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가격, 현실화 앞서 불신해소 우선… 조세-복지 영향 따져야”[인사이드&인사이트]

이새샘 산업2부 기자

입력 2020-11-06 03:00 수정 2020-11-06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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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이 보는 ‘시세 90% 현실화’


이새샘 산업2부 기자
부동산 공시가격 제도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정부가 공시가격을 매년 순차적으로 인상해 시세의 90%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을 발표하면서다. 정부는 공시가격을 시세에 준하게 올려야 자산가치에 맞는 공평한 과세가 이뤄질 수 있고 종류별·가격대별 부동산 간 형평성도 맞출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공시가격 제도가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 없이 현실화율부터 우선 올리는 것은 순서가 뒤바뀌었다고 지적한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현실화율을 통해 징벌적 과세를 하려 한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 공시가격 인상 드라이브 2019년부터 시작


정부가 공시가격 현실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한 것은 2019년도 공시가격 발표 때부터다. 정부는 표준 단독주택을 시작으로 공시가격 현실화를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당시 고가 단독주택을 중심으로 공시가격이 대폭 올라 서울은 전체 표준 단독주택의 공시가격이 전년 대비 평균 17.75% 인상됐다. 공동주택의 경우 약 14% 인상돼 2008년 이후 가장 높은 인상률이었는데 특히 시세 12억 원(공시가격 9억 원) 이상 고가 주택을 중심으로 현실화율을 끌어올려 이들 주택은 평균 인상률이 20%를 넘어설 정도였다. 공동주택의 경우 2020년에도 마찬가지로 시세 9억 원(공시가격 6억 원) 이상 주택으로 현실화 대상을 확대해 2019년을 넘어서는 인상률을 보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 2019, 2020년을 거치며 30억 원 초과 초고가 공동주택은 현실화율이 2018년 67.1%에서 79.9%까지 뛰었고 15억 원 초과∼30억 원 이하 주택은 66.7%에서 74.6%로 상승했다. 만약 20억 원짜리 주택이라면 공시가격이 2018년에는 13억 원대였지만 올해는 15억 원 가까이로 뛰었다는 얘기다. 이 같은 공시가격 인상 드라이브를 마무리하는 것이 바로 이번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이다.

사실 공시가격이 기준 없이 들쑥날쑥하다는 점은 20년 이상 지속적으로 지적돼온 문제다. 부동산 전문가들 중에 공시가격 현실화라는 방향 자체에 반대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고가 주택의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오히려 더 낮거나, 같은 가격대라도 단독주택과 공동주택 간 현실화율이 차이가 나는 현상 등이 지금까지 제기돼온 대표적인 문제들이다.

○ ‘부동산에 거품 끼었다’며 그 가격에 맞춰 공시가격 산정


문제는 공시가격 현실화를 추진하는 방법과 속도다. 개별 감정평가사가 그 가치를 ‘평가’해 가격을 매기는 토지와 달리 주택은 한국감정원이 시세를 바탕으로 건물의 층이나 향, 연식, 주변 환경 등을 감안해 가격을 ‘산정’한다. 주택은 토지와 달리 거래도 자주 일어나고 시장에서 통용되는 시세라는 것이 있으니 굳이 전문가의 감정평가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결국 해당 주택이 팔릴 만한 가격, 즉 시세와 정부가 정한 현실화율 목표치가 주택의 공시가격을 결정하게 된다.

현실화율 목표치가 정부가 자의적으로 정한 기준이라는 점은 차치하고라도 많은 전문가는 이 ‘시세’가 과연 정상적인 ‘시장가치’와 같다고 볼 수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현재 정부는 투기세력 때문에 주택 가격에 거품이 끼었다며 각종 규제를 통해 주택가격을 떨어뜨리려 하고 있다. 그런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 거품이 낀 가격이 시장가격이니 그에 맞게 세금을 내도록 해야 한다며 현실화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주택 소유주, 특히 ‘투기세력’이라고 보기 힘든 1주택자는 정부의 각종 규제가 강화돼 주택을 처분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가격 상승 때문에 이 거품이 낀 가격에 맞춰 세금을 내야 하는 모순이 생기는 것이다. 그동안 시세와 공시가격 사이에 일정한 차이를 둬 왔던 데는 이처럼 시장 상황에 따른 가격 변화를 과하게 공시가격에 반영해 세금을 매기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도 있었다.

공시가격 산정의 정확도 역시 이미 수차례 도마에 오른 바 있다. 한 건물의 아파트가 층이나 향 등 각 주택 특성에 따른 차이 없이 일괄적으로 같은 공시가격이 매겨지거나 같은 단지 아파트인데도 평수가 더 큰 아파트가 작은 아파트보다 더 낮은 공시가격이 매겨지는 등 지금까지 밝혀진 오류 사례도 다양하다. 하지만 이번 현실화 계획에서도 이 같은 오류를 어떻게 줄일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은 제시되지 않았다. 감정원이 과연 적정한 시세를 책정하고 있는지 확인할 방법도 없다.

정수연 제주대 경제학과 교수(제주도공시가격검증센터장)는 “공시가격을 정부안대로 높일 거라면 공시가격과 실거래 가격을 어떻게 책정했는지 근거 자료를 모두 공개하고 이를 담당자의 실명이 기재된 보고서로 만들어 재산세 등 세금 부과 시 개별 납세자들에게 송부해야 한다”며 “이런 수준의 투명성 없이는 공시가격 제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 조세, 복지제도 전반에 영향 미치는데 파급효과 고려 없어


이렇게 인상된 공시가격은 국민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공시가격은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등 각종 세금과 기초연금 건강보험 장학금 등 각종 복지제도 등 행정제도 60여 개를 운영하는 기초다. 이미 공시가격이 대폭 인상되기 시작한 이후 부동산 가격 변화가 크지 않은 지방에서도 기초연금 수급에서 탈락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공시가격을 올릴 경우 조세와 복지제도 전반에 미칠 영향을 중장기적으로 전망하고, 이로 인해 복지제도에서 탈락하는 사람들의 피해는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 조세제도는 장기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운영할지 종합적으로 논의해야 하는 이유다.

2019년 표준 단독주택 공시가격을 대폭 높일 당시 국토부는 “부처 간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복지제도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현실화 계획이 나올 때까지 2년이 넘는 동안 이 TF에서 어떤 내용이 논의됐고,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 구체적으로 발표된 적은 없다. 이번 현실화 계획 수립을 위해 발주한 연구용역의 과업지시서에도 공시가격 인상에 따른 조세, 복지제도에 미치는 영향을 시뮬레이션하도록 명시돼 있었지만 정부가 내놓은 계획의 세부내용에 관련 내용은 빠져 있었다.

세무 전문가들은 이번 정부 들어 부동산 보유세가 대폭 늘어난 상황에서 추가로 공시가격이 인상되고, 여기에 건강보험료 부담 증가, 기초연금 수급 탈락 등의 현상까지 겹칠 경우 조세·복지제도 전반에 대한 불신만 키울 수 있다고 우려한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공시가격 현실화를 통해 공평과세를 실현하는 것이 목표라면 공시가격을 우선 올려 여파를 본 뒤 세율, 공정시장가액비율 등도 조절하는 것이 순서인데 정부는 모든 증세 수단을 한꺼번에 쓰고 있다”며 “이처럼 급격한 증세는 결국 납세자들의 불만을 키워 조세저항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은데, 거래세 인하 등 이 같은 불만을 해소하고 퇴로를 열어주기 위한 논의는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 이제라도 ‘제도 개선’ 취지로 돌아가야


그동안 부동산 가격이 치솟을 때마다 공시가격 제도에는 변화가 생겼다. 1989년 토지에 대한 공시지가 제도가 처음 시작됐을 때는 토지와 주택을 막론하고 가격이 급등하던 시기였다. 2005년 주택에 대한 공시가격 제도가 도입됐을 때 역시 부동산 가격이 치솟던 시기다. 이처럼 공시가격 제도는 도입부터 부동산 시장이 요동치던 시기 시장 안정 효과를 꾀하려는 정부의 의도가 개입돼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애초의 공시가격 현실화 논의는 정부의 정책 의도에 따라 공시가격이 좌우되지 않도록 객관적으로 가격을 정하자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현실화라는 목표만 남고 애초의 의도는 사라졌다”고 했다.

공시가격 제도를 정부가 정말 개선하고 싶다면 원래 취지로 돌아가야 한다. 공시가격을 누가 어떻게 책정하는지를 누구나 확인할 수 있도록 투명하게 공개하고, 오류를 어떻게 줄일지도 밝혀야 한다. 조세와 복지제도에 미칠 영향을 솔직히 알리고, 만약 국민의 편익이 줄어든다면 이를 어떻게 해소할지 대책도 내놔야 한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 생기는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새샘 산업2부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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