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150여년 만에 팔만대장경 직접 인경 나서

이진구 기자

입력 2024-11-13 13:46 수정 2024-11-13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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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경 작업 모습. 먹을 바른 경판에 한지를 대고 찍어내고 있다. 해인사 제공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법보종찰 해인사(주지 혜일 스님)가 150여 년 만에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팔만대장경)’의 직접 인경(印經)에 나섰다. 인경은 인쇄경(印刷經)의 준말로 경판에 먹을 입혀 한지에 인쇄하는 전통 기술이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연구원(연구원장 경암 스님)에 따르면 팔만대장경은 고려 고종 24~35년(1237~1248) 간행된 이후 여러 차례 인경돼 전국 사찰 등에 봉안됐다. 하지만 많은 인경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1383년 본(고려 우왕 9년 인경·일본 교토 오타니대 소장)’ ‘1458년 본(조선 세조)’ ‘1865년 본(해인사 인경)’ ‘1899년 본’ ‘1915년 본’ ‘1968년 본’ 등 6종만 남아있다. 이 중 국가나 왕실의 후원 없이 해인사가 직접 인경한 것은 159년 전인 고종 2년 해명장웅 스님 주도로 간행한 ‘1865년 본’뿐이다. 그나마 6종 모두 일부 경전이 없거나, 경전 중 권 또는 장이 없는 등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은 없는 상태다.

인경 작업 모습. 먹을 바른 경판에 한지를 올려놓고 인쇄용 솔인 마렵을 이용해 먹이 묻어나도록 문지르고 있다. 해인사 제공
인경이 중요한 것은 경판 상태를 확인하는 가장 객관적이고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 하지만 팔만대장경 인경은 비용과 인력, 기술 등에서 막대한 공력이 필요한 대불사다. 연구원은 “팔만대장경 인경은 현대의 일반 종이가 아닌 특수제작한 한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한지 값만 20억여 원이 넘게 드는 대불사”라며 “이 때문에 고려, 조선 시대에 인경을 해도 대량으로 만들기 힘들었고, 왕실이 후원한‘세조 본’도 50질이 전부였다”고 말했다.

인경에 필요한 인쇄술을 가르치고 마렵(馬鬣) 등 인경 도구를 만들고 사용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마렵은 조선 시대 사용한 말갈기로 만든 인쇄용 솔로, 먹을 바른 경판에 종이를 올려놓고 먹이 묻어나도록 문지르는 도구다. 연구원은 “경판 인경 작업은 대부분 스님들이 맡았는데, 현대에 들어 새로운 인쇄술이 도입되면서 전통 방식의 인경 기술이 많이 사라진 상태”라며 “150여 년 만의 해인사 직접 인경을 위해 사찰 내에 인경 학교를 설립하고 전문 인력을 육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인사는 “팔만대장경 조성과 인경은 역사적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이뤄져 왔다”며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맞이한 지금 팔만대장경 인경을 통해 국가와 국민의 안녕을 기원할 것”이라고 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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