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에서 공존을 배우다[김선미의 시크릿가든]
글·사진 김선미 기자
입력 2024-05-18 01:40 수정 2024-05-18 01:40
2024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정원 여행’
이제야 비로소 서울에서도 정원박람회가 시민의 삶 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16일 서울 뚝섬한강공원에서 개막한 서울국제정원박람회(10월 8일까지)에서 남녀노소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그 희망을 보았다. 서울정원박람회는 2015년부터 서울 마포구 월드컵공원과 영등포구 여의도공원 등에서 열려왔지만 왠지 ‘그들만의 리그’인 느낌이 있었다. 한강공원에서 열리는 건 올해가 처음. 접근성과 수준이 역대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시는 기존 정원박람회를 이번에 국제 행사로 키우면서 역대 최대 규모 터(약 20만 ㎡)에 76개 정원을 조성했다. 주제는 ‘서울, 그린 바이브(Seoul, Green Vibe)’. 지하철 7호선 자양역 2번 출구로 나오면 시원한 한강을 배경으로 ‘무료’ 정원 여행이 시작된다. 박람회장 가든센터에서 ‘식물 지름신(神)’이 내릴 확률이 높으니 튼튼한 팔과 장바구니를 준비하기를 권한다. 박람회가 끝나도 정원들은 계속 남아 있을 것이라고 하니 인근 주민들 삶이 부러워진다.
●도시 정원의 회복력
물결처럼 구불구불한 동선으로 이뤄진 정원이었다. 보자마자 핀란드 자작나무 냄비받침이 떠올라 혼자 웃었다. 작가의 정원에 감히 냄비받침이라니. 하긴 정원을 느끼고 누리는 데에 정답이 어디 있나. 각자 경험대로 상황대로 즐기면 된다. ‘회복의 시간’이라는 이름의 그 정원을 천천히 걸었다. 보라색 알리움과 하늘색 정향풀 등이 바람결 따라 흔들렸다. 이곳은 뚝섬한강공원인가, 아니면 미지의 호숫가인가. 호흡이 편안해지고 자꾸만 식물과 눈 맞추고 싶다.
국내외 작가들을 대상으로 공모한 작가 정원은 ‘정원이 가진 회복력’과 ‘정원과의 동행’이라는 키워드에 따라 만들어졌다. 이창엽 한양대 실내건축디자인과 교수는 아내인 이진 정원가와 함께 조성한 ‘회복의 시간’ 정원을 이렇게 설명한다.
“뚝섬한강공원을 찾는 사람들이 정서적 회복의 시간을 갖도록 자연과 온전히 연결하고 싶었다. 주변 인공물들에서 시각적으로 해방되기 위해 지면보다 아래로 내려가는 입체적 지형을 만들었다. 또 마치 벌이 꽃들을 다니며 수분(受粉)을 돕듯, 의도적으로 좁게 만든 보행로를 통해 이용자들이 식물과 맞닿도록 했다. 우리 인간이 꽃씨를 묻혀 식물의 자연발화를 도울 수도 있지 않을까. 건축가로서 순수 자연과 인간의 손길이 ‘밀당(밀고 당기기)’ 하는 기묘한 그 사이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
이 교수는 10여 년간 영국 헤더윅 스튜디오에서 일하면서 스타 건축가들과 작업했다. 그런데 영국 RHS 위즐리 가든을 방문한 뒤 ‘인간이 만들어낸 명작은 자연의 위대함을 능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가족이 살던 런던은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도시였다. 도시 어디에 살든 10분 이내에 몸과 마음을 회복할 수 있는 녹지공간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런던의 정원이 키웠고, 직장 스트레스는 자전거 출퇴근길의 도시 정원 풍경이 날려줬다. 그는 말한다. “서울에도 누구나 비용을 내지 않고 자연을 경험할 수 있는 공공정원이 늘어나면 한국이 직면한 저출산, 혐오 범죄, 자살률 같은 사회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방글라데시 작가 MD 아슈라풀 아자드가 조성한 정원 이름은 ‘심심해지다, 명상하다, 고마워하다’였다. 작가는 디지털 기기에 사로잡혀 사는 현대인에게 ‘심심한 시간’이 가장 필요하다고 봤다. 원형의 띠를 둘러 시선을 정원 외부와 차단하고 내부에는 다년생 식물인 수크렁 한 종류만 심었다. 잡다한 생각을 막고 고요하게 식물의 단순함과 아름다움을 바라보자는 것이다.
정원은 관조와 사색의 장소다. 김영민 서울시립대 조경학과 교수와 김영찬 조경기술사사무소 바이런 소장이 만든 초청 정원 이름은 ‘앉는 정원’이다. 꽃과 풀은 지친 땅을 쉬게 하고 사람은 앉아서 꽃, 풀, 물, 바람을 보며 쉬어 가라고 한다. 김 소장은 “이 정원에서는 사적으로 아늑하게 앉을 수도 있고, 평상에서 콩고물이라도 나눠 먹으며 둘러앉을 수도 있고, 한강을 바라보며 나란히 앉을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정원에서 앉는다는 행위는 지친 몸과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뜻일 것이다.
시민들과 조경 전공 학생들이 꾸민 작은 정원들에도 내면을 탐구하거나 가족애를 보듬는 경향이 나타났다. ‘삼삼한 매력정원’은 손자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와 추억을 남기기 위해 함께 풀과 나무를 심으며 만든 삼대(三代)의 정원이다. ‘언제나 나, 너 하늘을 봐요’라는 제목의 학생동행정원은 정원 안에 놓은 원형 거울 속으로 연녹색 나뭇잎들이 살랑댔다.
‘기억과 함께 동행’이라는 이름의 작가 정원은 줄무늬 조형물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바닥에 신비한 빛줄기를 그려냈다. 나무줄기로 만든 식물 이름표, 계단 틈새에 심은 다육식물들…. 각각의 정원에 세심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비인간 생명체와 더불어 사는 정원
중국 작가 허양과 천훙량이 만든 ‘섹션 가든’은 사람, 동물, 식물이 공유하는 정원이다. 이 정원에서 만난 허양 작가는 중국미술학원(China Academy Of Art) 출신이었다. 어려서부터 고향인 항저우의 산에서 놀면서 곤충을 연구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만든 정원의 나무 둥치를 가리키며 “이건 애벌레의 식량이다. 한국의 딱정벌레들과 다른 작은 벌레들을 이 속에 넣었더니 한 달 후 성체가 되어 날아갔다. 이 정원은 곤충들을 위한 서식지가 되었다”고 했다.
곤충이 어떤 토양에서 잘 자라는지 흙의 단면을 보여줌으로써 뚝섬한강공원에 가족 소풍을 나오는 어린이들에게 재미와 정보를 동시에 전할 것 같았다. 도시 속 딱정벌레 유충이 먹는 발효 톱밥과 부식질(腐植質) 흑토 등을 아크릴 상자를 통해 보여주고 작은 터널을 뚫어 통과해보게 하는 식이다. 경사진 지형을 한국의 산과 평원, 습지로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그에 맞는 우리 식물을 심은 점도 눈길을 끌었다.
이번 박람회에서 반가운 점은 나비, 벌, 곤충 같은 생명체들과의 공생을 추구하는 정원을 여럿 선보인 것이다. 토양에 탄소를 공급하는 점균류 구조를 형상화한 정원, 나비 모양 구조물을 통해 기후위기의 나비효과를 상기시킨 정원, 꽃가루를 매개하는 곤충류를 위한 쉼터를 표현한 ‘곤충 호텔’도 눈에 띄었다. 국립생태원이 뚝섬한강공원 수영장을 습지식물 전시에 활용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정원이 단순히 알록달록 꽃을 심는 장소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 아닌 생명체가 더불어 사는 장소라는 걸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정원 수준이 한 단계 도약했음을 실감했다.
도시의 정원에서 다양한 새 소리를 듣고 생물 다양성을 발견하는 것은 축복이다. 서울시는 “한강을 가장 넓은 면적의 탄소 저장고로 조성하고 지구를 살리는 정원의 힘을 느끼게 하겠다”고 한다. 어쩌면 박람회가 끝난 후부터가 중요할지 모른다. 시민과 기업의 참여로 일상 속에 정원이 스며들어야 한다.
●‘바이오필릭 서울’을 향한 꿈
이번 박람회에는 기업 동행 정원이 17곳 조성됐다. 미국 월트디즈니사가 선보인 ‘인사이드 아웃’ 정원은 기업 정원의 교과서라고 할 만하다. 다음 달 영화 ‘인사이드 아웃 2’ 국내 개봉을 앞두고 영화 캐릭터들 색상에 맞춰 정원을 꾸몄다. 푸른색 ‘슬픔’ 캐릭터 구역에 엔드리스 수국과 델피늄을, 주황색 ‘불안’ 캐릭터 구역엔 주황철쭉과 나리를 심었다.
기업 정원은 브랜드 전략이자 주요한 마케팅 수단이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조성한 ‘도심 속의 보석’ 정원은 유리 블록으로 된 조형물 안에 이끼가 낀 커다란 돌을 놓고 주변에 연꽃을 심었다. 그저 멋으로 만든 정원이 아니다. 이 회사가 추진하는 서울 광운대 역세권 개발사업 ‘히든 네이처(숨겨진 자연)’ 콘셉트를 표현한 것이다.
삼성물산 조경브랜드 ‘에버스케이프’는 붉은색 전망대 구조물로 시선을 압도한다. 헨켈코리아는 재활용 플래스틱 화분에 어린 나무를 심어 미래의 숲을 표현했다. KB증권 ‘깨비정원’은 기업 브랜드 아이덴티티(BI)에 맞춰 식물과 구조물을 노란색으로 맞췄다.
세계 각국이 바이오필릭 시티(Biophilic City·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도시)를 내세운다. 인간이 도시 속 자연과 함께하면 창의성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을 더 잘 돌보고 배려한다는 연구 결과가 여럿 있다. 시민정원사와 학생들의 정성과 참여, 차량으로 전국을 다니며 식물 관리를 안내해주는 이동형 반려식물 클리닉같이 우리 사회에 퍼지는 정원 문화가 값진 이유다.
17일 박람회 현장에서 진행된 정원 토크쇼도 정원의 의미를 일깨웠다. 직장 동료(국립세종수목원 박원순 전시원실장과 노회은 정원사업센터장), 공동대표(조경스튜디오 ‘초신성’의 신영재·최지은 소장), 부부 조경가(‘바이런’ 김영찬 소장과 ‘천변만화’ 이양희 대표)가 ‘따로 또 같이 정원매력탐구’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 중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정원은 더 다양한 생명을 품을 수 있는 기반’이라는 점이었다. 우리가 조금만 배려하면 다른 생명체들과 더불어 살 수 있다는 것, 5월의 정원에서는 파랑새를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뚝섬한강공원 정원들의 식물은 사계절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라날 것이다. 직접 정원을 만든 건 아닐지라도 정원을 자주 드나들며 그 속의 생명체들과 교감한다면 ‘내 정원’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그것이 바이오필릭 시티에서 공공정원이 갖는 회복력과 동행의 힘이다. 이번에 조성된 정원들이 시민, 기업과 함께하는 지속 가능한 정원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서울도 세계의 바이오필릭 시티들과 어깨를 겨루는 날이 온다.
글·사진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이제야 비로소 서울에서도 정원박람회가 시민의 삶 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16일 서울 뚝섬한강공원에서 개막한 서울국제정원박람회(10월 8일까지)에서 남녀노소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그 희망을 보았다. 서울정원박람회는 2015년부터 서울 마포구 월드컵공원과 영등포구 여의도공원 등에서 열려왔지만 왠지 ‘그들만의 리그’인 느낌이 있었다. 한강공원에서 열리는 건 올해가 처음. 접근성과 수준이 역대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시는 기존 정원박람회를 이번에 국제 행사로 키우면서 역대 최대 규모 터(약 20만 ㎡)에 76개 정원을 조성했다. 주제는 ‘서울, 그린 바이브(Seoul, Green Vibe)’. 지하철 7호선 자양역 2번 출구로 나오면 시원한 한강을 배경으로 ‘무료’ 정원 여행이 시작된다. 박람회장 가든센터에서 ‘식물 지름신(神)’이 내릴 확률이 높으니 튼튼한 팔과 장바구니를 준비하기를 권한다. 박람회가 끝나도 정원들은 계속 남아 있을 것이라고 하니 인근 주민들 삶이 부러워진다.
●도시 정원의 회복력
물결처럼 구불구불한 동선으로 이뤄진 정원이었다. 보자마자 핀란드 자작나무 냄비받침이 떠올라 혼자 웃었다. 작가의 정원에 감히 냄비받침이라니. 하긴 정원을 느끼고 누리는 데에 정답이 어디 있나. 각자 경험대로 상황대로 즐기면 된다. ‘회복의 시간’이라는 이름의 그 정원을 천천히 걸었다. 보라색 알리움과 하늘색 정향풀 등이 바람결 따라 흔들렸다. 이곳은 뚝섬한강공원인가, 아니면 미지의 호숫가인가. 호흡이 편안해지고 자꾸만 식물과 눈 맞추고 싶다.
국내외 작가들을 대상으로 공모한 작가 정원은 ‘정원이 가진 회복력’과 ‘정원과의 동행’이라는 키워드에 따라 만들어졌다. 이창엽 한양대 실내건축디자인과 교수는 아내인 이진 정원가와 함께 조성한 ‘회복의 시간’ 정원을 이렇게 설명한다.
“뚝섬한강공원을 찾는 사람들이 정서적 회복의 시간을 갖도록 자연과 온전히 연결하고 싶었다. 주변 인공물들에서 시각적으로 해방되기 위해 지면보다 아래로 내려가는 입체적 지형을 만들었다. 또 마치 벌이 꽃들을 다니며 수분(受粉)을 돕듯, 의도적으로 좁게 만든 보행로를 통해 이용자들이 식물과 맞닿도록 했다. 우리 인간이 꽃씨를 묻혀 식물의 자연발화를 도울 수도 있지 않을까. 건축가로서 순수 자연과 인간의 손길이 ‘밀당(밀고 당기기)’ 하는 기묘한 그 사이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
이 교수는 10여 년간 영국 헤더윅 스튜디오에서 일하면서 스타 건축가들과 작업했다. 그런데 영국 RHS 위즐리 가든을 방문한 뒤 ‘인간이 만들어낸 명작은 자연의 위대함을 능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가족이 살던 런던은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도시였다. 도시 어디에 살든 10분 이내에 몸과 마음을 회복할 수 있는 녹지공간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런던의 정원이 키웠고, 직장 스트레스는 자전거 출퇴근길의 도시 정원 풍경이 날려줬다. 그는 말한다. “서울에도 누구나 비용을 내지 않고 자연을 경험할 수 있는 공공정원이 늘어나면 한국이 직면한 저출산, 혐오 범죄, 자살률 같은 사회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방글라데시 작가 MD 아슈라풀 아자드가 조성한 정원 이름은 ‘심심해지다, 명상하다, 고마워하다’였다. 작가는 디지털 기기에 사로잡혀 사는 현대인에게 ‘심심한 시간’이 가장 필요하다고 봤다. 원형의 띠를 둘러 시선을 정원 외부와 차단하고 내부에는 다년생 식물인 수크렁 한 종류만 심었다. 잡다한 생각을 막고 고요하게 식물의 단순함과 아름다움을 바라보자는 것이다.
정원은 관조와 사색의 장소다. 김영민 서울시립대 조경학과 교수와 김영찬 조경기술사사무소 바이런 소장이 만든 초청 정원 이름은 ‘앉는 정원’이다. 꽃과 풀은 지친 땅을 쉬게 하고 사람은 앉아서 꽃, 풀, 물, 바람을 보며 쉬어 가라고 한다. 김 소장은 “이 정원에서는 사적으로 아늑하게 앉을 수도 있고, 평상에서 콩고물이라도 나눠 먹으며 둘러앉을 수도 있고, 한강을 바라보며 나란히 앉을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정원에서 앉는다는 행위는 지친 몸과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뜻일 것이다.
시민들과 조경 전공 학생들이 꾸민 작은 정원들에도 내면을 탐구하거나 가족애를 보듬는 경향이 나타났다. ‘삼삼한 매력정원’은 손자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와 추억을 남기기 위해 함께 풀과 나무를 심으며 만든 삼대(三代)의 정원이다. ‘언제나 나, 너 하늘을 봐요’라는 제목의 학생동행정원은 정원 안에 놓은 원형 거울 속으로 연녹색 나뭇잎들이 살랑댔다.
‘기억과 함께 동행’이라는 이름의 작가 정원은 줄무늬 조형물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바닥에 신비한 빛줄기를 그려냈다. 나무줄기로 만든 식물 이름표, 계단 틈새에 심은 다육식물들…. 각각의 정원에 세심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비인간 생명체와 더불어 사는 정원
중국 작가 허양과 천훙량이 만든 ‘섹션 가든’은 사람, 동물, 식물이 공유하는 정원이다. 이 정원에서 만난 허양 작가는 중국미술학원(China Academy Of Art) 출신이었다. 어려서부터 고향인 항저우의 산에서 놀면서 곤충을 연구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만든 정원의 나무 둥치를 가리키며 “이건 애벌레의 식량이다. 한국의 딱정벌레들과 다른 작은 벌레들을 이 속에 넣었더니 한 달 후 성체가 되어 날아갔다. 이 정원은 곤충들을 위한 서식지가 되었다”고 했다.
곤충이 어떤 토양에서 잘 자라는지 흙의 단면을 보여줌으로써 뚝섬한강공원에 가족 소풍을 나오는 어린이들에게 재미와 정보를 동시에 전할 것 같았다. 도시 속 딱정벌레 유충이 먹는 발효 톱밥과 부식질(腐植質) 흑토 등을 아크릴 상자를 통해 보여주고 작은 터널을 뚫어 통과해보게 하는 식이다. 경사진 지형을 한국의 산과 평원, 습지로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그에 맞는 우리 식물을 심은 점도 눈길을 끌었다.
올해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작가정원 공모에서 ‘금상’을 받은 중국 작가 허양이 자신이 만든 ‘섹션 가든’의 터널을 통과해 얼굴을 내밀고 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이번 박람회에서 반가운 점은 나비, 벌, 곤충 같은 생명체들과의 공생을 추구하는 정원을 여럿 선보인 것이다. 토양에 탄소를 공급하는 점균류 구조를 형상화한 정원, 나비 모양 구조물을 통해 기후위기의 나비효과를 상기시킨 정원, 꽃가루를 매개하는 곤충류를 위한 쉼터를 표현한 ‘곤충 호텔’도 눈에 띄었다. 국립생태원이 뚝섬한강공원 수영장을 습지식물 전시에 활용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정원이 단순히 알록달록 꽃을 심는 장소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 아닌 생명체가 더불어 사는 장소라는 걸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정원 수준이 한 단계 도약했음을 실감했다.
도시의 정원에서 다양한 새 소리를 듣고 생물 다양성을 발견하는 것은 축복이다. 서울시는 “한강을 가장 넓은 면적의 탄소 저장고로 조성하고 지구를 살리는 정원의 힘을 느끼게 하겠다”고 한다. 어쩌면 박람회가 끝난 후부터가 중요할지 모른다. 시민과 기업의 참여로 일상 속에 정원이 스며들어야 한다.
●‘바이오필릭 서울’을 향한 꿈
이번 박람회에는 기업 동행 정원이 17곳 조성됐다. 미국 월트디즈니사가 선보인 ‘인사이드 아웃’ 정원은 기업 정원의 교과서라고 할 만하다. 다음 달 영화 ‘인사이드 아웃 2’ 국내 개봉을 앞두고 영화 캐릭터들 색상에 맞춰 정원을 꾸몄다. 푸른색 ‘슬픔’ 캐릭터 구역에 엔드리스 수국과 델피늄을, 주황색 ‘불안’ 캐릭터 구역엔 주황철쭉과 나리를 심었다.
기업 정원은 브랜드 전략이자 주요한 마케팅 수단이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조성한 ‘도심 속의 보석’ 정원은 유리 블록으로 된 조형물 안에 이끼가 낀 커다란 돌을 놓고 주변에 연꽃을 심었다. 그저 멋으로 만든 정원이 아니다. 이 회사가 추진하는 서울 광운대 역세권 개발사업 ‘히든 네이처(숨겨진 자연)’ 콘셉트를 표현한 것이다.
삼성물산 조경브랜드 ‘에버스케이프’는 붉은색 전망대 구조물로 시선을 압도한다. 헨켈코리아는 재활용 플래스틱 화분에 어린 나무를 심어 미래의 숲을 표현했다. KB증권 ‘깨비정원’은 기업 브랜드 아이덴티티(BI)에 맞춰 식물과 구조물을 노란색으로 맞췄다.
세계 각국이 바이오필릭 시티(Biophilic City·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도시)를 내세운다. 인간이 도시 속 자연과 함께하면 창의성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을 더 잘 돌보고 배려한다는 연구 결과가 여럿 있다. 시민정원사와 학생들의 정성과 참여, 차량으로 전국을 다니며 식물 관리를 안내해주는 이동형 반려식물 클리닉같이 우리 사회에 퍼지는 정원 문화가 값진 이유다.
17일 박람회 현장에서 진행된 정원 토크쇼도 정원의 의미를 일깨웠다. 직장 동료(국립세종수목원 박원순 전시원실장과 노회은 정원사업센터장), 공동대표(조경스튜디오 ‘초신성’의 신영재·최지은 소장), 부부 조경가(‘바이런’ 김영찬 소장과 ‘천변만화’ 이양희 대표)가 ‘따로 또 같이 정원매력탐구’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 중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정원은 더 다양한 생명을 품을 수 있는 기반’이라는 점이었다. 우리가 조금만 배려하면 다른 생명체들과 더불어 살 수 있다는 것, 5월의 정원에서는 파랑새를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뚝섬한강공원 정원들의 식물은 사계절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라날 것이다. 직접 정원을 만든 건 아닐지라도 정원을 자주 드나들며 그 속의 생명체들과 교감한다면 ‘내 정원’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그것이 바이오필릭 시티에서 공공정원이 갖는 회복력과 동행의 힘이다. 이번에 조성된 정원들이 시민, 기업과 함께하는 지속 가능한 정원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서울도 세계의 바이오필릭 시티들과 어깨를 겨루는 날이 온다.
글·사진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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