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춰버린 순수의 낙원, 라오스①
재이 여행작가
입력 2024-03-10 10:31 수정 2024-03-10 10:51
[재이의 여행블루스] 늦은 개혁·개방으로 자연의 아름다움 그대로 간직한 불교 나라
자유롭고 편안한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다. 여행지에 도착하면 단출한 옷차림으로 이곳저곳을 유유히 걸으며 돌아다니는 것을 즐긴다. 멋진 풍광 앞에서는 감탄을 아끼지 않고, 즐거운 순간에는 “즐겁다”고 표현하며, 계획대로 되지 않는 순간마저도 덤덤하게 받아들이려 애쓴다. 때로는 여행자이면서도 현지인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데 집중하곤 한다. 거리에서 만난 아이들 사이에 끼어 놀기도 하고, 우연히 만난 현지인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며, 길을 잃어버리거나 교통편을 찾지 못할 때는 누군가의 호의를 기대하면서 다가가 묻기도 한다. 그러다 뜻밖에 아름다운 장소를 소개받거나 로컬 사람들만 다니는 동네 맛집 정보 같은 소소한 행운을 얻기도 한다. 이렇게 저렇게 행운이 더해지면 ‘우연’이라는 안내자가 마련한 보석 같은 ‘선물’들을 자연스레 만나게 된다. 여행지에서 만난 행복한 우연들은 다시 현실로 돌아온 나의 삶에 위안과 위로를 전한다. 알게 모르게 차곡차곡 쌓인 다정한 기억들은 삶을 다시금 이어나갈 용기가 돼준다. 그리고 우리는 그 우연 속에서 만난 행복한 자신의 모습을 오래도록 기억하려 애쓴다. 우연한 행복에 대한 기대감. 우리가 그토록 여행을 추앙하는 이유가 아닐까.
왠지 모르게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느리게만 느껴진다. 국민 행복지수가 세계 최상위권인 나라여서일까. 오고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여유로움과 순수함이 절로 느껴진다. 오묘하면서도 독특한 평화로움이 주는 이 느긋함. 무척이나 어색하지만 이곳에 머무는 순간만이라도 마음의 사치를 기꺼이 누려보고 싶은 욕망이 마구 샘솟는다. 그동안 억지로 이고지고 살았던 이기심과 욕심을 비워내고 스스로에 대한 위로와 평온함을 되찾는 마법 같은 일들을 라오스를 여행하는 내내 경험하게 된다.
인도차이나반도 중심부에 위치한 라오스는 동쪽으로는 베트남, 서쪽으로는 태국과 미얀마, 남쪽으로는 캄보디아, 북쪽으로는 중국에 둘러싸여 있는 내륙국가다. 라오스의 공식 국가명인 ‘Lao PDR’은 ‘라오인민민주공화국’의 약칭이다. 전 국토의 70%가 산악지대를 이루고 있고, 바다가 없는 대신 국토를 가로질러 흐르는 메콩강이 열대우림의 무더위를 식혀준다. 중국 티베트에서 발원해 동남아 5개국을 지나는 메콩강은 라오스 안에서만 1500㎞를 흘러간다. 엄청난 수량을 바탕으로 큰 규모의 수력발전이 가능해 현재 라오스 경제발전의 최대 원동력 중 하나로 활용되고 있다. 라오스는 1893년부터 프랑스 보호령이 돼 식민지배를 받다가 1949년 독립했다. 이후 전쟁과 내전에 시달렸고, 1975년 공산혁명을 통해 라오인민민주공화국이 출범했지만 라오스 공산당은 계속해서 폐쇄 체제를 고수했다. 1986년이 돼서야 시장개혁을 시작했으며, 1997년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2013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해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보다 많이 늦게 개방을 맞았다.
역설적이게도 라오스가 걸어온 역사의 길이 독특한 매력을 지닌 특별한 라오스를 만들었다. 먼저, 프랑스와 유럽의 흔적이 아시아, 그리고 불교문화와 융합됐다. 또한 개혁·개방이 늦어진 만큼 시간이 멈춘 듯한 순수한 자연이 그대로 간직돼 있어 때 묻지 않은 자연에서 힐링을 즐기길 원하는 이들에겐 천국과도 같은 곳이 됐다.
가장 먼저 찾아갈 곳은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빠뚜싸이(Patuxay)’다. ‘승리의 탑’이라는 의미를 지닌 빠뚜싸이는 1958년 프랑스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을 이룬 것을 기념하고자 세운 시멘트 건축물이다. 겉모습은 파리 개선문을 본떴지만 내부 벽화와 조각에는 라오스 양식을 가미해 색을 아름답게 덧칠한 독특하고 이국적인 건축물이다. 독립을 기념하는 건축물인데 하필 모티프가 된 게 프랑스 개선문이라는 점은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원래는 미국 정부가 공항 활주로 건설에 쓰라고 시멘트를 지원했지만 라오스는 엉뚱하게도 독립기념문을 지었다. 그런 배경으로 빠뚜싸이는 ‘수직 활주로’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약 7층 높이의 정상에 올라가면 비엔티안 시내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해가 진 후에는 조명이 켜지는데 낮과는 또 다른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이어지는 ‘시간이 멈춰버린 순수의 낙원, 라오스’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아름다운 자연의 천국 ‘방비엥’과 가장 느리고 평화로운 도시 ‘루앙프라방’으로 떠나볼 예정이다. 원형에 가까운 옛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순수의 땅 라오스의 매력을 계속 탐닉해보자.
※ 주간동아 1432호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순수의 낙원, 라오스’ 두 번째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30호에 실렸습니다.>
자유롭고 편안한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다. 여행지에 도착하면 단출한 옷차림으로 이곳저곳을 유유히 걸으며 돌아다니는 것을 즐긴다. 멋진 풍광 앞에서는 감탄을 아끼지 않고, 즐거운 순간에는 “즐겁다”고 표현하며, 계획대로 되지 않는 순간마저도 덤덤하게 받아들이려 애쓴다. 때로는 여행자이면서도 현지인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데 집중하곤 한다. 거리에서 만난 아이들 사이에 끼어 놀기도 하고, 우연히 만난 현지인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며, 길을 잃어버리거나 교통편을 찾지 못할 때는 누군가의 호의를 기대하면서 다가가 묻기도 한다. 그러다 뜻밖에 아름다운 장소를 소개받거나 로컬 사람들만 다니는 동네 맛집 정보 같은 소소한 행운을 얻기도 한다. 이렇게 저렇게 행운이 더해지면 ‘우연’이라는 안내자가 마련한 보석 같은 ‘선물’들을 자연스레 만나게 된다. 여행지에서 만난 행복한 우연들은 다시 현실로 돌아온 나의 삶에 위안과 위로를 전한다. 알게 모르게 차곡차곡 쌓인 다정한 기억들은 삶을 다시금 이어나갈 용기가 돼준다. 그리고 우리는 그 우연 속에서 만난 행복한 자신의 모습을 오래도록 기억하려 애쓴다. 우연한 행복에 대한 기대감. 우리가 그토록 여행을 추앙하는 이유가 아닐까.
시골 작은 마을에 온 것 같은 라오스. [GettyImages]
국민 행복지수 최상위
이번 여행 목적지인 라오스는 우연한 행복을 기대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나라다. 여행객 사이에서 배낭여행의 성지로 불리는 라오스는 무엇을 기대하든 그 이상을 선사하는 아름다운 나라다. 복잡한 도시가 아닌 예스러운 정취와 생생한 자연의 아름다움이 살아 있기에 걸어서 여행할 때 곱절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백단향의 도시(Sandalwood City)’ 또는 ‘달의 도시(Moon City)’로 불리는 수도 비엔티안, 아름다운 쏭강이 흐르는 방비엥, 천년 왕국 자취가 남아 있는 신비의 도시 루앙프라방으로 이어지는 라오스의 삼색 매력을 마주하면 지친 마음이 느긋한 휴식의 길로 안내받는다.왠지 모르게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느리게만 느껴진다. 국민 행복지수가 세계 최상위권인 나라여서일까. 오고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여유로움과 순수함이 절로 느껴진다. 오묘하면서도 독특한 평화로움이 주는 이 느긋함. 무척이나 어색하지만 이곳에 머무는 순간만이라도 마음의 사치를 기꺼이 누려보고 싶은 욕망이 마구 샘솟는다. 그동안 억지로 이고지고 살았던 이기심과 욕심을 비워내고 스스로에 대한 위로와 평온함을 되찾는 마법 같은 일들을 라오스를 여행하는 내내 경험하게 된다.
인도차이나반도 중심부에 위치한 라오스는 동쪽으로는 베트남, 서쪽으로는 태국과 미얀마, 남쪽으로는 캄보디아, 북쪽으로는 중국에 둘러싸여 있는 내륙국가다. 라오스의 공식 국가명인 ‘Lao PDR’은 ‘라오인민민주공화국’의 약칭이다. 전 국토의 70%가 산악지대를 이루고 있고, 바다가 없는 대신 국토를 가로질러 흐르는 메콩강이 열대우림의 무더위를 식혀준다. 중국 티베트에서 발원해 동남아 5개국을 지나는 메콩강은 라오스 안에서만 1500㎞를 흘러간다. 엄청난 수량을 바탕으로 큰 규모의 수력발전이 가능해 현재 라오스 경제발전의 최대 원동력 중 하나로 활용되고 있다. 라오스는 1893년부터 프랑스 보호령이 돼 식민지배를 받다가 1949년 독립했다. 이후 전쟁과 내전에 시달렸고, 1975년 공산혁명을 통해 라오인민민주공화국이 출범했지만 라오스 공산당은 계속해서 폐쇄 체제를 고수했다. 1986년이 돼서야 시장개혁을 시작했으며, 1997년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2013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해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보다 많이 늦게 개방을 맞았다.
역설적이게도 라오스가 걸어온 역사의 길이 독특한 매력을 지닌 특별한 라오스를 만들었다. 먼저, 프랑스와 유럽의 흔적이 아시아, 그리고 불교문화와 융합됐다. 또한 개혁·개방이 늦어진 만큼 시간이 멈춘 듯한 순수한 자연이 그대로 간직돼 있어 때 묻지 않은 자연에서 힐링을 즐기길 원하는 이들에겐 천국과도 같은 곳이 됐다.
정치·경제 중심지 비엔티안
라오스 여행은 수도 비엔티안에서 시작하면 편하다. 국토 허리쯤에 위치한 비엔티안은 라오스를 오가는 모든 항공편과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교통수단이 모이는 관문이자 여행자를 가장 먼저 반기는 도시다. 14세기 라오스 최초 통일왕국인 란쌍왕국(1354~1707)의 세타티랏 왕(1534~1571)이 1566년 루앙프라방에서 비엔티안으로 천도한 뒤 450여 년 세월 동안 수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라오스 정치·경제 중심지이기에 다른 도시에 비해 붐비는 편이지만, 하늘을 가리지 않는 낮은 건물과 한적한 거리는 한 국가의 수도라기보다 시골 작은 마을에 온 것 같은 정겹고 포근한 느낌을 준다. 여기에 유럽과 아시아 문화가 적절하게 어우러진 조화로움은 물론, 이 도시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여행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주요 명소가 메콩강을 따라 좁고 길게 몰려 있어 한나절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는 것도 이 도시가 가지는 장점이다. 도보여행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주요 명소를 방문할 때는 오토바이를 개조해 만든 ‘뚝뚝’을 타거나 숙소와 연계된 시티투어를 이용하면 훨씬 편하다.가장 먼저 찾아갈 곳은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빠뚜싸이(Patuxay)’다. ‘승리의 탑’이라는 의미를 지닌 빠뚜싸이는 1958년 프랑스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을 이룬 것을 기념하고자 세운 시멘트 건축물이다. 겉모습은 파리 개선문을 본떴지만 내부 벽화와 조각에는 라오스 양식을 가미해 색을 아름답게 덧칠한 독특하고 이국적인 건축물이다. 독립을 기념하는 건축물인데 하필 모티프가 된 게 프랑스 개선문이라는 점은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원래는 미국 정부가 공항 활주로 건설에 쓰라고 시멘트를 지원했지만 라오스는 엉뚱하게도 독립기념문을 지었다. 그런 배경으로 빠뚜싸이는 ‘수직 활주로’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약 7층 높이의 정상에 올라가면 비엔티안 시내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해가 진 후에는 조명이 켜지는데 낮과는 또 다른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정상에서 비엔티안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빠뚜싸이’. [GettyImages]
비엔티안에는 동남아 최대 불교국가답게 메콩강을 중심으로 이국적인 풍광을 자랑하는 불교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이 중 황금사원 ‘파 탓 루앙(Pha That Luang)’과 사원 중 가장 오래된 건축물인 ‘왓 씨싸켓(Wat Sisaket)’은 절대 빼놓을 수 없다. 부처 머리카락과 가슴뼈 사리를 안치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파 탓 루앙은 라오스 최대 불교사원으로 이 나라 지폐와 국가문장에도 등장하는 곳이다. ‘위대한 탑’이라는 의미를 가진 사원에는 45m 높이의 웅장한 탑이 자리하고 있다. 중앙 탑을 중심으로 작은 탑 30개가 주위를 둘러싸고 있어 화려함과 함께 위대한 불교문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탑 주변을 세 바퀴 돌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하니 아무리 분주해도 탑돌이 행렬에 꼭 합류하자. 예전에는 탑 주위로 4개 사원이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현재 남아 있는 것은 2개뿐이다. 그중 탓 루앙 남쪽에 자리한 ‘왓 탓 루앙타이(Wat That Luang Tai)’ 사원에서는 거대한 황금 와불상을 만날 수 있다. 한눈에 담기 어려울 만큼 어마어마한 크기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비엔티안의 유일한 고대 사원인 왓 씨싸켓도 꼭 가봐야 할 곳으로 꼽힌다. 사원 일부가 프랑스 식민지 시절 훼손됐지만, 창건 당시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곳으로 알려졌다. 본당을 중심으로 네모 모양 회랑이 둘러싸고 있고, 회랑 벽마다 다양한 모습의 부처상이 안치돼 있는데 그 수가 6800여 개에 달한다. 평온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불상들은 저마다 표정을 지으며 여행자의 눈을 사로잡는다.라오스 최대 불교사원 ‘파 탓 루앙’. [GettyImages]
빵이 맛있는 라오스
부지런히 걸었으니 이번에는 속을 든든히 채울 차례다. 오랫동안 프랑스 식민지였던 라오스는 가장 맛있는 빵과 커피를 맛볼 수 있는 동남아 여행지일지도 모른다. 여행객 사이에 알려진 곳보다는 작은 골목 이름 모를 빵집에 들러보자. 갓 구워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소한 빵 한 조각에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달달한 라오스식 커피를 곁들이면 이보다 더 훌륭한 한 끼가 없을 것이다. 더위에 지쳐 입맛이 없다면 얼음을 가득 넣은 차가운 라오 맥주로 몸을 식히는 것도 좋다. 해가 지고 나면 매콩 강변으로 나가보자. 신선한 바람을 맞으며 짙어가는 노을을 즐기면서 맛있는 식사와 여유를 누릴 수 있다. 각양각색의 로컬 식재료로 만드는 라오스 전통 음식부터 고급스러운 프랑스 요리까지 다양한 맛집이 곳곳에 있다. 강변에는 야시장과 포장마차들도 들어서니 길거리 음식을 맛보는 것도 여행자에게는 즐거운 이벤트가 아닐 수 없다.이어지는 ‘시간이 멈춰버린 순수의 낙원, 라오스’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아름다운 자연의 천국 ‘방비엥’과 가장 느리고 평화로운 도시 ‘루앙프라방’으로 떠나볼 예정이다. 원형에 가까운 옛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순수의 땅 라오스의 매력을 계속 탐닉해보자.
재이 여행작가는… |
세계 100여 개국을 여행하며 세상을 향한 시선을 넓히기 시작했다. 지금은 삶의 대부분을 보낸 도시 생활을 마감하고 제주로 이주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다양한 여행 콘텐츠를 생산하는 노마드 인생을 살고 있다. |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30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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