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헤리티지를 기리다” ‘세계 게임 명예의 전당’[조영준의 게임 인더스트리]

조영준 게임동아 기자

입력 2024-05-10 10:00 수정 2024-05-10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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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브룩헤이븐 국립 연구소에서 개발된 인류 최초의 전자오락 ‘테니스 포 투’(Tennies for two)가 등장한 이후 게임 산업은 6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영화, 소설 등 기존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훌쩍 뛰어넘는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명예의 전당 초대 입성작 ‘테트리스’
게임 산업의 성장은 하드웨어 기술 발전의 속도와 발맞추어 빠르고 급격하게 진행됐는데요. 1971년 최초의 아케이드게임 ‘컴퓨터 스페이스’가 발매된 지 불과 10년 만에 게임은 매년 수백 개의 신작이 등장할 정도로, 거대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발전했고, 현재는 하루에도 수백 개의 게임이 전 세계 곳곳에서 출시되는 중이죠.

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 게임의 역사적인 유산 이른바 ‘헤리티지’를 기리는 프로젝트가 있는데요. 바로 미국 뉴욕주 로체스터에 있는 ‘더 스트롱 국립 박물관’에서 선정하는 ‘세계 비디오 게임 명예의 전당’(World Video Game Hall of Fame)입니다.

더 스트롱 국립 박물관
●미국의 국립 박물관이 선정하는 게임 명예의 전당

이 ‘세계 비디오 게임 명예의 전당’은 2015년부터 시작됐습니다. ‘더 스트롱 국립 박물관’은 1990년부터 인류사에 등장한 놀이의 역사를 수집, 보존 및 해석하는 다양한 전시전을 진행하는 것으로 유명한 곳인데요. 게임 역시 이 놀이의 범주에 포함되어 2015년부터 매년 ‘세계 비디오 게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작품을 선정하고 있습니다.

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게임은 4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합니다. 널리 알려졌고, 유명세를 지닌 ‘상징성’. 시간이 지나도 인기를 유지하는 ‘지속성’. 국경과 지리에 구애받지 않는 ‘접근성’. 그리고 대중에게 큰 영향을 미친 ‘영향력’이 이 4가지 조건입니다.

명예의 전당 헌액작 소개 페이지
그냥 일시적으로 인기를 얻거나, 몇몇 지역에서만 흥행하거나, 단순히 돈만 많이 번 게임들은 이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수 없죠.

선정 방식 역시 까다롭습니다. 우선 박물관 직원 위원회에서 게임을 추천하고, 이를 전세계의 학자와 언론인으로 구성된 약 30명의 위원회의 심사 및 공개 여론조사가 진행되어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작품 3개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특히, 일종의 인기투표라 할 수 있는 공개 여론조사의 결과가 전문가들의 표와 동일하게 계산되는데요. 이는 대중을 즐겁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임의 특수성을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까다로운 과정을 거치다 보니 ‘세계 비디오 게임 명예의 전당’에 선정된 게임에 대한 반대 의견이나 비판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미국 MLB(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이 매년 논란에 휩싸인 것과 비교하면 취향도 성향도 다른 전세계 게임 유저들을 납득하게 만드는 이 명예의 전당 프로젝트가 얼마나 객관적으로 운영되는 알 수 있는 부분이죠.


●고개를 끄떡이게 만드는 헌액작들

그렇다면 이 ‘세계 비디오 게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게임은 무엇이 있을까요? 이 프로젝트가 시작된 2015년 최초로 헌액작으로 선정된 게임은 ‘팩맨’, ‘퐁’, ‘둠’, ‘테트리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WOW) 그리고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였습니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1985년 출시된 닌텐도의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는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마리오가 처음 전면에 등장한 작품이고, 소련에서 시작되어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게임이 된 ‘테트리스’는 냉전 시대를 거쳐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게임으로 기록된 작품이죠.

FPS의 신기원을 연 ‘둠’
또한, 1인칭 슈팅 게임(FPS)의 기틀을 세운 ‘둠’은 지금도 냉장고, ATM 기기 심지어 임신테스트기까지 디스플레이만 있으면 어디에나 설치하는 기묘한 ‘밈’(meme)을 자랑하는 게임이며, 1972년 출시된 ‘퐁’은 미국에서 동전을 부족하게 만들 정도로 인기를 끌어 게임 산업을 확장시킨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이와 함께 ‘심즈’, ‘마인크래프트’, ‘포켓몬스터 레드 & 그린’, ‘스트리트 파이터2’ 등의 작품도 명예의 전당 헌액작인데요. 이 게임들은 하나 같이 시대와 장르를 대표하는 게임들이고, 이 중에는 단순한 흥행을 넘어 현대 문화에도 큰 영향을 미친 작품도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헌액작들의 명성이 워낙 높다 보니 매년 ‘명예의 전당’ 후보에 오른 게임들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고, 이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화제가 되는 사례도 더러 발생하고 있습니다.


●‘스타크래프트’와 ‘도키메키 메모리얼’이 여기에? 이색적인 헌액작들

‘세계 비디오 게임 명예의 전당’은 장르를 가리지 않습니다. 단지 앞서 소개한 4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면 되는데요. 이 때문인지 상당히 이색적인 게임도 헌액작에 포함되어 있고, 특이한 게임도 후보에 오르고 있습니다.

스타 크래프트 리마스터
이 헌액작 중에는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도 있습니다. 2021년 헌액된 ‘스타크래프트’는 한국에서 PC방 문화를 만들고, e스포츠의 토대를 닦을 정도로 인기가 높은 게임이죠. 이 한국에서 보여준 어마어마한 파급력이 명예의 전당 입성에도 큰 역할을 해서 역대 PC에서 가장 많이 팔린 전략 게임이라는 것과 함께 한국에서의 선풍적인 인기로 e스포츠 문화를 정착시켰다고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바비 패션디자이너
2023년에는 ‘바비 패션 디자이너’(Barbie Fashion Designer)가 헌액되었습니다. 1996년 이 게임은 유명 캐릭터 바비의 옷을 갈아입히는 이른바 ‘옷 입히기’ 게임인데요. 소녀 취향의 단순해 보이는 이 작품은 의외로 당시 인기 게임이었던 ‘둠’과 ‘퀘이크’를 가뿐히 누르고 60만 장 이상의 판매량을 올린 대 히트작이었습니다. 여기에 패션 및 제작 툴을 지닌 ‘옷 입히기’ 기능으로 수많은 소녀들에게 PC 디자인 기능을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한 것도 이 게임이 선정된 요인 중 하나였습니다.

도키메키 메모리얼
의외의 후보작도 있는데요 바로 ‘도키메키 메모리얼’입니다. 2024년 명예의 전당 후보작으로 선정되어 엄청난 화제가 된 이 게임은 1994년 코나미에서 발매한 연예 시뮬레이션 게임입니다. 이 ‘도키메키 메모리얼’은 일본에서만 출시되어 ‘접근성’ 부분에서 다소 맞지 않지만, 당시 연예를 소재로 한 작품이 성인물이었던 것과 달리 최초의 ‘非 성인물 연예 게임’으로 출시됐다는 점과 캐릭터의 호감을 쌓는 이른바 ‘관계 시스템’을 대중화시킨 공을 인정받아 후보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이처럼 ‘세계 비디오 게임 명예의 전당’ 프로젝트는 2015년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이슈와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권위를 쌓아가고 있는데요. 한국 게임사에서 만든 작품도 이 명예의 전당 후보에 오를 수 있을지 앞으로의 모습이 궁금해집니다.

조영준 게임동아 기자 jun@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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