원 공학박사는 “자동차에서 발생된 전자파 노이즈가 블랙박스 전원선으로 흘러들어가 영상 기록을 순간적으로 멈춘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또한 대림대학 자동차학과 김필수 교수(기술표준원 차량주행기록장치표준화위원회 위원장)도 “블랙박스 오작동의 원인은 수십 가지가 있고 우선 기계 자체의 결함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차량에서 공급되는 전기적 이상 신호(과부하)에 의해서도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ECU 오작동 급발진 현상 유발
완성차들 BOS 장착해 사고예방
운전자 측의 주장대로 속도가 갑자기 상승함과 동시에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았다면 두 가지 상황으로 추정할 수 있다. 가속·감속 페달을 동시에 밟았거나 엔진제어장치(ECU) 오작동이 발생했을 경우다. 전자는 가속페달을 힘껏 밟아 스로틀 밸브가 최대로 열린 상태에서 동시에 감속페달을 조작하면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다. 하지만 완성차업체들은 BOS(Brake Override System·이하 BOS)을 장착해 이로 인한 사고를 방지하고 있다. BOS는 자동차 엔진을 컨트롤하는 소프트웨어로 자동차가 제동과 가속 신호를 동시에 보낼 때 제동 신호를 우선시해 강제로 차를 세우게 하는 장치다. 또한 각기 다른 위치에 있는 두 페달 구조상 웬만한 성인남성도 동시에 밟기는 어렵다.
후자는 운전자 의지와 상관이 없다. 엔진제어장치가 오작동해 스로틀 밸브를 최대로 열라고 지시한 것. 흔히 말하는 급발진 의심 현상이다. 이는 에어백ECU안의 사고기록장치(Event Data Records·이하 EDR)를 분석해 사고 5초전 속도와 브레이크 작동유무, 가속페달 조작 등의 기록을 보면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공통적으로 이 두 상황에서는 브레이크 작동이 안 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자동차 급발진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 논문에는 “가속 페달에 의해 스로틀 밸브가 개방되면 흡기매니폴드에는 흡입 부압이 형성되지 않고 부스터가 제동 페달 답력을 증폭할 수 없게 된다”고 명시돼있다. 풀이하면 차량 흡기밸브가 활짝 열리면서 제동 페달을 조작하기 위한 진공이 만들어지지 않아 브레이크 작동이 안 된다는 것이다.
운전자 박 씨는 오른쪽 무릎 연골 파열과 갈비뼈 5대가 부러져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있다.
운전자 스스로 급발진 입증 ‘한계’
현대자동차 ‘나 몰라라’ 발뺌만
정부, 급발진 조사 사실상 손 떼
그러나 운전자 측이 이를 스스로 입증해내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문제의 차량 제작사 측인 현대차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현실은 만만찮다. 또한 정부의 급발진 합동조사단도 지난해 11월 21일 2차 조사 발표 이후 급발진 조사에 대해 손을 놓고 있는 상태.
급발진 추정사고 직후 박 씨의 가족들은 곧바로 사고원인분석을 현대차에 요구했다. 이에 대해 현대차가 내놓은 분석은 정비용 스캐너(진단기)로 간략한 조사를 마친 뒤 고작 차량이 심하게 파손돼 어떠한 조사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자 박 씨 측은 또 급발진을 가려내는데 중요한 정보가 담긴 사고기록장치(Event Data Recorders·이하 EDR) 분석을 재차 의뢰했지만, 현대차는 자사에서 생산한 전 차종에는 EDR이 없고 국내에서는 의무사항도 아니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자료 제공을 거부하겠다는 입장만 전달했다.
박 씨의 자녀 이선령 씨(33)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녹취록을 들려주면서 “현대차가 정확한 근거자료 하나 없이 운전자 과실로만 몰고 있다”며 “오히려 차를 고쳐오면 한번 조사를 해볼 용의는 있다고 얘기하는 태도에 할 말을 잃었다”고 털어놨다.
현대차 전 차종 EDR 적용했지만
운전자에 “제네시스 EDR 없다”
하지만 취재진의 확인결과 현대차의 전 차종에 EDR이 없다는 제작사의 주장은 사실과 달랐다. 교통안전공단이 국내 자동차 제작사들로부터 받은 EDR장착 현황에 따르면 현대·기아자동차는 2008년 이후 출시한 전 차종에서 이벤트 발생(에어백 전개) 시 사고데이터를 에어백ECU에 기록한다. 또한 지난해 급발진 합동조사반에서도 1·2차 대상 차량이었던 기아차 스포티지R과 현대차 YF쏘나타의 EDR을 사고기록추출장비(CDR)로 읽어 차량 상태를 확인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현대차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EDR공개가 법적으로 의무화가 되지 않기 때문에 고객이 원해도 제작사가 받아줄 이유는 없다”고 취재진에 밝혔다.
국내법으로는 오는 2015년부터 자동차회사는 운전자가 원하면 차량 EDR를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지난해 9월부터 소비자가 원할 시 EDR 기록을 공개하는 법안을 시행하고 있다.
한편 운전자 측은 결국 현대차와의 대면에서 별 소득이 없자 이 사고를 관할 경찰서에 신고하고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에 급발진에 대한 조사를 의뢰하기로 했다.
정진수 동아닷컴 기자 brje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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