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폴크스바겐 폴로 “한여름 밤 정적을 깨우다”
동아경제
입력 2013-08-24 09:00 수정 2013-08-24 09:00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달려야 했다. 밤의 정적을 깨우는 디젤 엔진음과 급한 회전구간에서 들려오는 간헐적 타이어의 비명을 제외한다면 어느 때 보다 음산한 침묵이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붉은색 폴크스바겐 폴로는 44번 국도를 따라 늦은 밤 설악산을 관통하는 한계령을 넘고 있다. 휴가철 지옥 같은 교통체증을 피해 달려온 우회 노선으로는 최고의 선택이지만, 한여름 밤의 열기를 날려버릴 정도로 서늘한 도로의 분위기와 차급을 뛰어넘는 폴로의 주행성능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기억을 남겼다.
1.6리터 디젤엔진과 7단 듀얼클러치 변속기를 탑재한 폴로는 엔진회전수 4200rpm에서 최고출력 90마력, 1500~2500rpm에서 최대토크 23.5kg.m의 성능을 발휘한다. 수치적으로는 출력부분에서 부족한 듯 보이지만 가벼운 차체와 실용영역에서 발휘되는 엔진의 반응이 이상적인 주행을 가능하게 했다.
오르막으로 시작된 한계령의 곡선도로에서 폴로의 거침없는 가속성능은 90마력이라는 수치를 재차 들여다 볼 정도로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좌우로 깊게 돌아나가는 곡선주로에서 60~70km/h를 넘나들며 엔진의 최대출력을 쥐어짜듯 내뱉는 힘이 이상적이다.
민첩한 핸들링과 단단한 하체를 통한 주행의 즐거움은 폴크스바겐의 엔트리급 모델에서도 여전히 느낄 수 있는 독일차의 특징이다. 때로는 저속의 오르막 구간에서 느껴지는 변속 충격에 아쉬움도 들지만 전반적인 주행성능은 분명 차급을 뛰어넘는 실력이다.
오르막 구간을 넘어 한계령휴게소에서 잠시 쉬면서 폴로의 외관을 자세히 살펴봤다. 전장 3970mm, 전폭 1685mm, 전고 1450mm의 차체는 분명 경차를 연상시킨다. 상위 라인업에 위치한 골프보다 229mm 짧고 94mm 좁은 몸집은 실내에 탑승할 경우 기아차 모닝이나 쉐보레 스파크와 견줄 만큼 비좁다. 경차혜택이라도 받는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사실상 경차보다는 차체크기가 조금씩 더 크다.
폴로의 외관은 폴크스바겐의 디자인 정통성을 따르고 있다. 그래서인지 상급의 골프와도 비슷한 외형이다. 날카로운 전조등과 가로 형태의 라디에이터 그릴이 낯설지 않다. 차량 전체로 곧게 뻗은 수평선은 그릴과 전조등, 사이드라인으로 연결돼 야간 점등 시 L자형으로 빛나는 후미등까지 이어진다. 간결하지만 정제된 디자인으로 폴크스바겐의 철학을 표현했다.
국내 도입된 모델은 R라인 디자인 패키지가 적용된 모델로 폴크스바겐 산하에서 고성능 및 특화 모델을 전문적으로 개발하는 ‘R GmbH’가 디자인한 옵션들이 적용됐다. 앞뒤 스포츠 범퍼, 고광택 블랙 라디에이터 그릴, 바디 컬러 사이드 실, 리어 스포일러, 크롬 테일파이프, 16인치 말로리 휠(Mallory Wheel) 등으로 외관을 꾸몄다.
화려한 외관에 비해 실내는 다소 소박한 모습이다. 옵션으로 제공된 내비게이션을 제외한다면 수동 조작되는 에어컨 조절장치를 비롯해 첨단장비와는 거리가 먼 듯 보이는 편의장치로 구성됐다. 또한 성인 남성이 탑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뒷좌석은 물론이고 장시간 운전에 여전히 큰 걸림돌로 존재하는 요추받침 하나 없는 직물시트 등은 경차조차 화려한 편의사양을 자랑하는 국산차와는 비교된다.
한계령휴게소에서 잠깐의 휴식을 뒤로하고 곧 바로 내리막 코스를 질주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르막에서 느낄 수 없던 핸들링과 제동성능을 더욱 분명히 입증하는 계기가 됐다. 코너의 끝이 보이지 않는 급격한 커브에서 폴로의 핸들링 성능은 더욱 확실한 믿음을 선사하며 차체를 좌우로 자연스럽게 이끌었다. 이때 조금이라도 속력을 더하면 타이어가 비명을 질렀지만 브레이크에 발을 올리는 순간 곧바로 속도가 줄면서 디젤엔진 특유의 소음만 들려왔다.
폴크스바겐 폴로 1.6 TDI R라인의 가격은 2490만 원이다.
김훈기 동아닷컴 기자 hoon14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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