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의 압박’ 가위눌림… “혈기 부족이 만든 불안”[이상곤의 실록한의학]〈148〉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입력 2024-05-06 23:00 수정 2024-05-07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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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조선 제23대 왕 순조는 10세에 왕위에 올라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가 수렴청정했다. 순조는 증조모인 정순왕후의 섭정으로 주눅이 든 데다 처가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로 기를 펴지 못하고 극심한 스트레스로 괴로워했다. 순조 재위 13년의 승정원일기는 “임금이 웅주산과 인삼석창포차를 복용했다”고 기술한다. 웅주산은 가위눌림을 치료하는 처방이다. 웅주산의 구성 약물은 우황, 웅황, 주사 등 신경을 안정시키는 약물이다. 순조가 받은 심리적 압박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한의학에선 가위눌림을 ‘귀염(鬼魘)’이라고 한다. 글자의 뜻처럼 귀신이 압박한다고 본 것. 동의보감은 이 증상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잠들었을 때는 혼백이 밖으로 나가는데 그 틈을 타 귀신이 침입해 정신을 굴복시킨다. … 껄껄 웃는 소리만 들리고 곁의 사람이 큰 소리로 불러도 깨어나지 못한다.”

한의학은 이런 꿈을 꿀 정도로 불안해하는 가장 큰 원인을 혈기(血氣) 부족에서 찾았다. 현대 과학은 죽음을 생명의 끝이라 정의하지만 우리 선조들은 ‘삶과 죽음은 하나’라 믿었다. “죽었다”고 하지 않고 “돌아가셨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생사가 동그란 원처럼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에서 나왔다. 심지어 ‘괴이한 힘과 귀신’을 인정하지 않는 유교의 유학자들조차 제사라는 형식을 통해 혼백을 부정하지 않았다.

도교에선 인간의 정신을 ‘혼신의백지(魂神意魄志)’ 5가지로 나누는데 혼(魂)은 구름 같은 음신으로 하늘로 돌아가고, 백(魄)은 육신에 붙어 있는 양신으로 땅에 묻히는 존재로 본다. 나무를 태우면 연기는 하늘로 올라가고 재는 땅에 묻히는 것과 같다. 더 구체적으로 백은 육체라는 말과 이어져 있다. 육(肉)은 유기합성물로 미생물에 의해 해체되는 것이고, 체(體)는 육을 이어주는 에너지 덩어리다. 즉, 체가 바로 백이라는 것이다. 죽은 자를 땅에 묻는 행위 또한 에너지 덩어리, 즉 양기(陽氣)의 총합인 백이 음기(陰氣)인 땅과 조화롭게 어우러지게 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동의보감이 “잠을 자면 혼백이 밖으로 나간다”고 한 이유는 뭘까. 우리 조상들은 ‘하늘과 땅이 인간을 만들었다’는 천지인(天地人)의 음양관을 가졌다. 그에 따르면 하늘은 인간의 마음을 만들고 땅은 인간의 육체를 만들었다. 낮이면 양(陽)인 태양과 음(陰)인 육체가 서로 만나고, 밤에는 음인 땅과 양인 영혼이 만나 활동한다는 것. 그래서 잠은 육체엔 휴식이지만 영혼엔 본격적인 활동의 시간이라 너무 힘들면 ‘몸 밖으로 나가 버린다’고 봤다.

이런 음양관의 연장이 가위눌림을 바라보는 한의학적 관점이다. 꿈을 꾸고 불안해하는 가장 큰 원인을 혈기 부족에서 찾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혈기는 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손상받기 때문이다. 반면 현대 의학에선 가위눌림을 ‘수면마비’라고 하는데, 수면장애 증상의 일종으로 본다. 잠자고 있는 동안 풀린 근육이 의식이 깨어났음에도 회복되지 않아 몸을 못 움직인다는 것이다.

한편 주사는 붉은 색깔의 수은성 광물이다. 불꽃이 강하게 타면 줄어드는 기름과 같은 음적인 물질을 보충하는 특이한 약성을 가지고 있어 과거에 주목받았다. 물론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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