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만에 반지하서 지상층으로… “LH 덕분에 평생 잊지못할 감격”

동아닷컴 정진수 기자

입력 2023-04-17 17:18 수정 2023-04-17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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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에서 지상층, LH 주거정책으로 삶에 빛이 들어와
“거주공간의 단순변화를 넘어 입주민의 주거상향을 목표로”


지난해 8월 물폭탄에 가까운 기록적인 집중호우로 지하층 주택의 침수사고가 곳곳에서 속출했다. 자연재해가 사회적 약자에게 더욱 가혹하다는 사실을 재확인한 시간이었다. 이수진 씨(50·가명)도 침수 우려에 가슴을 졸였던 반지하 입주민 중 한 명이었다.

그는 “검단산 자락에서 흘러내린 흙탕물, 돌멩이, 나뭇가지들이 저희 집 앞으로 모였어요. 창문 턱까지 물이 차오르는 걸 보며 두려웠습니다. 화장실은 역류했고 아들 방 벽이 빗물에 젖었습니다.” 라고 회상했다.
반지하 건물 외부. LH 제공

이 씨는 언제 또 폭우가 쏟아질까 지난 여름 내내 가슴을 졸였다. 걱정의 나날을 보내다 LH 주거지원종합센터로 도움을 요청했고, 그로부터 2주 뒤 ‘반지하 입주민 주거상향사업’의 대상자로 선정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LH가 시행하는 주거상향사업은 홍수, 호우 등 침수피해 발생가능성이 높은 지하층 거주 입주민을 지상층 임대주택으로 이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며칠 후 LH 담당자로부터 연락을 받고 이주대상 주택을 직접 보러 간 이씨는 평생 잊지 못할 감격의 순간을 맞았다. 벅찬 감정을 아이들과 한시라도 빨리 나누고 싶은 마음에 집안 곳곳을 동영상으로 찍어 아이들에게 전송했다.

이 씨는 스물세 살의 이른 나이에 결혼해 두 아이를 낳았지만, 사업을 하겠다는 남편 탓에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갔고, 늘어나는 빚을 감당하지 못한 남편은 어느 날 갑자기 종적을 감췄다. 이제는 이십대 중반의 어엿한 청년이 된 큰 아이가 일곱 살 때의 일이었다. 남편이 진 빚은 고스란히 이 씨에게로 돌아왔고, 지금의 집으로 옮겨오기 전까지 30년 가까이 반지하 생활을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두 아이의 엄마로서 무너지지 않으려고 억척같이 살았지만 항상 아이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는 습하고 햇빛이 잘 들지 않는 반지하에서 부모의 이혼을 견뎌내며 성장기를 보내야 했던 아이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저리고 눈시울이 붉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LH 매입임대주택으로 이주를 마쳤다. 신축 빌라 3층에 자리한 이씨의 집은 방 2개와 다용도실 2개, 화장실이 하나인 아담한 크기다. 이사 후 세 사람 모두 각자의 방이 생겼다. 크기가 큰 다용도실을 딸 방으로 꾸몄기 때문이다.

이 씨에게 새로운 집은 안전하고 안락한 공간이 됐다. 거실의 큰 창에서는 그동안 보기 힘들었던 햇빛이 아침부터 낮 동안 집안을 가득 채웠다. 낯선 행인의 시선에 창문 열기를 꺼렸는데, 이제는 마음껏 햇살과 바람을 방안에 담을 수 있게 됐다. 단 한 번도 친구를 집에 데려온 적이 없었던 아이들도 이사하고 난 후 친구들을 데려왔다. 반지하의 낡은 집이 부끄러워 그런 것이 아닐까 싶어 마음이 아팠는데, 이제는 그런 마음의 짐도 덜 수 있게 됐다. 이씨는 이사 후 확연히 달라진 자녀들 모습에 엄마로서 기쁠 따름이라고 말했다.

아늑하고 포근한 세 사람의 보금자리에 이씨의 애정과 정성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인상 깊은 것은 이 씨 방에 자리한 커다란 책상이다.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로 일을 한 지 올해로 4년 차에 접어든 이씨는 이 집에서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얻었고 한다.

“3년 정도 후에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해 어르신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싶어요. 지상층으로 이사한 이후 앞으로 제 삶에도 좋은 일만 가득할 것 같아요”라고 이 씨는 말했다. 요즘 아침에 소파에 앉아 햇빛을 받으며 커피 한 잔 마시는 일이 일상의 즐거움이 됐고, 퇴근 후 아이들과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며 먹는 따뜻한 저녁에서 행복을 실감하게 됐다고 한다.

LH는 반지하 입주민 주거상향사업으로 올해 3월말까지 138가구가 지상층으로 이주를 완료했다. LH 관계자는 지상층 임대주택으로 이주한 뒤 거주여건과 임대조건에 대한 이주자들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지상층으로 이주 시 일시에 임대료 부담이 높아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기존 지하층 임대조건을 2년간 유지하고, 이전비 40만 원을 지원해 경제적 부담을 낮췄기 때문이다.
이주 주택 내부 거실.

LH는 올해 4월부터 ‘찾아가는 이주상담’을 추진한다. 지하층 이주대상자를 개별적으로 방문해 이주일정, 주택방문, 임대조건 등을 세부적으로 안내하고, 이주희망 지역 내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신속하게 이주를 지원한다. 반지하 주택 거주에 불편함을 느끼는 모든 세대가 조속히 지상층으로 이전할 수 있도록 매입임대, 전세임대 등 LH 공공임대주택을 활용하되 수요가 많은 지역은 추가로 주택을 매입해 공급할 계획이다. 이주가 완료된 지하층은 지자체와 연계해 도서관, 주민 쉼터 등의 커뮤니티 시설이나 공동창고, 공용세탁실 등의 입주자 편의시설로 활용된다.

하승호 LH 국민주거복지본부장은 “LH는 반지하 입주민 주거상향뿐만 아니라, 고시원, 쪽방 등 비주택 가구의 주거상향도 지원한다”면서 “주거복지 정보에 취약한 계층들에게 사업을 알리고 원스톱 주거서비스를 강화해 더 많은 국민이 사각지대 없는 주거복지를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동아닷컴 정진수 기자 brje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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