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병일]뉴 실크로드가 TPP를 만날 때
동아일보
입력 2015-05-26 03:00 수정 2015-05-26 03:00
화평굴기 꿈꿔 온 중국… 아시아 귀환 추진해 온 미국
뉴 실크로드와 TPP 만남은 21세기 亞평화-번영 추구할 새틀
두 강대국 사이 한국의 선택
‘경제는 中, 안보는 美’ 아닌 전략적 가교가 되는 것이다
AIIB의 출범은 중국과 중앙아시아-서남아시아-중동-유럽을 육로와 해로로 연결하려는 중국의 야심 찬 일대일로(一帶一路) 청사진의 실현 가능성을 높였다. 효과적인 재정 확보 없이는 도상계획에 불과할 21세기 뉴 실크로드 구상은 AIIB 출범으로 조금 더 구체화되는 느낌이다. 일대일로 청사진 제시, AIIB 출범으로 이어지는 중국의 거침없는 행보를 두고, 이제 ‘중국의 세기’가 시작되고 있다고 흥분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30년간의 고속성장이 끝나가는 중국 경제가 그 성장 과정에서 일구어 낸 산업과 기업들에 새로운 활로를 제공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에 지켜보자는 신중론은 자칫하면 반중국적인 시각으로 치부될 수 있다.
21세기 초대형 토목공사는 분명 엄청난 건설 수요와 파급효과를 일으킬 것이지만, 뉴 실크로드의 동쪽 끝에 위치한 대한민국에 그 기회가 고스란히 옮겨오지는 않을 것이다. 좌고우면 끝에 AIIB에 가입하긴 했지만, 본격적인 전략적 고민은 이제부터 더 치열해져야 한다. 중국이 주도하는 뉴 실크로드가 한국에 기회의 땅으로 바뀌려면, 중국과의 경제협력이 더 높은 차원으로 심화되어야 하고, 뉴 실크로드가 지나가는 국가들과의 새로운 경제협력 전략이 모색되어야 한다. 그 전략의 핵심은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것을 한국이 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중국발 뉴 실크로드가 멋지게 만들어지더라도 그 실크로드를 질주할 내용물이 부족하고 부실하고 빈약하다면, 실크로드는 거품을 만들어 낸 것이고 그 거품의 붕괴는 경제위기로 연결될 것임을 역사는 보여준다. 중국 정부는 이를 잘 알고 있다. 스스로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천명했고, 이를 위해 서비스 산업 발전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개방과 경쟁이 서비스 발전의 핵심인 것도 이미 간파했다. 문제는 서비스·투자 개방의 방향은 정해졌지만, 어떤 일정으로 어떤 방식으로 개방이 이루어질 것인가이다. 중국의 경제성장의 결과 등장한 기득권 계층의 반대를 설득하고 극복해야 하는 숙제를 풀어야 한다. 이 때문에 미국-중국 양자투자협정(BIT) 협상 역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이 자국 내 정치적인 반대로 타결 직전까지 온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결승점 통과에 난항을 겪고 있음과 유사한 상황이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되었지만, 중국의 서비스산업과 투자 개방은 후속 협상을 기다려야 한다. 이 대목에서 한국은 미국을 빌려야 한다. 한국과 중국 간의 서비스·투자 후속 협상이 한중 FTA 발효 후 2년 내 시작된다고 합의한 이유는 현재 진행 중인 미국과 중국 간의 BIT 때문이다. 만약 중국이 미국의 국내적 반대를 극복하고 양국 간의 BIT 협상을 타결한다면, 한국과 중국의 서비스·투자 후속 협상은 수월해질 것이다. 상황이 여기까지 전개된다면, 중국이 미국이 주도하는 TPP 가입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담론의 장에서 만난 중국학자는 중국이 낙후된 서비스산업을 발전시키려면 개방으로 가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TPP에 가입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뉴 실크로드와 TPP의 만남은 아시아로의 귀환을 추진해 온 미국과 화평굴기를 꿈꾸어 온 중국의 전략적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21세기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는 새로운 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 딜레마에 빠진 한국을 두고 일부에서는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이라는 선택을 주문하지만 한국의 전략적 구상은 그런 단순함을 거부해야 한다. 뉴 실크로드가 TPP와 만날 수 있도록 가교를 건설하는 것이 한국의 미래를 위한 청사진이 아닐까.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뉴 실크로드와 TPP 만남은 21세기 亞평화-번영 추구할 새틀
두 강대국 사이 한국의 선택
‘경제는 中, 안보는 美’ 아닌 전략적 가교가 되는 것이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5월은 국제적 규모의 지적 토론장이 유난히 많이 열리는 때이다. 어디 가나 단연 화두는 중국이다. 중국이 국제담론의 장에서 신데렐라가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지금 중국에 쏟아지는 관심은 작년 이맘때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다. 그것은 미국의 집요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구상이 대성황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아시아 지역의 낙후된 도로 철도 항만 공항 통신 전력 등 인프라 개선을 위해서는 기존 세계은행이나 아시아개발은행(ADB)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경제 논리를 근거로 하는 AIIB 기획을 미국이 저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미국의 동맹국들 중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들이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AIIB에 참여한 상황을 두고, 지금 국제담론 장터에서는 미래 역사의 향로를 가늠해 보려는 논의로 북적거린다.AIIB의 출범은 중국과 중앙아시아-서남아시아-중동-유럽을 육로와 해로로 연결하려는 중국의 야심 찬 일대일로(一帶一路) 청사진의 실현 가능성을 높였다. 효과적인 재정 확보 없이는 도상계획에 불과할 21세기 뉴 실크로드 구상은 AIIB 출범으로 조금 더 구체화되는 느낌이다. 일대일로 청사진 제시, AIIB 출범으로 이어지는 중국의 거침없는 행보를 두고, 이제 ‘중국의 세기’가 시작되고 있다고 흥분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30년간의 고속성장이 끝나가는 중국 경제가 그 성장 과정에서 일구어 낸 산업과 기업들에 새로운 활로를 제공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에 지켜보자는 신중론은 자칫하면 반중국적인 시각으로 치부될 수 있다.
21세기 초대형 토목공사는 분명 엄청난 건설 수요와 파급효과를 일으킬 것이지만, 뉴 실크로드의 동쪽 끝에 위치한 대한민국에 그 기회가 고스란히 옮겨오지는 않을 것이다. 좌고우면 끝에 AIIB에 가입하긴 했지만, 본격적인 전략적 고민은 이제부터 더 치열해져야 한다. 중국이 주도하는 뉴 실크로드가 한국에 기회의 땅으로 바뀌려면, 중국과의 경제협력이 더 높은 차원으로 심화되어야 하고, 뉴 실크로드가 지나가는 국가들과의 새로운 경제협력 전략이 모색되어야 한다. 그 전략의 핵심은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것을 한국이 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중국발 뉴 실크로드가 멋지게 만들어지더라도 그 실크로드를 질주할 내용물이 부족하고 부실하고 빈약하다면, 실크로드는 거품을 만들어 낸 것이고 그 거품의 붕괴는 경제위기로 연결될 것임을 역사는 보여준다. 중국 정부는 이를 잘 알고 있다. 스스로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천명했고, 이를 위해 서비스 산업 발전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개방과 경쟁이 서비스 발전의 핵심인 것도 이미 간파했다. 문제는 서비스·투자 개방의 방향은 정해졌지만, 어떤 일정으로 어떤 방식으로 개방이 이루어질 것인가이다. 중국의 경제성장의 결과 등장한 기득권 계층의 반대를 설득하고 극복해야 하는 숙제를 풀어야 한다. 이 때문에 미국-중국 양자투자협정(BIT) 협상 역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이 자국 내 정치적인 반대로 타결 직전까지 온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결승점 통과에 난항을 겪고 있음과 유사한 상황이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되었지만, 중국의 서비스산업과 투자 개방은 후속 협상을 기다려야 한다. 이 대목에서 한국은 미국을 빌려야 한다. 한국과 중국 간의 서비스·투자 후속 협상이 한중 FTA 발효 후 2년 내 시작된다고 합의한 이유는 현재 진행 중인 미국과 중국 간의 BIT 때문이다. 만약 중국이 미국의 국내적 반대를 극복하고 양국 간의 BIT 협상을 타결한다면, 한국과 중국의 서비스·투자 후속 협상은 수월해질 것이다. 상황이 여기까지 전개된다면, 중국이 미국이 주도하는 TPP 가입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담론의 장에서 만난 중국학자는 중국이 낙후된 서비스산업을 발전시키려면 개방으로 가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TPP에 가입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뉴 실크로드와 TPP의 만남은 아시아로의 귀환을 추진해 온 미국과 화평굴기를 꿈꾸어 온 중국의 전략적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21세기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는 새로운 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 딜레마에 빠진 한국을 두고 일부에서는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이라는 선택을 주문하지만 한국의 전략적 구상은 그런 단순함을 거부해야 한다. 뉴 실크로드가 TPP와 만날 수 있도록 가교를 건설하는 것이 한국의 미래를 위한 청사진이 아닐까.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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