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수입차 환불 안돼… ‘임시번호판’ 운행 생략 탓

동아닷컴 정진수 기자

입력 2017-08-29 14:20 수정 2017-08-29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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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인수 받고 6일 만에 부식을 발견했습니다. 환불 받을 수 없나요?(혼다 CR-V 차주 A씨)”

자동차를 구입하는 소비자들이 무심코 임시운행허가번호 제도를 건너뛰었다가 차량 결함으로 인한 환불이나 교환 요구를 대부분 거부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부식 논란을 겪고 있는 2017년식 혼다 CR-V 차주 A씨는 일본 혼다 판매 대행사인 혼다코리아에 환불을 요청했다가 단번에 거절당했다. 그는 “4000만 원 들여 산 차가 헌차처럼 녹슬어 있는데 무척 불쾌했다”면서 “환불 조치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2017년식 도요타 캠리 하이브리드 차주 B씨도 “차량 인수 후 곧바로 확인해봤더니 좌석 하부에 부식이 진행되고 있었다”며 “그럼에도 무상 수리 외에는 딱히 해결방법이 없다는 게 판매사 입장”이라고 했다.


수입업체들 임시번호판 꺼려해
차주에 소유권 넘겨 인수인계
전문가들 “반드시 임판 달아야”


보통 자동차 판매업자들은 소비자와 차량 구입 계약 체결 후 관할 구청에 차를 등록한 뒤 고객에게 전달한다. 이 과정에서 계약자 모르게 임시운행허가번호 제도가 은근슬쩍 빠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자동차관리법에 따르면 임시운행허가번호는 차량을 정식으로 등록하기 전에 구입한 새 차 이상 유무를 10일간 확인하는 등의 소비자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제도다. 소비자들이 이 기간에 차량의 문제점을 발견하면 판매사에 환불이나 교환 요구가 한결 수월해진다. 하지만 임시운행허가번호를 받지 못한 소비자는 차량에 이상이 있어도 판매자에게 문제를 제기할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2017년식 도요타 캠리 하이브리드 좌석 시트 하부 고정장치에 녹이 슬어 있다. 자동차리콜센터 제공

문제는 판매업자들이 임시운행허가번호 발급 자체를 꺼려한다는 것이다. 소비자가 직접 이를 언급하지 않는 이상 딜러사들은 임시운행허가번호에 대한 설명을 별도로 해주지 않고 있다.

실제로 취재진이 최근 논란의 도요타·혼다뿐만 아니라 메르세데스벤츠·BMW 등 수도권 소재 주요 수입업체들 딜러사 약 30곳을 파악해본 결과 차량 계약 시 임시운행허가번호에 대한 내용을 소개해준 곳은 찾을 수 없었다. 한 업체 관계자는 “100대면 99대가 차량이 등록된 상태로 소비자에게 전달된다”며 “소비자가 원하면 임시번호판을 단 상태로 받을 수는 있지만 불편해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대신 등록해주고 있다”고 했다.

김종훈 한국자동차품질연합 대표는 “특히 수입차 딜러들은 차주에게 차량 소유권을 빠르게 넘겨 차량 하자의 책임소지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며 “이 경우 인수인계 시 차량에 문제가 발생해도 소비자들은 손 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학 자동차과 교수는 “보통의 완성차업체들은 정식 등록을 하면 자동차에 문제가 발생해도 절대 바꿔주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며 “소비자들은 반드시 임판을 교부받아 문제가 있는 차량을 바꿀 수 있는 권리를 마련해 놔야한다”고 조언했다.


녹슨 차는 중대 결함 아냐
판매사들 무상 수리 진행
한국판 레몬법 도입 시급


그러나 국내법상 임시운행 기간 동안 차량에 결함을 발견하더라도 환불이나 교환 받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소비자기본법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따르면 신차의 경우 교환·환불을 받기 위해서는 인도 후 한 달 이내에 안전운전과 관련해 중대한 동일 결함이 2회 이상 발견돼야 한다. 또한 12개월 이내 주행 및 안전도 관련 중대결함에 대해 동일 하자 4회 이상 또는 수리가 30일 이상 지속될 시 교환 및 환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소비자 분쟁 해결기준마저 권고사항일 뿐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동일하자가 반복되더라도 교환 및 환불 여부는 제조사에 의해 결정된다.

이 때문에 국회가 올해 2월 미국의 레몬법처럼 ‘자동차교환·환불개선제도’를 추진했지만 이마저도 시행이 늦춰지고 있다. 올해 국회 1호 법안으로 발의된 정용기 자유한국당 의원의 자동차관리법개정안 등 4건이 국회에 접수된 뒤 2월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심의돼 법제사법위원회까지 넘어갔지만 아직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에 당초 상반기 국회 통과 후 시행령을 정비해 내년 7월 1일부로 시행할 예정이었지만 본회의 통과 지연 만큼 준비 기간이 지체돼 2019년은 돼야 시행 여부를 알 수 있게 됐다. 국내서는 의원발의안을 바탕으로 법안이 통과되면 국토부가 시행령을 마련해 제도를 시행하는 수순으로 진행되고 있다.

자동차교환·환불개선제도는 신차 구매 후 6개월 내 발생한 문제를 하자로 보고, 이 문제가 수리 후에도 반복될 경우 국토부 내 자동차 안전 및 하자심의위원회에서 판단해 소비자가 교환 혹은 환불받을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동아닷컴 정진수 기자 brje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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