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가을 캐나다 ‘메이플 로드’에 부는 도깨비 바람 [전승훈의 아트로드]

퀘벡=전승훈 기자

입력 2023-10-28 14:00 수정 2023-10-29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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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국’ 캐나다의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퀘벡까지 이어지는 800km의 메이플 로드(Maple Road)는 세계적인 가을 단풍 명소다. 퀘벡에서 만난 단풍나무의 잎은 크기가 엄청났다. 손바닥보다 커 플라타너스 잎처럼 보일 정도. 그런데 빨갛게 떨어진 잎을 보니 캐나다 국기에 있는 바로 그 단풍잎 모양 그대로였다. 드라마 ‘도깨비’의 촬영지로 친숙해진 퀘벡주에는 로맨틱한 한류 드라마의 바람도 거세게 불고 있었다.

캐나다 동부 퀘벡의 로렌시아 산맥의 단풍. 몽트랑블랑 인근 숲 속 공중 보행로인 ‘로렌시아 고원의 오솔길’의 전망대 타워에서 바라보면 광대한 산맥에 펼쳐진 ‘단풍의 바다’를 360도 파노라마 풍경으로 감상할 수 있다.







‘단풍국’ 캐나다의 가을
캐나다 단풍에서 놀라운 점은 무엇보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광활함이었다. 퀘벡주 로렌시아 산맥을 가득 뒤덮은 단풍나무의 잎의 물결이 차창 밖으로 이어진다. 우리나라 설악산이나 내장산 단풍처럼 화려하게 불타오르진 않았지만, 은은하고도 부드럽게 가을의 전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캐나다의 단풍은 원래 프랑스계 캐나다인을 상징하는 표식이었다. 1536년 프랑스의 탐험가 자크 카르티에가 북미 동부해안에 세인트로렌스 만을 발견한 이후 퀘벡지역은 프랑스 식민지인 ‘누벨 프랑스’로 불렸다.




그런데 18세기 영국령이 된 이후로 다른 영연방 국가들처럼 유니언잭이 그려진 국기를 써서 프랑스계 캐나다인들로부터 불만이 제기돼 왔다. 결국 1964년에 공모해서 만들어진 국기가 흰바탕에서 빨간색 단풍잎이 그려진 ‘메이플 리프 플래그(Maple Leaf Flag)’다. 퀘벡주는 메이플 시럽의 최대 생산지다. 단풍잎은 프랑스 문화와 언어를 간직해온 퀘벡의 가장 큰 관광자원인 셈이다.

퀘벡시티 인근 오를레앙섬의 단풍.


퀘벡에서 현지인들이 즐겨찾는 단풍명소는 어딜까. 가장 인기있는 곳은 계곡과 폭포가 어우러진 단풍 계곡이다. 캐나다의 그랜드 캐년으로 불리는 ‘세인트 안 캐년(Saint Anne Canyon)’은 12억년 전에 형성된 지질의 협곡. 울창한 숲과 함께 74m 높이의 바위절벽으로 떨어지는 폭포가 비경을 이루고 있다. 계곡을 가로 지르는 3곳의 출렁다리와 전망대를 오가며 여러 가지 각도에서 단풍과 폭포를 감상할 수 있다.

세인트 안 계곡 위에 뜬 쌍무지개.


세인트 안 캐년의 출렁다리를 건너던 중 가을비가 소나기처럼 쏟아졌다가 거짓말처럼 쨍하고 개었다. 옆에 있던 캐나다 청년이 계곡위 하늘을 가리키며 소리친다.

세인트안 협곡 폭포 위에 뜬 쌍무지개.


“더블 레인보우(Double Rainbow)!” 청년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가보니 행운의 쌍무지개가 떠 있었다. 재빠르게 소원을 빌었다. 무지개 하나에는 가족의 건강을 빌고, 또다른 무지개에는 전쟁 중인 중동과 우크라이나에서하루빨리 평화가 오기를 기원했다.

두 번째 단풍명소는 퀘벡시 올드타운 중심부에서 약 13km 떨어진 몽모랑시 폭포(Montmorency Falls)다. 몽모랑시 강이 세인트 로렌스 강으로 흘러드는 하구에 높이 84m, 폭 46m의 폭포다. 나이아가라보다 높이가 30m 정도 높은 거대한 규모다.

몽모랑시 폭포.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는 데, 폭포 윗부분에는 현수교가 있다. 현수교에 올라서니 한쪽에선 거울처럼 맑은 몽모랑시 강물이 흐르고, 다른 쪽으로는 낭떠러지로 폭포가 흘러내리는 아찔한 장관이 발밑에 펼쳐진다.

몽모랑시 폭포 위에 설치된 현수교와 거울처럼 맑은 몽모랑시 강.




폭포 물줄기 위를 짚라인을 타고 날아가거나, 안전장치를 하고 암벽을 타고, 폭포 아래까지 비옷을 입고 계단을 걸어내려가는 등 다양하게 폭포의 짜릿함을 즐길 수 있다.

몽모랑시 폭포는 계단을 통해 폭포 아래까지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세 번째로는 단풍이 바다처럼 펼쳐지는 로렌시아 산맥을 전망하는 코스다. 퀘벡주 몬트리올에서 1시간반 정도 달리면 숲속 마을 몽트랑블랑(Mont Tremblanc)이 나타난다.

몽트랑블랑 호수에 비친 단풍과 흰구름.

스키와 골프, 하이킹, 카약, 단풍과 별보기 등 다양한 액티비티 체험을 즐길 수 있는 ’북미의 알프스‘로 불리는 곳이다.

곤돌라를 타고 올라간 몽트랑블랑 정상에서 바라본 호수 풍경.


정상(875m)까지 곤돌라를 타면 약 15분 걸린다. 정상에 올라가면 거울처럼 맑은 트랑블랑 호수와 로렌시아 산맥의 광활한 능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몽트랑블랑 정상 전망대.


몽트랑블랑 정상 전망대에서 바라본 단풍과 호수.

인근 숲 속에는 단풍 트레킹을 할 수 있는 ‘로렌시아 고원의 오솔길’(Le Sentier des cimes Laurentides)도 있다. 자작나무와 단풍나무가 우거진 숲 속 20m 상공에 놓여 있는 데크길을 걷는다.

퀘벡의 광활한 단풍 숲을 감상할 수 있는 ‘로렌시아 고원의 오솔길’.




길의 끝에 있는 40m 높이의 타워는 6도의 경사도로 완만하게 올라갈 수 있는데, 경사로를 따라 11번 빙글빙글 돌다보면 로렌시아 산맥의 단풍숲을 360도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다.

‘로렌시아 고원의 오솔길’ 타워에서 바라본 단풍의 바다.




퀘벡의 특산품은 바로 ‘메이플 시럽’이다. 단풍나무에서 채취하는 우리나라 고로쇠 수액처럼 메이플 나무 수액을 끓여서 만든다. 메이플 나무는 수액에 단맛이 많이 나서 ‘사탕단풍’ ‘설탕단풍’으로 불린다. 캐나다에서 디저트를 만들 때 사용되는 메이플 시럽은 100g 당 260kcal로 설탕보다 칼로리가 낮고 자연스러운 단맛을 만들어낸다.

몽트랑블랑 마을에서는 캐나다인들의 겨울 간식인 ‘메이플 태피(Maple Tappy)’를 맛볼 수 있었다. 메이플시럽을 끓여서 흰 눈 위에 뿌린 후 식으면 막대기를 꽂아 돌돌 말아서 빨아먹는 것이다. 우리나라 달고나와 비슷한 맛과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길거리 간식이었다.

찬란하고 쓸쓸한 도깨비 언덕

도깨비 언덕에서 내려다본 샤토 프롱트낙 호텔.


퀘벡의 가을 단풍이 한국인들에게 더욱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tvN드라마 ‘도깨비’ 덕분이다. 퀘벡 구 시가지에 있는 프티 샹플랭 거리에서는 ‘도깨비 신부’ 김고은처럼 빨간색 목도리를 두른 여성들이 인증샷을 찍는다. 공유와 김고은이 함께 걷던 걷던 ‘목 부러지는 계단’,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파는 ‘부티크 드 노엘’, 하늘에 우산이 펼쳐진 골목 등이 주요 장소다.

부티크 드 노엘.






샤토 프롱트낙 호텔이 보이는 우산 골목.


그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있는 곳은 공유가 문을 열고 시공간 이동을 하던 ‘빨간문’이다. 이 문은 원래 ‘프티 샹플랭 극장’ 벽에 달린 비상구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공유가 시공간을 이동하던 ‘빨간문’. 퀘벡 올드타운 골목길에 있는 프티 샹플랭 극장 벽면에 있는 비상구다.


빨간문을 통해 막 나온 듯한 포즈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한국은 물론 중국, 일본, 싱가포르 등 다양한 국적의 한류 드라마 팬들이다. 이 거리에서 유럽관광객을 대상으로 해설하던 캐나다인 가이드는 기자를 보고 “한국에서 오지 않았느냐”고 말을 걸어왔다.

빨간문 앞에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는 관광객들.




“한국 드라마 ‘Goblin’(도깨비)는 퀘벡을 전세계에 알린 작품입니다. 드라마를 보고 퀘벡을 찾는 여행객들이 세계 곳곳에서 찾아옵니다. 캐나다인들은 예전엔 동양사람 구분을 어려워했는데, 저도 한류 드라마를 많이 보다 보니 한국인은 확실하게 구분할 줄 알게 됐지요.” (캐나다인 관광 가이드)

프티 샹플랭 거리를 어슬렁거리다가 노을이 지을 즈음 도깨비 언덕에 올랐다. 언덕 위 잔디밭에는 연인끼리 주저앉아 세인트로렌스 강변 언덕 위에 고성처럼 우뚝 솟은 페어몬트 샤토 프롱트낙(Fairmont Chateau Frontenac)호텔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다.




드라마 속에서 ‘도깨비’ 공유가 경영하는 것으로 나오는 이 호텔은 퀘벡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다. 2차 대전 때 영국의 윈스턴처칠 수상과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의 비밀군사회담이었던 ‘퀘벡회담’이 열렸던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샤토 프롱트낙 호텔.

호텔 로비 엘리베이터 기둥에 설치된 황금빛 우체통도 드라마팬들에겐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김고은이 편지를 보내던 로열메일 우체통은 지금도 매일 오후 1시반에 편지를 수거해 간다고 한다.

샤토 프롱트낙 호텔의 황금빛 우체통.

샤토 프롱트낙 호텔 앞 테라스 뒤프랑 산책길에는 색소폰 연주자가 가을을 노래하고 있다. 이 길을 따라가면 퀘벡 구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을 한바퀴 돌 수 있다. 성벽길은 프랑스군과 영국군이 전쟁을 벌였던 아브라함 평전으로 이어진다.

퀘벡 올드시티 테라스 뒤프랑에 있는 퀘벡의 첫 프랑스 총독 사무엘 드샹플랭 동상.



가볼만한 곳

퀘벡시 세인트로렌스강에 있는 오를레앙섬은 단풍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프랑스의 전원마을처럼 아기자하고 예쁜 농가와 포도밭, 사과농장, 초콜릿 가게들이 있다.

오를레앙 섬 포도밭과 사과농장.


퀘벡주 남부 소도시 셔브룩에 있는 ‘OMZ레스토랑’은 오래된 성당을 개조해 만든 레스토랑이다. 이 곳엔 ‘코리안 푸틴요리’가 있다. 푸틴은 감자튀김에 치즈, 다양한 소스를 뿌려서 먹는 퀘벡의 음식. 코리안 푸틴에는 감자튀김과 치즈에 고추장, 삼겹살, 김치가 들어간다. 한류 열풍이 분 퀘벡엔 ‘일본식 푸틴’ ‘중국식 푸틴’은 없어도 ‘한국식 푸틴’은 있다.

감자튀김과 치즈가 들어가는 퀘벡 전통요리 푸틴에 김치와 고추장 소스를 곁들인 OMZ레스토랑의 ‘코리안 푸틴’.



퀘벡=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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