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으로 올린 집값, 독립된 중앙은행이 잡아라[동아광장/하준경]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입력 2021-04-14 03:00 수정 2021-04-14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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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 희망 꺾는 비현실적 집값
소득보다 빨리 늘어나는 빚 때문
선거 틈탄 ‘금융화’ 부작용 막아야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집값이 소득보다 빠르게 오르는 현상이 오래 지속되는 가장 큰 이유를 꼽아보라고 하면 ‘금융화’와 이에 대한 대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뭉친 돈들이 밀물처럼 부동산시장으로 몰려오는 ‘부동산의 금융화’ 상황에서, 현 정부는 이전 정부가 풀었던 금융규제를 정상화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핀셋규제를 고수했다.

한쪽만 둑을 쌓고 다른 쪽은 놔두면 돈의 쓰나미를 막을 수 없다. “인기 지역에 대해서는 주택담보대출을 사실상 금지했는데도 부자들이 현금을 들고 와서 사는 것을 어떻게 막느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현금은 금융규제가 약한 지역의 주택을 판 대금, 즉 다른 누군가의 빚일 수 있다. 누군가의 전세대출금이나 신용대출금일 수도 있다. 경제 전체적으로 노동소득은 크게 늘지 않았는데, 집값 올리는 데 들어간 그 많은 돈은 다 어디서 왔겠는가.

핀셋규제는 금융규제를 강화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는 있었지만 실효성은 약했다. 소득 대비 가계대출 비율은 더 높아졌다. 소득보다 빚이 빨리 느는 상황에서 소득이 집값을 따라가기란 애초에 무리였다. 비현실적 수준의 집값 상승은 젊은이들의 희망을 꺾는 데 그치지 않고 전월세 비용을 올려 빚을 더 내도록 떠밀었다. 정부를 믿고 박탈감을 견뎌왔던 사람들도 은행에 달려가 ‘영끌’하며 금융화의 촉수를 느낄 때는 이를 악물기 마련이다.

금융화는 당장 현금이 없는 사람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기능을 하지만 임계치를 넘으면 약탈 수단으로 돌변한다. 예로부터 누군가를 노예로 만들 때 가장 많이 썼던 수단이 빚이다. 그래서 빚을 차입자의 소득, 특히 미래 소득과 연계시켜 스스로 감당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금융화의 부작용을 막는 관건이다.

정부도 이 작업의 중요성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2005년 노무현 정부 때 총부채상환비율(DTI)이 처음 도입되자 당시 금융감독원 실무자는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조사 아닌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좋은 제도를 왜 이제야 가지고 왔느냐는 것이었다. 이후 이명박 정부도 DTI만큼은 지키려 노력했다. 2012년 당시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DTI 규제를 풀라는 새누리당의 요구에 “날씨가 아무리 춥더라도 집 기둥을 뽑아 불을 땔 수는 없다”며 버텼다.

그러나 어느 나라 정부든 빚을 소득에 연계시키는 장치를 끝까지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금융화’ 또는 빚 주도 성장은 거대한 도박판을 키워 당장 경기를 활성화하면서 세수도 늘릴 효과적 수단이기 때문이다. 선거를 앞두면 이 유혹을 이겨내기가 더 어렵다. 신자유주의 확산으로 재정지출보다 민간금융을 통한 경기부양이 즐겨 활용되던 시기엔 여러 나라가 금융화를 장려했다.

이 흐름은 부동산 금융화의 폐해가 극적으로 드러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일부 반전됐다. 미국과 영국은 위기를 겪고 나서 소득과 대출한도 사이의 비율을 정하고 감독하는 작업을 중앙은행에 맡겼다. 이것은 율리시스가 돛대에 스스로를 묶어 세이렌의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는 것과 비슷하다. 독립적인 중앙은행은 눈앞의 선거보다는 긴 흐름을 보며 판단할 것이고, 또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많은 돈을 풀어야 하므로 스스로 위기 예방을 제대로 할 유인을 갖는다.

이젠 관료가 과거처럼 금융화의 힘을 통제하기가 쉽지 않다. 금융시장이 커지면서 금융권의 이해와 정치권의 요구가 더 세졌다. 게다가 뿌리 깊은 재정보수주의도 금융화를 강화시킨다. 금융화란 애초에 돈이 한쪽에 뭉쳐서 발생하는 것인데, 정부가 빚내기를 꺼릴수록 가계가 빚을 떠안게 된다. 통계를 보면 정부 빚 이자 부담과 가계 빚 이자 부담은 대체관계를 갖는다.

최근 여당은 대출규제 완화를 검토하고 있다. 젊은이들의 미래 소득을 제대로 평가하고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소득 대비 빚 부담 비율을 더 높이는 것은 소탐대실로 가는 지름길이다. 금융화를 제어할 핵심 수단을 경기 조절 수단으로 쓰려는 유혹을 이기려면 관치금융 시대의 제도를 재검토해 여러 선진국처럼 중앙은행이 금융안정 기능을 제대로 하게 할 필요가 있다. 금융권의 이해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조건에서 말이다. 또 정부는 재정보수주의를 극복하고 국채를 잘 활용해서 가계 빚 문제 악화를 막고, 꼭 필요한 사람들과 생산적인 부문에 돈이 가도록 유도해야 한다. 부동산 보유세도 금융화 때문에 급격히 늘어난 부분은 공적 금융을 이용해 이연해주거나 지분으로 납부해 나중에 정산할 수 있게 해줄 필요가 있다.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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