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안 손잡은 폭스바겐…독일의 약점이 드러났다 [딥다이브]
한애란 기자
입력 2024-11-16 10:00 수정 2024-11-16 10:00
폭스바겐 그룹. 연간 900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하는 세계 2위 자동차 기업이죠. 이 폭스바겐의 위기가 요즘 독일 경제의 가장 큰 이슈입니다. 얼마 전엔 사상 처음 독일 공장을 폐쇄할 거라고 해 충격을 줬는데요.
전기차에서 길을 잃은 폭스바겐이 반전의 카드를 꺼냈죠. 미국 전기차 스타트업 리비안과의 합작 발표입니다. 뒤처진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리비안을 통해 한방에 만회하겠단 전략인데요. 이 파격적인 행보가 폭스바겐을 구할진 두고 봐야겠지만, 독일 경제엔 상징적 사건이라 하겠습니다. 오늘은 리비안과 손잡은 폭스바겐을 들여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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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어렵냐.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그동안 폭스바겐을 먹여 살려온 가장 큰 시장인 중국에서 판매가 급감했기 때문이죠. 중국에선 전기차, 특히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가 대세인데요. 폭스바겐은 여전히 내연기관차 중심이고, 경쟁력 있는(기술과 가격 모두에서) 전기차 모델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이 거대 독일 자동차 기업은 전기차 경쟁에서 한참 뒤처져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6월 폭스바겐이 미국 전기차 스타트업 리비안과의 합작에 50억 달러(약 7조원)를 투자한다고 밝혔을 때, 업계는 놀라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두 회사가 서로의 약점을 보완할 ‘윈윈’이란 점에서 말이죠.
겉으로만 보면 이 거래는 절대적으로 리비안에 유리합니다. 돈은 모두 폭스바겐이 대고, 리비안은 기술과 지식재산권만 기여하니까요. 리비안은 그동안 전기 SUV와 픽업트럭이 제품력에선 호평받았지만, 연간 생산량이 고작 5만7000대 수준에 그쳐 심각한 적자에 빠져 있었죠. 현금이 바닥났던 리비안엔 단비 같은 투자입니다.
달리 보면 폭스바겐에 이 거래가 그만큼 절실했단 뜻이죠. 폭스바겐은 전기차에서 발목을 잡아 온 결정적인 문제, 전기차용 소프트웨어 기술을 이 미국 스타트업에 맡기기로 한 겁니다. 소프트웨어 자체 개발이 어렵다는 걸 인정한 셈이죠. 리비안이 최근 석 달 만에 생산해 낸 프로토타입 전기차를 두고 폭스바겐 연구개발 책임자 마이클 슈타이너는 이렇게 감탄했습니다. “밤낮으로 일하더라도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자동차에 이것을 설치하고 작동시킬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그동안 폭스바겐 전기차 소프트웨어는 어땠을까요. 2019년 폭스바겐의 순수 전기차 ID.3는 출시와 함께 ‘실패작’으로 평가됐죠. 심각한 소프트웨어 오류로 인해 터치스크린은 종종 먹통이 되고, 이유 없이 차가 급브레이크를 밟는가 하면, 잘못된 경고음이 시도 때도 없이 울린다는 소비자 보고가 쏟아졌는데요. 무엇보다 무선으로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할 수 없다는 점이 지극히 실망스러웠습니다. 업데이트하려면 딜러에 차를 맡겨야만 했죠. 참고로 테슬라는 2012년부터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제공했습니다.
소프트웨어 문제는 폭스바겐 그룹 프리미엄 브랜드의 발목도 잡았습니다. 소프트웨어 개발 일정에 차질이 생기면서 아우디 Q6 e-트론, 포르셰 마칸 EV 같은 전기차 신모델 출시가 3년이나 지연됐죠.
여기서 놀라운 건 폭스바겐이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간과하거나, 투자에 소극적이었던 건 아니란 점입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죠. 2020년 폭스바겐은 각 브랜드에 흩어져있던 엔지니어들을 모아 거대한 소프트웨어 자회사 카리아드(Cariad)를 설립했습니다. 그룹 안에 일종의 실리콘밸리 스타일 기업을 새로 만든 거죠. 당시 그룹 CEO 허버트 디스는 “소프트웨어 중심의 모빌리티 기업으로 변신하겠다”고 선언했고요. 카리아드를 ‘선도적인 소프트웨어 회사’로 키우기 위해 ‘디지털 전문가’ 직원을 1만명까지로 늘리겠다고 약속합니다(현재 직원 수 약 6000명). 실제 테슬라 같은 미국 IT 기업 출신 엔지니어도 적극 영입했고요.
다양한 문제점이 제기되지만(예-부서 간 경쟁, 브랜드별 제각각인 요구사항, 최고경영자의 변덕 등) 가장 많이 지적되는 이유는 이겁니다. 폭스바겐의 지독한 관료주의. 전 카리아드 직원은 FT에 이렇게 말했죠. “카리아드엔 정말 뛰어난 엔지니어들이 있지만, 그들은 결정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건 결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인 문제입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아닌 사람들이 소프트웨어에 대해 결정을 내립니다. 문화의 대부분이 폭스바겐과 아우디의 기존 경영진에 의해 정의됩니다. 그들은 오래된 공급업체와 낡은 사고방식을 버리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테슬라를 이긴다고 얘기하죠.”
“환상적인 워라밸입니다. 회사가 공룡의 속도로 돌아가기 때문에 저는 일주일에 10시간 정도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젊은 엔지니어 경력엔 사형선고일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업무가 거의 없고 관료주의가 너무 많습니다.”
“최고경영진은 소프트웨어가 아닌 기계 제조 전공입니다. 많은 경직성과 레거시 프로세스가 존재합니다.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여러분은 그냥 하세요’라는 태도입니다. 작은 위험조차 감수하길 싫어합니다.”
이와 관련해 독일의 경제 잡지 ‘매니저 매거진’ 분석에서 힌트를 찾았습니다. 이에 따르면 문제는 폭스바겐이 오래된 기계공학적 구조에 디지털 기술을 내장하려고 한다는 겁니다. 소프트웨어 자체를 ‘살아있는 시스템’으로 보는 테슬라와는 애초에 접근법이 달랐죠. 하드웨어 중심의 낡은 사고의 틀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겁니다.
과거의 성공 공식에 갇혀 달라진 패러다임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 과연 폭스바겐 같은 내연기관 자동차 기업만의 문제일까요. 독일 싱크탱크 뮌헨연구소(ISF 뮌헨)의 안드레아스 보에스 대표는 기고문(‘카리아드의 실패는 독일의 약점을 보여준다’)에서 이것이 독일 경제 전반의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가장 뼈 때리는 건 이 문단이었죠.
“새로운 산업생산 방식을 향한 역사적 패러다임 전환을 숙달하는 데 있어서 우리(독일)는 ‘개발도상국’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다른 이들은 우리가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것을 배웠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고 미래의 도전을 인식하지 못하고, 산업화 1단계에서 얻은 이점이 이제 2단계의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물론 폭스바겐과 리비안의 결혼생활이 얼마나 순탄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폭스바겐 노동자 협의회 의장인 다니엘라 카발로는 이미 이렇게 비판했습니다. “이것(리비안과의 합작투자)이 다음번 수십억 유로짜리 무덤이 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이런 회의론이 그럴듯해 보이는 건 독일 자동차 제조사가 유독 다른 나라 기업과의 통합에 서툴렀던 역사가 있기 때문이죠. 9년 만에 처참한 실패로 파경을 맞이한 다임러와 크라이슬러 합병(1998~2007년)이 그랬고요. 무려 4년에 걸친 이혼 소송전(국제중재 재판)을 벌였던 폭스바겐과 스즈키의 제휴(2009~2015년)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허니문 기간입니다. 지금이야 기업문화의 차이조차 매력적으로 보이죠. 리비안 최고경영자인 RJ 스카린지는 폭스바겐이 리비안의 “빠르고 민첩하며 결단력 있고 관료주의적이지 않은” 업무문화를 합작법인에서도 유지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부디 그 마음 변치 않아야 할 텐데요.
폭스바겐은 리비안의 손을 끝까지 놓지 않고 전기차 시장의 강자로 우뚝 설 수 있을까요. 공장 폐쇄와 인력 구조조정으로 비용을 쥐어짜는 가운데도 쏟아붓는 58억 달러 투자는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 움직임이 독일 경제와 자동차 산업의 시대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임은 확실해 보입니다. By.딥다이브
폭스바겐을 포함한 독일 자동차 업계에서 위기론이 나온다는 소식, 1년 전쯤 전해드린 적 있죠(딥다이브 독일차 편). 그 사이에 위기는 더욱 현실로 다가왔고, 살길을 모색하던 폭스바겐이 파격적인 제휴에 나섰습니다. 이런 급박한 움직임을 보니, 정말 자동차 업계가 대격변기로구나 실감합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
-유럽 최대 자동차 제조사 폭스바겐이 미국 전기차 스타트업 리비안의 손을 잡았습니다. 전기차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합작회사 설립에 총 8조원을 투자합니다. 자체 소프트웨어 개발을 포기한 셈입니다.
-이는 폭스바겐의 소프트웨어 자회사 카리아드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카리아드는 선도적인 소프트웨어 기업이 되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출발했지만, 그룹의 시한폭탄으로 전락했습니다. 폭스바겐의 지독한 관료주의가 가장 큰 걸림돌이 됐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과거의 성공에 머무는 낡은 사고방식이 패러다임 전환을 가로막습니다. ‘우리는 디지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인정하는 게 변화의 시작 아닐까요. 독일 경제도, 전통 자동차 산업도 대전환기에 놓였습니다.
*이 기사는 15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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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전기차에서 길을 잃은 폭스바겐이 반전의 카드를 꺼냈죠. 미국 전기차 스타트업 리비안과의 합작 발표입니다. 뒤처진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리비안을 통해 한방에 만회하겠단 전략인데요. 이 파격적인 행보가 폭스바겐을 구할진 두고 봐야겠지만, 독일 경제엔 상징적 사건이라 하겠습니다. 오늘은 리비안과 손잡은 폭스바겐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전후 독일 경제 재건과 유럽 제조업의 상징. 폭스바겐이 흔들린다. AP 뉴시스
*이 기사는 15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https://www.donga.com/news/Newsletter
비상 경영 중 나온 8조원 베팅
폭스바겐, 요즘 어렵습니다. 자동차 판매가 줄고 영업이익이 급감하면서 비상 경영을 선언했죠. 올해 1~3분기 영업이익률은 고작 2%. 1937년 설립 뒤 87년 만에 처음으로 독일 공장 10곳 중 최소 3곳을 폐쇄한다고도 밝혔습니다.왜 이렇게 어렵냐.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그동안 폭스바겐을 먹여 살려온 가장 큰 시장인 중국에서 판매가 급감했기 때문이죠. 중국에선 전기차, 특히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가 대세인데요. 폭스바겐은 여전히 내연기관차 중심이고, 경쟁력 있는(기술과 가격 모두에서) 전기차 모델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이 거대 독일 자동차 기업은 전기차 경쟁에서 한참 뒤처져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6월 폭스바겐이 미국 전기차 스타트업 리비안과의 합작에 50억 달러(약 7조원)를 투자한다고 밝혔을 때, 업계는 놀라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두 회사가 서로의 약점을 보완할 ‘윈윈’이란 점에서 말이죠.
올리버 블루메 폭스바겐 그룹 CEO와 RJ 스카린지 리비안 CEO. 블루메는 두 회사의 제휴를 ‘완벽한 조합’이라고 칭했다. 스카린지가 지난 6월 X에 올린 사진.
그리고 12일 폭스바겐은 리비안과의 합작회사 출범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총투자금은 58억 달러(8조1500억원)로 더 늘었고, 합작회사 CEO는 리비안 최고소프트웨어책임자(CSO)와 폭스바겐 최고기술책임자(CTO)가 공동으로 맡기로 했죠. 양사 엔지니어 1000명으로 구성될 합작사는 전기차 컴퓨터시스템(아키텍처)과 소프트웨어를 개발합니다. 이 기술을 탑재한 전기차는 리비안이 2026년, 폭스바겐이 2027년에 출시할 계획이죠.겉으로만 보면 이 거래는 절대적으로 리비안에 유리합니다. 돈은 모두 폭스바겐이 대고, 리비안은 기술과 지식재산권만 기여하니까요. 리비안은 그동안 전기 SUV와 픽업트럭이 제품력에선 호평받았지만, 연간 생산량이 고작 5만7000대 수준에 그쳐 심각한 적자에 빠져 있었죠. 현금이 바닥났던 리비안엔 단비 같은 투자입니다.
달리 보면 폭스바겐에 이 거래가 그만큼 절실했단 뜻이죠. 폭스바겐은 전기차에서 발목을 잡아 온 결정적인 문제, 전기차용 소프트웨어 기술을 이 미국 스타트업에 맡기기로 한 겁니다. 소프트웨어 자체 개발이 어렵다는 걸 인정한 셈이죠. 리비안이 최근 석 달 만에 생산해 낸 프로토타입 전기차를 두고 폭스바겐 연구개발 책임자 마이클 슈타이너는 이렇게 감탄했습니다. “밤낮으로 일하더라도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자동차에 이것을 설치하고 작동시킬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폭탄이 된 소프트웨어
내연기관차가 수만개 부품이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복잡한 기계장치라면, 전기차는 커다란 스마트폰에 모터와 바퀴를 단 것에 더 가깝습니다. 소프트웨어가 그만큼 핵심 중의 핵심인데요.그동안 폭스바겐 전기차 소프트웨어는 어땠을까요. 2019년 폭스바겐의 순수 전기차 ID.3는 출시와 함께 ‘실패작’으로 평가됐죠. 심각한 소프트웨어 오류로 인해 터치스크린은 종종 먹통이 되고, 이유 없이 차가 급브레이크를 밟는가 하면, 잘못된 경고음이 시도 때도 없이 울린다는 소비자 보고가 쏟아졌는데요. 무엇보다 무선으로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할 수 없다는 점이 지극히 실망스러웠습니다. 업데이트하려면 딜러에 차를 맡겨야만 했죠. 참고로 테슬라는 2012년부터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제공했습니다.
폭스바겐의 터치스크린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폭스바겐 전기차 모델은 초기에 터치스크린이 갑자기 먹통이 되거나 검게 변하는 식의 각종 오류로 소비자 불만이 컸다. 이후 지속적인 업데이트로 이제 크게 개선됐다는 평가다. 하지만 여전히 소프트웨어는 폭스바겐의 약점으로 지적된다. 폭스바겐 홈페이지
이어 2021년 출시된 전기 SUV ID.4는 이전보다 확실히 업그레이드됐지만, 여전히 소프트웨어 문제-스마트폰 연결이 너무 오래 걸리거나, 화면이 검게 변하거나, 주행 충 주차센서가 작동하거나-로 말이 많았습니다. 전기차 판매가 신통찮은 주요 원인이었죠. 소프트웨어 문제는 폭스바겐 그룹 프리미엄 브랜드의 발목도 잡았습니다. 소프트웨어 개발 일정에 차질이 생기면서 아우디 Q6 e-트론, 포르셰 마칸 EV 같은 전기차 신모델 출시가 3년이나 지연됐죠.
여기서 놀라운 건 폭스바겐이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간과하거나, 투자에 소극적이었던 건 아니란 점입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죠. 2020년 폭스바겐은 각 브랜드에 흩어져있던 엔지니어들을 모아 거대한 소프트웨어 자회사 카리아드(Cariad)를 설립했습니다. 그룹 안에 일종의 실리콘밸리 스타일 기업을 새로 만든 거죠. 당시 그룹 CEO 허버트 디스는 “소프트웨어 중심의 모빌리티 기업으로 변신하겠다”고 선언했고요. 카리아드를 ‘선도적인 소프트웨어 회사’로 키우기 위해 ‘디지털 전문가’ 직원을 1만명까지로 늘리겠다고 약속합니다(현재 직원 수 약 6000명). 실제 테슬라 같은 미국 IT 기업 출신 엔지니어도 적극 영입했고요.
폭스바겐, 아우디, 포르셰 등. 카리아드는 모든 폭스바겐 그룹 브랜드를 위한 하나의 통합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제공한다는 목표로 출발했지만, 목표 달성은 요원해졌다. 카리아드 홈페이지
그동안 폭스바겐이 자체 전기차 소프트웨어 구축을 위해 카리아드에 투자한 금액은 무려 120억 유로(17조8000억원)에 달합니다. 하지만 그룹을 위한 미래 기술을 자체 개발해 디지털 경쟁력을 끌어올린다는 계획은 물거품이 됐고, 카리아드는 그룹 내부에서 ‘시한 폭탄’으로 불리는 골칫거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관료주의라는 함정
바로 이 지점에서 의문이 제기됩니다. 폭스바겐을 구원할 줄 알았던 카리아드는 어쩌다 구제 불능 문제아로 전락했을까요. 단순히 독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실력이 미국이나 중국보다 떨어져서는 아닐 텐데요(카리아드는 90개국 이상 국적의 엔지니어가 일한다고 자랑합니다).다양한 문제점이 제기되지만(예-부서 간 경쟁, 브랜드별 제각각인 요구사항, 최고경영자의 변덕 등) 가장 많이 지적되는 이유는 이겁니다. 폭스바겐의 지독한 관료주의. 전 카리아드 직원은 FT에 이렇게 말했죠. “카리아드엔 정말 뛰어난 엔지니어들이 있지만, 그들은 결정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건 결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인 문제입니다.”
독일 볼프스부르크에 있는 자동차 제조업체 폭스바겐의 본사. AP 뉴시스
관료주의? 문화적 문제? 구체적으론 어떤 걸까요. 카리아드 직원을 직접 인터뷰하긴 어려워서 독일권 직장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카리아드 직원의 리뷰를 살펴봤습니다. 그중 몇 가지 눈에 띄는 걸 뽑아보면 이렇습니다.“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아닌 사람들이 소프트웨어에 대해 결정을 내립니다. 문화의 대부분이 폭스바겐과 아우디의 기존 경영진에 의해 정의됩니다. 그들은 오래된 공급업체와 낡은 사고방식을 버리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테슬라를 이긴다고 얘기하죠.”
“환상적인 워라밸입니다. 회사가 공룡의 속도로 돌아가기 때문에 저는 일주일에 10시간 정도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젊은 엔지니어 경력엔 사형선고일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업무가 거의 없고 관료주의가 너무 많습니다.”
“최고경영진은 소프트웨어가 아닌 기계 제조 전공입니다. 많은 경직성과 레거시 프로세스가 존재합니다.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여러분은 그냥 하세요’라는 태도입니다. 작은 위험조차 감수하길 싫어합니다.”
이것은 독일 경제의 위기인가
유럽 최대 자동차 제조사인 폭스바겐 그룹의 이익은 3분기에 63% 감소했다. AP 뉴시스
물론 일부 직원이 익명으로 남긴 리뷰를 얼마나 신뢰할 만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뭐였는지, 왠지 알 것만 같긴 하죠. 그런데 궁금합니다. 폭스바겐은 소프트웨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스타트업 스타일의 별도 회사까지 설립했잖아요. 그럼 좀 자율성을 주고 맡겨놓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 왜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요. 이와 관련해 독일의 경제 잡지 ‘매니저 매거진’ 분석에서 힌트를 찾았습니다. 이에 따르면 문제는 폭스바겐이 오래된 기계공학적 구조에 디지털 기술을 내장하려고 한다는 겁니다. 소프트웨어 자체를 ‘살아있는 시스템’으로 보는 테슬라와는 애초에 접근법이 달랐죠. 하드웨어 중심의 낡은 사고의 틀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겁니다.
과거의 성공 공식에 갇혀 달라진 패러다임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 과연 폭스바겐 같은 내연기관 자동차 기업만의 문제일까요. 독일 싱크탱크 뮌헨연구소(ISF 뮌헨)의 안드레아스 보에스 대표는 기고문(‘카리아드의 실패는 독일의 약점을 보여준다’)에서 이것이 독일 경제 전반의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가장 뼈 때리는 건 이 문단이었죠.
“새로운 산업생산 방식을 향한 역사적 패러다임 전환을 숙달하는 데 있어서 우리(독일)는 ‘개발도상국’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다른 이들은 우리가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것을 배웠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고 미래의 도전을 인식하지 못하고, 산업화 1단계에서 얻은 이점이 이제 2단계의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순탄한 결혼 가능할까
폭스바겐의 전기차 SUV ID.4. 폭스바겐 홈페이지
이제 폭스바겐 그룹은 자체 소프트웨어 개발 대신 리비안과의 합작을 택했습니다. 카리아드라는 거대 폭탄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밝히지 않지만, 아마도 해체될 가능성이 커 보이죠.물론 폭스바겐과 리비안의 결혼생활이 얼마나 순탄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폭스바겐 노동자 협의회 의장인 다니엘라 카발로는 이미 이렇게 비판했습니다. “이것(리비안과의 합작투자)이 다음번 수십억 유로짜리 무덤이 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이런 회의론이 그럴듯해 보이는 건 독일 자동차 제조사가 유독 다른 나라 기업과의 통합에 서툴렀던 역사가 있기 때문이죠. 9년 만에 처참한 실패로 파경을 맞이한 다임러와 크라이슬러 합병(1998~2007년)이 그랬고요. 무려 4년에 걸친 이혼 소송전(국제중재 재판)을 벌였던 폭스바겐과 스즈키의 제휴(2009~2015년)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허니문 기간입니다. 지금이야 기업문화의 차이조차 매력적으로 보이죠. 리비안 최고경영자인 RJ 스카린지는 폭스바겐이 리비안의 “빠르고 민첩하며 결단력 있고 관료주의적이지 않은” 업무문화를 합작법인에서도 유지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부디 그 마음 변치 않아야 할 텐데요.
폭스바겐은 리비안의 손을 끝까지 놓지 않고 전기차 시장의 강자로 우뚝 설 수 있을까요. 공장 폐쇄와 인력 구조조정으로 비용을 쥐어짜는 가운데도 쏟아붓는 58억 달러 투자는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 움직임이 독일 경제와 자동차 산업의 시대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임은 확실해 보입니다. By.딥다이브
폭스바겐을 포함한 독일 자동차 업계에서 위기론이 나온다는 소식, 1년 전쯤 전해드린 적 있죠(딥다이브 독일차 편). 그 사이에 위기는 더욱 현실로 다가왔고, 살길을 모색하던 폭스바겐이 파격적인 제휴에 나섰습니다. 이런 급박한 움직임을 보니, 정말 자동차 업계가 대격변기로구나 실감합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
-유럽 최대 자동차 제조사 폭스바겐이 미국 전기차 스타트업 리비안의 손을 잡았습니다. 전기차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합작회사 설립에 총 8조원을 투자합니다. 자체 소프트웨어 개발을 포기한 셈입니다.
-이는 폭스바겐의 소프트웨어 자회사 카리아드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카리아드는 선도적인 소프트웨어 기업이 되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출발했지만, 그룹의 시한폭탄으로 전락했습니다. 폭스바겐의 지독한 관료주의가 가장 큰 걸림돌이 됐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과거의 성공에 머무는 낡은 사고방식이 패러다임 전환을 가로막습니다. ‘우리는 디지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인정하는 게 변화의 시작 아닐까요. 독일 경제도, 전통 자동차 산업도 대전환기에 놓였습니다.
*이 기사는 15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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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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