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펀드매니저의 굴욕… AI에 자리 내주고 ‘퇴장’

황인찬기자

입력 2017-03-30 03:00 수정 2017-03-3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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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대 자산운용사 美블랙록
고액연봉 펀드매니저 7명 해고… 9조원 규모 펀드 운용 AI에 맡겨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가 고액 연봉을 받던 스타 펀드매니저들을 무더기로 해고하고, 인공지능(AI)으로 그 빈자리를 채우기로 했다. 투자 정보가 투명해지고 날로 방대해져 가는 상황에서 펀드매니저의 계산과 직관에 의존해서 투자하기보다는 AI의 막대한 데이터 분석 능력이 더 경쟁력 있다는 판단에서다.

자산 규모 5조 달러(약 5570조 원)에 달하는 미국의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펀드매니저 53명 가운데 7명을 해고하고 이들이 운용하던 펀드를 AI에게 맡기기로 했다고 뉴욕타임스(NYT) 등이 28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로런스 핑크 블랙록 회장은 “각종 투자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면서 펀드매니저들의 수익률은 점차 나빠지고 있다. 이제는 더 많은 빅데이터, AI, 사실관계, 다양한 투자모델 등에 의존해야 할 때”라며 투자 방식에 일대 변화를 주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쇄신 작업은 지난해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에서 영입된 마크 와이즈먼 블랙록 선임 운영이사가 주도했다. 그는 지난 6개월 동안 실적이 저조한 ‘액티브 펀드’(펀드매니저가 공격적으로 운영하는 펀드)의 득실을 따져 ‘살생부’를 작성했다. 지난해 이 회사의 액티브 펀드 수익률이 떨어지면서 200억 달러(약 22조2740억 원)의 뭉칫돈이 빠져나갔다. 그 결과 무랄리 바라라만과 존 코일 등 내로라하는 스타 펀드매니저들이 AI에 자리를 내주고 불명예 퇴진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이 회사의 액티브 펀드 2000억 달러(약 223조 원) 가운데 AI가 처리하는 규모가 80억 달러(약 8조9200억 원)로 늘어난다. 회사는 펀드매니저들에게 주던 고액 수수료도 아끼고 좀 더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투자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동안 월가에서는 스타 펀드매니저들이 높은 임금을 받으면서도 그에 걸맞은 실적을 내지 못한다는 투자자들의 원성이 높았다. 와이즈먼 이사는 “방에 앉아 컴퓨터 매매창을 바라보며, ‘내가 남보다 잘났어’라고 거들먹거리는 펀드매니저들은 이제 사라질 것”이라며 “다른 펀드매니저에게 폭풍우 치는 바다처럼 보이는 시장을 블랙록은 (AI를 통해) 항공기를 타고 건너갈 것”이라고 말했다.

AI에 펀드 운용을 맡기는 것은 투자 수익을 높이려는 목적 외에도 블랙록 자체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조치라는 지적도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AI 투자를 확대해 인간 펀드매니저만 즐비한 다른 소규모 자산운용사보다 다양한 투자 기법을 갖고 있다는 것을 주주와 고객들에게 선전하는 셈”이라고 평가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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