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전설 캐나다 ‘메이플 로드’에 불어오는 도깨비 바람[전승훈의 아트로드]
퀘벡=전승훈 기자
입력 2023-10-28 01:40 수정 2023-10-28 01:40
캐나다 퀘벡주 몽모랑시 폭포 위에 놓여 있는 현수교를 건너면 몽모랑시강이 87m 높이의 절벽 아래로 떨어져 세인트로렌스강으로
합류하는 폭포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상류에 흐르는 몽모랑시 강물에는 단풍이 든 나무와 푸른 하늘, 흰 구름이 거울처럼 비치고 있다.
‘단풍국’ 캐나다의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퀘벡까지 이어지는 800km의 메이플 로드는 세계적인 가을 단풍 명소다. 퀘벡에서 만난 단풍나무의 잎은 크기가 엄청났다. 손바닥보다 커 플라타너스 잎처럼 보일 정도. 그런데 빨갛게 떨어진 잎을 보니 캐나다 국기에 있는 바로 그 단풍잎 모양 그대로였다. 드라마 ‘도깨비’의 촬영지로 친숙해진 퀘벡주에는 로맨틱한 한류 드라마의 바람도 거세게 불고 있었다.
●‘단풍국’ 캐나다의 가을
캐나다 단풍에서 놀라운 점은 무엇보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광활함이었다. 퀘벡주 로렌시아산맥을 가득 뒤덮은 단풍나무 잎의 물결이 차창 밖으로 이어진다. 우리나라 설악산이나 내장산 단풍처럼 화려하게 불타오르진 않았지만, 은은하고도 부드럽게 가을의 전설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캐나다의 단풍은 원래 프랑스계 캐나다인을 상징하는 표식이었다. 1536년 프랑스의 탐험가 자크 카르티에가 북미 동부 해안 세인트로렌스만을 발견한 이후 퀘벡 지역은 프랑스 식민지인 ‘누벨 프랑스’로 불렸다. 그런데 18세기 영국령이 된 이후로 다른 영연방 국가들처럼 유니언잭이 그려진 국기를 써서 프랑스계 캐나다인들로부터 불만이 제기돼 왔다. 결국 1964년에 공모해서 만들어진 국기가 흰 바탕에 빨간색 단풍잎이 그려진 ‘메이플 리프 플래그(Maple Leaf Flag)’다. 퀘벡주는 메이플 시럽의 최대 생산지다. 단풍잎은 프랑스 문화와 언어를 간직해온 퀘벡의 가장 큰 관광자원인 셈이다.
퀘벡에서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단풍 명소는 어딜까. 가장 인기 있는 곳은 계곡과 폭포가 어우러진 단풍 계곡이다. 캐나다의 그랜드캐니언으로 불리는 ‘캐니언 생트안’은 12억 년 전에 형성된 지질의 협곡이다. 울창한 숲과 함께 74m 높이의 바위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가 비경을 이루고 있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3곳의 출렁다리와 전망대를 오가며 여러 가지 각도에서 단풍과 폭포를 감상할 수 있다.
생트안협곡 폭포 위에 뜬 쌍무지개.
생트안협곡의 출렁다리를 건너던 중 가을비가 소나기처럼 쏟아지다가 거짓말처럼 쨍하고 개었다. 옆에 있던 캐나다 청년이 계곡 위 하늘을 가리키며 소리친다. “더블 레인보(Double Rainbow)!” 청년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가 보니 행운의 쌍무지개가 떠 있었다. 재빠르게 소원을 빌었다. 무지개 하나에는 가족의 건강을 빌고, 또 다른 무지개에는 전쟁 중인 중동과 우크라이나에서 하루빨리 평화가 오기를 기원했다.몽모랑시 폭포는 계단을 통해 폭포 아래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두 번째 단풍 명소는 퀘벡시 올드타운 중심부에서 약 13km 떨어진 몽모랑시 폭포다. 몽모랑시강이 세인트로렌스강으로 흘러드는 하구에 있는 높이 84m, 폭 46m의 폭포다. 나이아가라보다 높이가 30m 정도 높은 거대한 규모다.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는데, 폭포 윗부분에는 현수교가 있다. 현수교에 올라서니 한쪽에선 거울처럼 맑은 몽모랑시 강물이 흐르고, 다른 쪽으로는 낭떠러지로 폭포가 흘러내리는 아찔한 장관이 발밑에 펼쳐진다. 폭포 물줄기 위를 집라인을 타고 날아가거나, 안전장치를 하고 암벽을 타거나, 폭포 아래까지 비옷을 입고 계단을 걸어 내려가는 등 다양하게 폭포의 짜릿함을 즐길 수 있다. 세 번째로는 단풍이 바다처럼 펼쳐지는 로렌시아산맥을 전망하는 코스다. 퀘벡주 몬트리올에서 1시간 반 정도 달리면 숲속 마을 몽트랑블랑이 나타난다. 스키와 골프, 하이킹, 카약, 단풍과 별 보기 등 다양한 액티비티 체험을 즐길 수 있는 ‘북미의 알프스’로 불리는 곳이다. 정상(875m)까지 곤돌라를 타면 약 15분 걸린다. 정상에 올라가면 거울처럼 맑은 트랑블랑 호수와 로렌시아산맥의 광활한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인근 숲속에는 단풍 트레킹을 할 수 있는 ‘로렌시아 고원의 오솔길’도 있다. 자작나무와 단풍나무가 우거진 숲속 20m 상공에 놓여 있는 덱길을 걷는다. 길의 끝에 있는 40m 높이의 타워는 6도의 경사도로 완만하게 올라갈 수 있는데, 경사로를 따라 11번 빙글빙글 돌다 보면 로렌시아산맥의 단풍 숲을 360도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다.
퀘벡의 특산품은 바로 ‘메이플 시럽’이다. 단풍나무에서 채취하는 우리나라 고로쇠 수액처럼 메이플 나무 수액을 끓여서 만든다. 메이플 나무는 수액에 단맛이 많이 나서 ‘사탕단풍’ ‘설탕단풍’으로 불린다. 캐나다에서 디저트를 만들 때 사용되는 메이플 시럽은 100g당 260Cal로 설탕보다 칼로리가 낮고 자연스러운 단맛을 만들어낸다.
몽트랑블랑 마을에서는 캐나다인들의 겨울 간식인 ‘메이플 태피(Maple Tappy)’를 맛볼 수 있었다. 메이플 시럽을 끓여서 흰 눈 위에 뿌린 후 식으면 막대기를 꽂아 돌돌 말아서 빨아 먹는 것이다. 우리나라 달고나와 비슷한 맛과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길거리 간식이다.
● 찬란하고 쓸쓸한 도깨비 언덕
퀘벡의 가을 단풍이 한국인들에게 더욱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tvN 드라마 ‘도깨비’ 덕분이다. 퀘벡 옛 시가지에 있는 프티샹플랭 거리에서는 ‘도깨비 신부’ 김고은처럼 빨간색 목도리를 두른 여성들이 인증샷을 찍는다. 공유와 김고은이 함께 걷던 ‘목 부러지는 계단’,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파는 ‘부티크 드 노엘’, 하늘에 우산이 펼쳐진 골목 등이 주요 장소다.빨간 문 앞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관광객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있는 곳은 공유가 문을 열고 시공간 이동을 하던 ‘빨간 문’이다. 이 문은 원래 ‘프티샹플랭 극장’ 벽에 달린 비상구다. 빨간문을 통해 막 나온 듯한 포즈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 일본, 싱가포르 등 다양한 국적의 한류 드라마 팬들이다. 이 거리에서 유럽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해설하던 캐나다인 가이드는 기자를 보고 “한국에서 오지 않았느냐”고 말을 걸어 왔다. “한국 드라마 ‘Goblin’(도깨비)은 퀘벡을 전 세계에 알린 작품입니다. 드라마를 보고 여행객들이 세계 곳곳에서 찾아옵니다. 캐나다인들은 예전엔 동양 사람 구별을 어려워했는데, 저도 한류 드라마를 많이 보다 보니 한국인은 확실하게 구별할 줄 알게 됐지요.”
도깨비 언덕에서 내려다본 샤토 프롱트나크 호텔.
샤토 프롱트나크 호텔의 황금빛 우체통.
프티샹플랭 거리를 어슬렁거리다가 노을이 질 즈음 도깨비 언덕에 올랐다. 언덕 위 잔디밭에는 연인끼리 앉아 세인트로렌스 강변 언덕 위에 고성처럼 우뚝 솟은 페어몬트 르 샤토 프롱트나크 호텔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다. 드라마 속에서 ‘도깨비’ 공유가 경영하는 것으로 나오는 이 호텔은 퀘벡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와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비밀 군사회담 ‘퀘벡회담’이 열렸던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호텔 로비 엘리베이터 기둥에 설치된 황금빛 우체통도 드라마 팬들에겐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김고은이 편지를 보내던 로열메일 우체통은 지금도 매일 오후 1시 반에 편지를 수거해 간다고.샤토 프롱트나크 호텔 앞 테라스 뒤프랑 산책길에서는 색소폰 연주자가 가을을 노래하고 있다. 이 길을 따라가면 퀘벡 옛 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을 한 바퀴 돌 수 있다. 성벽길은 프랑스군과 영국군이 전쟁을 벌였던 에이브러햄 평전으로 이어진다.
● 가볼 만한 곳=퀘벡시 세인트로렌스강에 있는 오를레앙섬은 단풍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프랑스의 전원마을처럼 아기자하고 예쁜 농가와 포도밭, 사과 농장, 초콜릿 가게들이 있다. 퀘벡주 남부 소도시 셔브룩에 있는 ‘OMZ레스토랑’은 오래된 성당을 개조해 만든 레스토랑이다. 이곳엔 ‘코리안 푸틴 요리’(사진)가 있다. 푸틴은 감자튀김에 치즈, 다양한 소스를 뿌려서 먹는 퀘벡의 음식. 코리안 푸틴에는 감자튀김과 치즈에 고추장, 삼겹살, 김치가 들어간다. 한류 열풍이 분 퀘벡엔 ‘일본식 푸틴’ ‘중국식 푸틴’은 없어도 ‘한국식 푸틴’은 있다. |
퀘벡=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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