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간 연속 보행 사족로봇 개발… 산길-모래밭 가리지 않아”[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글·사진 대전=허진석 기자

입력 2024-05-11 01:40 수정 2024-05-11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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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사족 로봇 시대 여는 라이온로보틱스… AI 강화학습 로봇 제어 연구 10년
라이보2 완성… 올해 말부터 양산
배터리사용량 감축-최대시속 21km… 35~50㎏급 가운데 세계 최고 수준
정찰에 탁월… 인명 구조 앞당길 것


황보제민 라이온로보틱스 대표이사 겸 KAIST 교수가 7일 대전 KAIST 연구실에서 사족 로봇 라이보2 개발 원형인 라이보1의 다리를 들어 보이면서 “배터리 사용량을 줄이려고 관절을 부드럽게 움직이게 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사족 로봇으로는 2020년 시장에 나온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스폿(SPOT)’이 유명하다. 사람에게 익숙한 개를 닮은 형상이다. 네 다리로 보행하며 주변을 살피는 모습이 떠오르고, 사람이 밀쳐 내더라도 넘어지지 않고 중심을 잡는 모습 등이 대중의 머릿속에 남아 있다. 근래에는 중국 기업들의 사족 로봇 사업화도 활발해지고 있다.

로봇 공학자들이 동물의 다리 형태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험난한 지형을 뚫고 사람을 구하거나 밟으면 움직이는 물건들이 많은 재난 현장 같은 곳에서도 안정적으로 기동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유리해서다. 또 사족 보행 기술은 우주 탐사 등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는 분야에서도 필수적인, 잠재력이 큰 기술이다.

대전 소재 KAIST에 있는 ‘라이온로보틱스’는 여느 기업과 달리 인공지능(AI)으로 제어하는 사족 로봇을 만드는 스타트업이다. KAIST 기계공학부 황보제민 교수(36)가 작년 10월에 교원 창업으로 회사를 세웠다. 7일 KAIST 연구실에서 만난 황보 교수는 “미국과 중국에서 상업용 사족 로봇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 어려운 지형의 보행과 배터리 사용 시간 측면에서는 개선할 여지가 많아 창업으로 도전하게 됐다”며 “컴퓨터 시뮬레이션상의 경험을 사족 로봇의 AI에 이식할 수 있는 기술 등을 확보해 어려운 지형을 극복했고, 배터리 사용 시간도 8시간까지 늘림으로써 실용적인 활용이 가능토록 했다”고 밝혔다.


●“기존 사족 로봇 배터리 사용 시간 2시간 안 돼”

세계 최장 8시간 연속으로 움직일 수 있는 라이보2. 라이온로보틱스 제공
라이온로보틱스는 작년 말 사족 로봇 ‘라이보2’를 완성했고 올해 말부터 양산에 나설 계획이다. 라이보2는 무게 41kg으로 초속 5.8m(시속 21km)까지의 속도를 낸다. 배터리 시간은 8시간이다. 황보 교수는 “35∼50kg급 사족 로봇 시장에서 라이보2만큼 빠르게 걷고, 배터리 사용 시간도 긴 로봇은 아직 없다”고 했다. 넓은 공장에서 정해진 길을 따라 각종 검사와 장비 점검을 할 수 있고, 긴 모래사장이 있는 해변을 순찰하는 것도 가능하다.

미국이나 중국 대기업이 선보이는 사족 로봇은 대부분 1시간 30분∼2시간 정도 사용이 가능하고, 보행 속도는 초속 2m 이하다.

황보 교수는 “가격 또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 중이다. 비슷한 규모의 중국 사족 로봇의 가격이 1억 원 정도인데, 라이보2는 이보다 더 경쟁력 있는 가격대에 생산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내후년 말에는 가격을 더 많이 낮출 계획이다.


기본 사족 로봇은 짧은 배터리 사용 시간 때문에 사용에 제한이 많다. 라이온로보틱스에 따르면 대형 야외 사업장을 가진 국내 한 대기업은 외국의 사족 로봇을 도입했지만 사업장의 전체 순찰 길이가 8km에 달해 주요 공정 순찰 등에만 제한적으로 사용 중이다.

치안이나 군용으로 사용할 경우 배터리 사용 시간은 더욱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배터리를 남긴 상태에서 출발 지점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순찰이나 정찰 반경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높은 산악 지역으로 조난자를 찾으러 나설 때도 1∼2시간의 배터리 사용 시간으로는 제약이 많을 수밖에 없다.


●컴퓨터상 다양한 지형 학습 후 로봇에 ‘이식’

황보 교수는 AI 강화학습에 기반해 로봇을 제어하는 분야의 전문가다. 컴퓨터상에서 일반 지면은 물론이고 험준한 산악 지형, 모래밭, 자갈밭, 풀밭 등 실제 있을 수 있는 다양한 지형을 만들고, 각 환경에서 최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제어값을 산출할 함수를 생성한다. 이렇게 시뮬레이션을 활용해 AI 학습용 데이터를 만들면 실제로는 10년 걸려 쌓을 경험을 몇 시간 내에도 해결할 수 있다. 황보 교수는 “엔비디아와 딥마인드, 그리고 우리만 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했다. 이런 식으로 생성한 함수는 라이보의 AI 칩에 이식된다. 라이보는 네 다리로 지각한 최소한의 데이터로 최적의 함수를 찾아 적은 계산량으로 관절을 빠르게 제어한다.

기존 사족 로봇은 대부분 모델 기반 방식으로 제어된다. 로봇 몸체의 동역학을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그때그때 계산하는 방식이다. 이 계산량이 많아 배터리 소모도 많다. 외부 환경을 인식하기 위해 카메라와 라이다(LiDAR) 센서까지 달아야 하는 것도 배터리에는 부담이다.

황보 교수는 “강화학습 기반의 제어는 지형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더라도 로봇을 안정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며 “라이보2는 여느 로봇과 달리 모래밭이나 자갈밭, 무너지기 쉬운 재난 현장과 같은 가변적인 지면에서도 안정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장점”이라고 했다. 라이보2는 현재 카메라나 라이다 없이도 안정적 보행이 가능하다. 비전 정보를 활용하는 선택 옵션도 개발 중이다.

라이온로보틱스는 라이보2에 들어가는 주요 부품을 직접 개발하면서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했다. 예컨대 구동기에는 유성기어가 쓰이는데 기어비를 최적화함으로써 열 손실을 줄여 배터리 사용 시간을 늘렸다. 모터제어기와 모터도 직접 개발하며 에너지 소모를 기존에 비해 20∼50%가량 줄였다. 구동기와 다리, 몸체 등 주요 부위를 모듈화해 고장이 났을 때 여느 사족 로봇들과 달리 필요한 부분만 교체하면 되도록 했다.


●가족 이민으로 캐나다서 공부하고 귀국해 창업

황보 교수는 중학교 때 온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을 가게 되면서 고교와 대학을 캐나다에서 다녔다. 캐나다 토론토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는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ETH) 대학원에서 2013년 석사 학위, 2019년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1년은 취리히 연방공대 로보틱 시스템 랩에서 박사 후 연구원을 지냈고, 2020년 3월부터 KAIST 교수로 근무 중이다. 스위스에서 있을 때는 산업용 사족 로봇 ‘애니멀(ANYmal)’의 개발에도 참여했다.

2019년 로봇 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에 발표한 ‘다리 달린 로봇을 위한 민첩하고 역동적인 운동 기술 배우기’ 논문은 네이처가 선정한 그해 논문 10선에 선정될 정도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라이온로보틱스의 직원은 대학원생을 포함해 총 6명이다. 4년가량 강화학습 기반 사족 로봇 제어 기술을 같이 연구한 대학원생들이 주축이다. 황보 교수는 “강화학습을 기반으로 한 사족 로봇 제어는 이제 막 시작되는 분야”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창업을 한 이유에 대해서는 “대학원 다닐 때쯤부터 연구를 위한 연구보다는 실제 사용 가능한 로봇을 만드는 연구자가 되고 싶었다”며 “연구 결과가 집적돼 자연스럽게 창업을 하게 된 것 같다”고 했다.

현재 라이온로보틱스가 처음으로 완성한 라이보2는 외국에 팔려 나간 상태다. 올해도 대여섯 대 더 판매할 계약이 맺어져 있다.

향후 사족 로봇은 사람이 장기 거주하기 힘든 곳 등에서 사람을 대신해서 감시와 순찰 업무를 하게 될 공산이 크다. 산업 현장에서는 해양 플랜트와 화학공장, 발전소 등에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육지와 먼 해양 플랜트에서 사족 로봇이 플랜트 시설을 돌아다니며 설비 이상 유무를 알려줄 수 있다. 군에서는 해변이나 산악에서 정찰을 목적으로 사족 로봇을 활용할 수 있다.

황보 교수는 “지형에 구애받지 않는 라이보2는 산업용 검사 로봇과 군용 로봇, 치안 유지 로봇 등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글·사진 대전=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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