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는 끝까지 읽죠?… 전세사기 예방부터 철학까지 다 있어요”[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허진석 기자
입력 2023-08-19 01:40 수정 2023-08-19 01:40
지식과 만화 연결한 지식 교양 플랫폼 시장 여는 ‘노틸러스’
인문학 자연과학 공학 전공 작가들… 다양한 그림체로 지식과 교양 전달
베트남에는 학습만화 출판으로 진출… “학습만화 업계의 디즈니 꿈꿔”
‘책은 사지만 끝까지 읽지는 않는다.’ 세계 대다수의 독자가 느끼는 문제점이다. 노틸러스(대표이사 이성업·47)는 지식의 흡수가 필요한 성인들을 대상으로 필요한 지식을 재미있게 습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지식과 만화를 결합한 콘텐츠를 기획하는 스타트업이다. 서울 마포구 본사에서 7월 말 만난 이 대표는 “만화 완독률은 일반 서적의 3배, 자연과학 서적의 7배에 이른다”며 “시대와 국가, 언어, 연령에 구애받지 않는 검증된 지식 전달 미디어인 만화로 성인을 위한 지식 콘텐츠 시장을 열고 싶다”고 했다.
이 대표는 웹툰 기업인 레진코믹스 대표이사 출신이다. 만화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노틸러스와 공통점이 있다. 한국과 미국의 대학에서 순수미술과 시각디자인, 산업디자인 등 미술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를 두루 배웠다. KAIST 문화기술대학원에서는 디자인을 전공했다. 이후 네이버 등에서 일했다. 네이버에서는 N드라이브와 라인 팀에서 일했다. 큰 회사의 부속품으로 일하는 것에 불만이 쌓일 때쯤 레진코믹스 합류 제안을 받고 2013년 7월에 창업 초기의 레진코믹스로 옮겼다. 레진코믹스에서는 서비스 기획,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등 작품 생산 과정을 지원하는 거의 모든 업무를 했다. 웹툰 생태계를 몸으로 익힌 시기였다.
레진코믹스가 작가들과 소송을 하게 되는 일에 휩싸이면서 이사진과 주주들에 의해 2018년 10월에 레진코믹스 대표이사가 됐다. 작가들의 탈퇴로 대표이사가 된 이후 적자가 계속됐던 레진코믹스는 2020년 해외 매출에 힘입어 흑자로 전환시킬 수 있었다. 2021년 회사가 매각되면서 노틸러스를 창업하게 됐다.
돌파구를 찾다가 한국의 학습만화 시장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의 학습만화 콘텐츠는 일본 온라인 서점 아마존에서 1위를 포함해 판매량 50위 안에 23개나 되는 작품이 들어갈 정도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초등학생 등을 상대로 한 ‘와이(Why) 시리즈’와 ‘보물찾기 시리즈’, ‘살아남기 시리즈’ 등이 국내외에서 모두 경쟁력을 갖추고 오랫동안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대부분이 20년 넘게 꾸준히 팔리면서 수천만 부의 판매 기록들을 가지고 있다.
승산은 여기에 있다고 봤다. 온라인의 발달로 지식은 어디에나 널려 있다. 하지만 영양소가 많이 든 음식을 먹는다고 몸에 무조건 흡수되는 것이 아니듯 널려 있는 지식도 소화가 잘되도록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성인을 위한 지식 교양 만화 사이트 ‘이만배(이걸? 만화로 배워!?)’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이만배 사이트에는 현재 종교와 문학 인문학 신화 역사 경제 게임 의학 과학 밀리터리 테크 실용 등의 분야로 나뉘어 111개의 콘텐츠가 올라 있다. 해부학과 자동차 정비법을 다룬 콘텐츠도 있다. 레진코믹스 출신 유명 작가를 포함해 100여 명의 작가와 150여 작품을 계약해 둔 상태다.
글과 그림의 결은 다양하다. 무겁고 진중한 글과 그림이 있는가 하면 톡톡 튀는 글에 명랑 만화 같은 가벼운 그림체도 있다. 꾸준히 인기가 좋은 콘텐츠는 북유럽 신화다. 이 대표는 “마블 만화와 많은 게임이 북유럽 신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보니 북유럽 신화에 대한 관심이 커서인 것 같다”고 했다. 최근에 올라온 만화 중에는 ‘피스톨 스토리’가 있다. 대한민국 최초의 권총 교양 만화라고 알리면서 ‘권총으로 꿰뚫은 역사적 순간들’을 담았다고 소개하고 있다. 기존에 책으로 출판된 주제뿐만 아니라 시사성이 있는 주제로 연재되는 작품들도 있다. ‘두지 씨의 전세금을 지켜라: 전세사기 특별편’은 이른바 ‘빌라왕’으로 불리던 업자들이 어떻게 시세를 조작하고 시세 이상으로 대출을 받아내고, 세입자를 어떻게 유혹하는지를 핵심만 담아 사회 초년생들이 알기 쉽게 소개하고 있다.
이만배의 콘텐츠는 20대와 30대의 젊은층이 많이 본다. 이 대표는 “특히 대학생이 많은데, 고교 때보다 만나는 사람의 폭이 넓어지면서 자신이 특정 분야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부족하다고 느끼게 되고, 자기 계발을 열심히 하려는 욕구가 높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전문지식을 전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각 분야를 전공한 사람들이 작가로 나서는 경우가 많다. 공대생으로서 트랜지스터의 발명 과정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걸 다른 사람과 나누기 위해 만화를 그렸다가 공학 전반의 숨은 이야기들을 전달하는 작가가 있고, 생물학을 전공하면서 진화생물학 관련 만화를 꾸준히 그리는 대학원생도 있다. 서양철학의 특징을 비교하기 위해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 같은 철학자들을 같은 반 학생으로 등장시켜 순정 만화처럼 그리는 철학 부전공자 작가도 있다. 지식 전달의 목적이 희석되지 않도록 필요하면 전문가가 감수를 하고, 참고 문헌도 밝혀 둔다.
노틸러스에서 일하는 이들은 대부분 웹툰 분야에서 오랫동안 작가와 작품을 발굴해 온 편집자들이다. 글 작가와 그림 작가가 조화롭게 작품을 완성할 수 있도록 제대로 섭외하는 것이 이들의 중요한 역량이다.
한국의 뛰어난 학습만화 기획 인프라를 활용해 최근에는 베트남 시장에도 진출한다. 국내와 조금 다른 점은 아동용 오프라인 학습만화 시장을 노린다는 점이다. 현지에서 가장 있기 있는 캐릭터를 활용해 ‘주키즈의 수상한 과학스쿨’ 시리즈를 펴내는 것이다. 이 대표는 “한국의 학습만화는 일본과 중국은 물론이고 대만과 동남아시아에서도 인기가 높다”며 “10월 서적 판매를 시작으로 아시아 시장의 교두보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했다.
노틸러스는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지식을 자연스럽게 발견하는 기회를 넓혀주면서 IP 기업이 되는 것이 목표다. 이 대표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철학이나 문학, 심리학, 기술, 재테크 등 알아야 하는 지식들은 늘어나고, 계속 업데이트가 된다”며 “만화를 통해 자신이 알고 싶은 분야를 발견하고 더 깊이 공부할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인문학 자연과학 공학 전공 작가들… 다양한 그림체로 지식과 교양 전달
베트남에는 학습만화 출판으로 진출… “학습만화 업계의 디즈니 꿈꿔”
이성업 노틸러스 대표이사(앞줄 가운데)와 직원들이 2일 서울 마포구 서울창업허브에서 자신들이 온라인에서 제공하는 인기 있는
학습만화의 단행본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전문 지식을 소화하기 쉽게 만들고 전파하는 것이 노틸러스의 임무다. 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책은 사지만 끝까지 읽지는 않는다.’ 세계 대다수의 독자가 느끼는 문제점이다. 노틸러스(대표이사 이성업·47)는 지식의 흡수가 필요한 성인들을 대상으로 필요한 지식을 재미있게 습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지식과 만화를 결합한 콘텐츠를 기획하는 스타트업이다. 서울 마포구 본사에서 7월 말 만난 이 대표는 “만화 완독률은 일반 서적의 3배, 자연과학 서적의 7배에 이른다”며 “시대와 국가, 언어, 연령에 구애받지 않는 검증된 지식 전달 미디어인 만화로 성인을 위한 지식 콘텐츠 시장을 열고 싶다”고 했다.
● 레진코믹스 대표이사 거쳐 창업
레진코믹스가 작가들과 소송을 하게 되는 일에 휩싸이면서 이사진과 주주들에 의해 2018년 10월에 레진코믹스 대표이사가 됐다. 작가들의 탈퇴로 대표이사가 된 이후 적자가 계속됐던 레진코믹스는 2020년 해외 매출에 힘입어 흑자로 전환시킬 수 있었다. 2021년 회사가 매각되면서 노틸러스를 창업하게 됐다.
● “성인 학습만화 시장 개척”
노틸러스의 인기 학습만화 중 하나인 ‘공룡의 생태’와 만화 ‘일리아스’를 기반으로 만든 유튜브 영상. 노틸러스는 이만배 사이트를 통해 제공하는 콘텐츠를 온라인 동영상으로 재가공해 예비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노틸러스 제공
이 대표는 레진코믹스에서 대표이사까지 하면서 콘텐츠의 원천으로서 웹툰의 중요성을 알게 됐지만 사업 유지를 위한 수익성을 위해서는 오랫동안 인기를 얻은 캐릭터를 기반으로 한 지식재산권(IP) 사업이 필수라고 판단했다. 국내에서 웹툰이 인기라고 하지만 지속적으로 매출과 사업을 일으킬 수 있는 웹툰 IP는 거의 없다고 했다. ‘드래곤볼’이나 ‘건담’의 IP만으로 수천억 원을 버는 일본과는 상황이 다른 것이다.돌파구를 찾다가 한국의 학습만화 시장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의 학습만화 콘텐츠는 일본 온라인 서점 아마존에서 1위를 포함해 판매량 50위 안에 23개나 되는 작품이 들어갈 정도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초등학생 등을 상대로 한 ‘와이(Why) 시리즈’와 ‘보물찾기 시리즈’, ‘살아남기 시리즈’ 등이 국내외에서 모두 경쟁력을 갖추고 오랫동안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대부분이 20년 넘게 꾸준히 팔리면서 수천만 부의 판매 기록들을 가지고 있다.
승산은 여기에 있다고 봤다. 온라인의 발달로 지식은 어디에나 널려 있다. 하지만 영양소가 많이 든 음식을 먹는다고 몸에 무조건 흡수되는 것이 아니듯 널려 있는 지식도 소화가 잘되도록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성인을 위한 지식 교양 만화 사이트 ‘이만배(이걸? 만화로 배워!?)’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 신화에서 자동차 정비까지… 다양한 지식을 만화로
글과 그림의 결은 다양하다. 무겁고 진중한 글과 그림이 있는가 하면 톡톡 튀는 글에 명랑 만화 같은 가벼운 그림체도 있다. 꾸준히 인기가 좋은 콘텐츠는 북유럽 신화다. 이 대표는 “마블 만화와 많은 게임이 북유럽 신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보니 북유럽 신화에 대한 관심이 커서인 것 같다”고 했다. 최근에 올라온 만화 중에는 ‘피스톨 스토리’가 있다. 대한민국 최초의 권총 교양 만화라고 알리면서 ‘권총으로 꿰뚫은 역사적 순간들’을 담았다고 소개하고 있다. 기존에 책으로 출판된 주제뿐만 아니라 시사성이 있는 주제로 연재되는 작품들도 있다. ‘두지 씨의 전세금을 지켜라: 전세사기 특별편’은 이른바 ‘빌라왕’으로 불리던 업자들이 어떻게 시세를 조작하고 시세 이상으로 대출을 받아내고, 세입자를 어떻게 유혹하는지를 핵심만 담아 사회 초년생들이 알기 쉽게 소개하고 있다.
이만배의 콘텐츠는 20대와 30대의 젊은층이 많이 본다. 이 대표는 “특히 대학생이 많은데, 고교 때보다 만나는 사람의 폭이 넓어지면서 자신이 특정 분야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부족하다고 느끼게 되고, 자기 계발을 열심히 하려는 욕구가 높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전문지식을 전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각 분야를 전공한 사람들이 작가로 나서는 경우가 많다. 공대생으로서 트랜지스터의 발명 과정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걸 다른 사람과 나누기 위해 만화를 그렸다가 공학 전반의 숨은 이야기들을 전달하는 작가가 있고, 생물학을 전공하면서 진화생물학 관련 만화를 꾸준히 그리는 대학원생도 있다. 서양철학의 특징을 비교하기 위해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 같은 철학자들을 같은 반 학생으로 등장시켜 순정 만화처럼 그리는 철학 부전공자 작가도 있다. 지식 전달의 목적이 희석되지 않도록 필요하면 전문가가 감수를 하고, 참고 문헌도 밝혀 둔다.
노틸러스에서 일하는 이들은 대부분 웹툰 분야에서 오랫동안 작가와 작품을 발굴해 온 편집자들이다. 글 작가와 그림 작가가 조화롭게 작품을 완성할 수 있도록 제대로 섭외하는 것이 이들의 중요한 역량이다.
● 지식을 자연스럽게 발견하는 기회, 해외로도 확장
노틸러스는 지식 전수를 목표로 하는 기업답게 온라인 콘텐츠를 무료로 볼 수 있는 방식도 독특하다. 지금은 여느 온라인 콘텐츠 기업처럼 일부 무료 방식과 오랫동안 기다리면 무료로 볼 수 있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특허를 내고 준비하고 있는 방식은 앞에서 본 내용을 바탕으로 한 퀴즈를 풀면 다음 화를 무료로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한다. 작품이 아무리 늘어나더라도 퀴즈를 제때 생산해 내기 위해 고안한 방식이다.한국의 뛰어난 학습만화 기획 인프라를 활용해 최근에는 베트남 시장에도 진출한다. 국내와 조금 다른 점은 아동용 오프라인 학습만화 시장을 노린다는 점이다. 현지에서 가장 있기 있는 캐릭터를 활용해 ‘주키즈의 수상한 과학스쿨’ 시리즈를 펴내는 것이다. 이 대표는 “한국의 학습만화는 일본과 중국은 물론이고 대만과 동남아시아에서도 인기가 높다”며 “10월 서적 판매를 시작으로 아시아 시장의 교두보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했다.
노틸러스는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지식을 자연스럽게 발견하는 기회를 넓혀주면서 IP 기업이 되는 것이 목표다. 이 대표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철학이나 문학, 심리학, 기술, 재테크 등 알아야 하는 지식들은 늘어나고, 계속 업데이트가 된다”며 “만화를 통해 자신이 알고 싶은 분야를 발견하고 더 깊이 공부할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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