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家 장자’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 별세
박재명 기자
입력 2015-08-15 03:00 수정 2015-08-15 03:00
후계 밀린뒤 해외유랑 ‘비운의 삶’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남인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사진)이 중국에서 폐암 등 지병으로 사망했다. 향년 84세.
CJ그룹은 “이 명예회장이 14일 오전 9시 39분 중국 베이징(北京)의 한 병원에서 지병으로 사망했다”고 이날 밝혔다. 이 명예회장은 2012년 일본에서 폐암 진단을 받고 폐의 3분의 1을 잘라냈다. 이듬해 암이 부신(콩팥 위에 있는 기관)과 림프절로 전이되면서 중국에서 치료를 받다 숨졌다.
가족 중 누구도 이 명예회장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2남 1녀 가운데 장남인 이재현 CJ 회장(55)은 구속집행정지 상태로 서울대병원에 입원 중이다. CJ그룹은 이 명예회장의 빈소를 서울대병원에 마련하며 이재현 회장은 상주로서 빈소를 찾을 예정이다. 딸인 이미경 CJ E&M 부회장(57)은 사망 당시 미국에 체류하고 있었다. 차남인 이재환 재산커뮤니케이션즈 대표(53)가 14일 중국으로 출국했다.
이 명예회장은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가(家)의 장자(長子)였지만 파란만장한 인생 굴곡을 겪었다.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아버지였다. 이병철 창업주는 그에게 모든 것을 주었다 다시 거둬들였다.
이 명예회장은 1931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나 1962년 삼성화재의 전신인 안국화재에 입사하며 경영에 발을 디뎠다. 1966년 삼성의 ‘사카린 밀수 사건’이 터지자 이 명예회장은 아버지 대신 경영 전면에 나섰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등 그룹 내 주요 기업의 부사장 직책을 맡으며 ‘대권’을 쥐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1973년 여름 이 창업주는 장남을 불렀다. “네가 가진 삼성 직책이 몇 개나 되노?” 이 창업주는 종이에 적어 온 이 명예회장의 직책 17개를 일일이 연필로 죽죽 긋더니 3개만 남겨뒀다. ‘기업인 이맹희’는 그때 끝났다. 그는 동생 이창희 전 새한미디어 회장이 청와대에 삼성의 비리를 투서한 사건의 ‘배후’로 지목됐다. 이 명예회장은 회고록 ‘묻어둔 이야기’에서 “나에게 다시 대권이 주어질 것이라고 믿었지만 끝내 (아버지와) 화해하지 못했다”고 적었다. 이 창업주는 1976년 삼성의 후계자로 3남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지명했다.
이후 이 명예회장은 떠도는 삶을 택했다. 1987년 아버지 사망 전까지는 국내, 그 이후에는 해외 각지를 돌았다. 제일제당은 이 창업주 사후에 부인인 손복남 CJ 고문(82)을 통해 아들인 이재현 회장에게 계승됐다. 이 명예회장은 “동생(이건희 회장)에게 부담을 줄 수 없어 자발적으로 남아프리카와 남미, 미국, 일본 등을 돌았다”고 말했다. 1990년에는 총기 밀반입과 과속 교통사고 등 사건사고로 화제를 모았다.
2000년 이후에는 자택을 마련한 중국에 주로 머물렀다. 한 재계 관계자는 “‘비운의 황태자’나 ‘삼성의 양녕대군’ 등으로 표현되는 세간의 관심을 피하기 위해 중국에 거처를 잡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명예회장은 2012년 이건희 회장을 대상으로 “아버지의 차명 주식 상속분을 돌려 달라”며 7100억 원대 소송을 제기했지만 1, 2심 모두 패소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남인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사진)이 중국에서 폐암 등 지병으로 사망했다. 향년 84세.
CJ그룹은 “이 명예회장이 14일 오전 9시 39분 중국 베이징(北京)의 한 병원에서 지병으로 사망했다”고 이날 밝혔다. 이 명예회장은 2012년 일본에서 폐암 진단을 받고 폐의 3분의 1을 잘라냈다. 이듬해 암이 부신(콩팥 위에 있는 기관)과 림프절로 전이되면서 중국에서 치료를 받다 숨졌다.
가족 중 누구도 이 명예회장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2남 1녀 가운데 장남인 이재현 CJ 회장(55)은 구속집행정지 상태로 서울대병원에 입원 중이다. CJ그룹은 이 명예회장의 빈소를 서울대병원에 마련하며 이재현 회장은 상주로서 빈소를 찾을 예정이다. 딸인 이미경 CJ E&M 부회장(57)은 사망 당시 미국에 체류하고 있었다. 차남인 이재환 재산커뮤니케이션즈 대표(53)가 14일 중국으로 출국했다.
이 명예회장은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가(家)의 장자(長子)였지만 파란만장한 인생 굴곡을 겪었다.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아버지였다. 이병철 창업주는 그에게 모든 것을 주었다 다시 거둬들였다.
이 명예회장은 1931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나 1962년 삼성화재의 전신인 안국화재에 입사하며 경영에 발을 디뎠다. 1966년 삼성의 ‘사카린 밀수 사건’이 터지자 이 명예회장은 아버지 대신 경영 전면에 나섰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등 그룹 내 주요 기업의 부사장 직책을 맡으며 ‘대권’을 쥐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1973년 여름 이 창업주는 장남을 불렀다. “네가 가진 삼성 직책이 몇 개나 되노?” 이 창업주는 종이에 적어 온 이 명예회장의 직책 17개를 일일이 연필로 죽죽 긋더니 3개만 남겨뒀다. ‘기업인 이맹희’는 그때 끝났다. 그는 동생 이창희 전 새한미디어 회장이 청와대에 삼성의 비리를 투서한 사건의 ‘배후’로 지목됐다. 이 명예회장은 회고록 ‘묻어둔 이야기’에서 “나에게 다시 대권이 주어질 것이라고 믿었지만 끝내 (아버지와) 화해하지 못했다”고 적었다. 이 창업주는 1976년 삼성의 후계자로 3남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지명했다.
이후 이 명예회장은 떠도는 삶을 택했다. 1987년 아버지 사망 전까지는 국내, 그 이후에는 해외 각지를 돌았다. 제일제당은 이 창업주 사후에 부인인 손복남 CJ 고문(82)을 통해 아들인 이재현 회장에게 계승됐다. 이 명예회장은 “동생(이건희 회장)에게 부담을 줄 수 없어 자발적으로 남아프리카와 남미, 미국, 일본 등을 돌았다”고 말했다. 1990년에는 총기 밀반입과 과속 교통사고 등 사건사고로 화제를 모았다.
2000년 이후에는 자택을 마련한 중국에 주로 머물렀다. 한 재계 관계자는 “‘비운의 황태자’나 ‘삼성의 양녕대군’ 등으로 표현되는 세간의 관심을 피하기 위해 중국에 거처를 잡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명예회장은 2012년 이건희 회장을 대상으로 “아버지의 차명 주식 상속분을 돌려 달라”며 7100억 원대 소송을 제기했지만 1, 2심 모두 패소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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