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수표’ 주인 찾아준 기초수급자

남경현기자

입력 2017-05-25 03:00 수정 2017-05-25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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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근로 택배 일하는 우영춘씨
길에서 주운 돈봉투 경찰에 신고… “가난해도 내 것 아닌 돈 탐 안내”
보상금도 사양… 수박만 1통 받아


공공근로 택배로 생계를 이어가는 기초생활수급자가 길에서 주운 1억여 원짜리 수표를 주인에게 돌려준 뒤 법으로 보장된 보상금도 받지 않았다. 그는 “내 것이 아닌 돈을 가질 수는 없다”고 했다.

24일 경기 부천원미경찰서에 따르면 10일 오후 2시 20분경 원미지구대에 우영춘 씨(53·사진)가 중동의 한 아파트 단지 상가 앞에서 주웠다며 1억1500만 원짜리 수표와 주민등록등본이 담긴 봉투를 가져왔다. 우 씨는 “큰돈과 주민등록등본까지 있는 걸 보니 뭔가 중요한 일에 쓰일 돈 같다. 주인이 애타게 찾고 있을 것 같으니 서둘러 찾아서 돌려주라”고 말한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경찰은 수표를 발행한 은행 지점 담당자에게 연락을 취하는 등 수소문을 한 끝에 40여 분만에 주인 박모 씨(38·여)를 찾았다. 박 씨는 경찰에서 “부동산 매매 잔금을 치르려던 돈인데 잃어버려서 한참을 찾아 헤매며 난감해하고 있었다”며 “습득자에게 조금이지만 감사의 표시를 하겠다”고 나섰다. 경찰도 우 씨를 다시 지구대로 불러 잃어버린 돈을 찾아준 사람에게 보상하도록 한 유실물법 규정(습득액의 5∼20%)을 설명하고 보상금을 받으라고 권유했다. 그러나 우 씨는 보상금을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오히려 “고생하는 경찰관들에게 수박 한 통이라도 사다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양측의 ‘즐거운’ 실랑이는 우 씨가 경찰 대신 수박 한 통을 받아가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우 씨는 기초생활수급자 가운데 자립을 위해 자활사업 등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생계급여를 받는 조건부 수급자다. 우 씨는 정부가 제공한 일자리인 부천나눔지역자활센터 물류사업단 관할 ‘나눔 행복 택배’에서 일한다. 부천시내 중동 지역 아파트 단지의 일정 구역을 맡아 하루 수십 건의 택배 물량을 처리한다. 주 5일, 하루 8시간 근무하며 85만 원가량의 월급을 받는다. 생계급여 40여만 원을 합쳐도 한 달 수입은 130만 원 안팎이다. 이 빠듯한 급여로 지적장애 2급인 고교 2학년 딸과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다세대주택의 월세 30만 원짜리 단칸방에서 키우고 있다. 부인은 오래전에 집을 나갔다.

우 씨의 선행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수표나 휴대전화, 지갑 등을 주워 경찰에 전달해 주인을 찾아준 경험이 이전에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우 씨에게 지난주 감사장을 전달했다. 우 씨는 “사는 게 힘들긴 해도 월급을 받을 수 있고 지방자치단체에서 주는 급여도 있어 오히려 감사하다”며 “내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정직하게 산다면 행복은 찾아올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원미지구대 정인영 경장은 “본인 형편도 어려운데 거액을 찾아준 뒤 보상금마저 거부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 일”이라며 “내 것이 아닌 돈은 가질 수 없다던 우 씨의 말이 계속 가슴에 남는다”고 말했다.

부천=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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