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가방 신화’ 쓴 해태 우승 포수 최해식 “자존심 버리고 맨발로 뛰었다” [이헌재의 인생홈런]
이헌재 기자
입력 2024-11-11 12:00 수정 2024-11-12 10:53
해태 우승포수에서 중식집 사장님으로 성공한 최해식이 이달 초 한국시리즈가 열린 KIA챔피언스필드를 찾아 포수 자세를 해보이고 있다. 광주=이헌재 기자
최고루는 한때 광주지역에서 가장 잘 나가는 프랜차이즈 중식집 중 하나였다. 몇 해 전까지는 본점을 포함해 17개의 체인점이 지역 곳곳에 자리 잡았다. 하지만 현재는 본점 하나만 최고루라는 간판을 달고 영업 중이다. 최해식은 “모든 매장에서 같은 맛과 품질을 유지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손님들이 불만이 있을 때는 모든 항의 전화가 나한테 쏟아지곤 했다”며 “현재는 마음 편하게 본점만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생 야구만 했던 그가 처음부터 짜장면집을 할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다. 군산상고-건국대를 졸업하고 1991년 쌍방울에 입단한 그는 2000년 해태에서 은퇴할 때까지 10년간 프로 선수 생활을 했다. 통산 타율 0.217이 말해주듯 공격력이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포수로서 좋은 투수 리드와 프레이밍 능력을 갖추고 있었고, 어깨도 강해 도루 저지도 잘했다. 무엇보다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포수였다.
투수 복도 있었다. 당시 한국 프로야구 최강팀으로 군림하던 해태에는 조계현, 이강철, 임창용, 이대진, 김정수, 고 김상진 등 기라성같은 투수가 즐비했다. 최해식은 “‘볼 두 개 먼저 주고 시작하자’라고 자신감을 보인 투수들도 있었다. 최고의 투수들을 공을 받은 것 자체가 행운”이라고 말했다.
선수 은퇴 후 그는 자연스럽게 KIA 배터리 코치로 변신해 후배들을 지도했다. 순조롭게 흘러가던 그의 야구 인생은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 뒤바뀌고 말았다.
2003년 KIA 2군 코치였던 그는 선수단 숙소를 감독하는 일도 맡고 있었다. 그런데 한 선수가 밤늦게 숙소를 ‘탈출’하려다 부상을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3층에서 빗물받이를 타고 1층으로 내려오다 다리가 부러진 것이다. 구단은 그에게 감독 소홀의 책임을 물었다. 그는 “다 큰 성인들의 사생활을 코치가 어떻게 일일이 책임져야 하나. 그 일을 계기로 미련 없이 팀을 떠났다”고 했다.
선수 시절 ‘풀빵’이란 별명으로 불렸던 최해식은 투수 리드와 도루 저지에 특화된 수비형 포수였다. 동아일보 DB
선수 시절부터 입담이 좋았던 그는 한 스포츠케이블 TV의 해설위원으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때마침 아내가 장사를 해보자며 그에게 계약서를 내밀었다. 그런데 그게 중국집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전까지 그는 짜장면과 짬뽕 등을 즐겨 먹었지만, 스스로 만들어본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시작은 초라했다. 홀도 없는 배달 전문 중국집으로 월세는 단돈 50만 원이었다. 그래도 이왕 시작하기로 한 김에 “열심히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요리를 할 줄 모르는 그가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건 배달이었다. 난생 처음 오토바이를 타고 철가방을 들었다. 첫날부터 시련의 연속이었다. 오토바이 운전에 익숙치 않았던 그는 브레이크를 잘못 밟아 미끄러지고 말았다. 음식은 다 엎어지고, 입고 있던 청바지에선 피가 배어 나왔다. 그 모습을 본 아내는 눈물을 흘렸다. 이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 한 번은 넘어질 거 빨리 잘 넘어졌다. 이 정도 각오 없이 장사할 생각 하면 안 된다.”
최해식 대표가 최고루를 찾은 손님들과 기념 사진을 찍었다. 최해식 제공
배달일을 하면서 그는 중요한 교훈을 하나 얻었다. “몸을 움직일수록 돈을 번다”는 평범하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진리였다. 당시 광주 지역에서는 신도시 건설이 한창이었다. 그는 오전 5시가 되면 공사 현장으로 달려갔다. 추운 날씨에는 인부들을 위해 모닥불을 먼저 피워놓았다. 인부들이 도착하면 따뜻한 물을 건네고 전단지를 돌렸다. 더운 여름에는 미리 꽁꽁 얼려놓은 얼음물을 건넸다. 그에 답하듯 인부들은 그의 가게에 몰아서 주문을 했다. 최해식은 “공사판 인부들은 누구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다. 그보다 먼저 현장에 나가 있으면 그분들이 먼저 인정을 해 준다”며 “야구선수나 코치로서의 자존심은 철저히 버리고 맨발로 뛰었다. 그때 그렇게 열심히 한 덕분에 오래 걸리지 않고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고 했다.
배달이 안정되자 주방에서 문제가 생겼다. 장사가 잘된다 싶자 주방장이 월급을 올려 달려며 게으름을 피우기 시작했다. 새 주방장을 들여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최해식은 스스로 요리를 배우기로 했다. 더 많은 돈을 들여 실력 있는 요리사를 스승으로 모셨다. 요리를 마스터하기까지 예정은 2년으로 잡았다.
난생 처음 주방 칼을 잡고, 웍을 들었다. 그런데 요리를 하면서 그는 자신도 모르고 있었던 재능을 발견했다. 요리가 생각대로, 마음 먹은 대로 된 것이다. 그는 “요리 하나하나가 빨리 이해가 됐다. 단순히 따라 하는 것을 넘어 창의적인 요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6개월 만에 “하산해도 좋다”는 말을 들었다. 이후 그는 주방에서 새로운 요리를 만드는 즐거움은 느꼈다. 그가 개발해낸 대표적인 요리는 최고루의 시그니처 메뉴가 된 볶음짬뽕이다. 이 밖에 그는 물짜장과 굴짜장 등 트렌드에 따라 새로운 요리를 계속 개발해냈다. 이후 체인점을 늘려갈 때마다 그는 주방장을 가르칠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천주교에 귀의한 최해식은 성당 신부님, 수녀님들과 함께 1년에 최소 두 번은 짜장면 봉사를 한다. 최해식 제공
본점 하나만 운영하는 요즘은 그는 주방에 상주하진 않는다. 요리사 두 명과 보조 한 명 등 세 명이 현재 가게의 요리를 만든다. 하지만 손님이 많거나, 주문이 밀려들 때는 그가 직접 웍을 잡는다. 최해식은 “야구를 할 때도 글러브에서 공을 빼는 시간이 빨랐다”며 “요리하는 손도 상당히 빠른 편이다. 점심처럼 한참 바쁠 때 1시간 정도 빨리 요리를 하곤 한다”며 웃었다.
요리를 배우고 난 뒤 그는 20년 가까이 짜장면 봉사를 종종 해오고 있다. 한때는 일 년에 여러 번 노인복지관이나 장애관 복지관을 찾아 짜장면을 무료로 만들었다.
그는 “젊은 때는 종종 했지만 요즘엔 그리 자주 못해 죄송한 마음이다. 일주일에 하루 쉬는데 그때 제대로 쉬지 못하면 언젠가부터인가 체력이 달리더라”라고 했다.
그래도 그는 요즘도 1년에 두 차례는 짜장면 봉사를 빠뜨리지 않는다. 장애인의 날인 4월 20일과 크리스마스를 앞두고다. 몇 해 전부터 천주교 신자가 된 그는 “성당을 다니면서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이 많은 봉사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도 조그만 힘이라도 보태고 싶어 성당에서 봉사를 다니는 장애인 복지관 등에서 짜장면 봉사를 한다”고 했다.
첫 사랑 김숙희 씨와 결혼한 최해식은 예순이 넘어서는 여행을 다니면서 행복하게 살 계획이다. 최해식 제공
열심히 음식을 만들지만 그는 가능한 한 적게 먹으려 한다. 매끼 식사량을 조절하면서 아침과 저녁 등 하루 두 끼만 먹는다. 건강관리는 골프로 한다. 일주일에 하루 쉬는 날이면 필드에 나간다. 카트를 타는 대신 직접 카트를 끌고 다녀야 하는 군 골프장, 일명 체력단련장을 선호한다. 그는 “9홀을 두 번 도는 군 골프장에서 걸으면서 골프를 친다. 높낮이가 있는 데다가 하루에 만 보 이상을 걷게 된다. 꽤 운동이 된다”고 했다. 그는 골프 파트너는 김성한 전 KIA 감독 등 예전 타이거즈 멤버들이다. 그는 “김성한 감독님은 여전히 골프를 잘 친다. 내기를 하면 항상 내 돈을 따서 그 돈으로 밥을 사 주신다”며 웃었다.
50대 후반인 그는 딱 60세까지만 일을 할 생각이다. 이후에는 함께 고생해 온 아내 김숙희 씨(57)과 함께 여행을 다니며 즐겁게 살 생각이다.
최해식은 고등학생 때 첫사랑이던 김 씨를 만나 결혼에 골인했다. 군산상고 시절 서울에 야구를 하러 왔다가 첫 눈에 반해 고백을 한 게 지금까지 이어졌다. 두 사람은 공교롭게 생일이 1월 6일로 같아 서로 생일을 잊을 일도 없다.
그는 “아내가 나를 만나 지금까지 고생을 많이 했다. 예순이 될 때까지 열심히 일한 뒤 여행을 다니며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살 생각”이라며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아내와 함께 언젠가는 바티칸을 꼭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최해식은 아내 덕분에 배우게 된 요리에 대해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는 “요리 기술이 있으니 어느 지역을 가든 아르바이트라도 할 수 있다. 요즘 주방장 일당이 20만 원은 된다고 하더라”라며 웃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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