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끌 빚투’에 빠진 청년 위한 정책 필요하다[동아광장/하준경]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입력 2020-09-28 03:00 수정 2020-09-28 14:06
미래 불안에 젊은 세대 빚내 투자, 장기관점 초저금리는 기회보다 덫
인구 불균형과 양극화가 과열 이끌어… 자산 거품 꺼지면 고위험 현실화
기득권 이익 버리고 청년들 앞길 터줘야
이런 일이 벌어지는 직접적 이유는 초저금리다. 은행에 돈을 넣어봐야 자산 증식이 되지 않고, 대출금리는 저렴하니 ‘빚투’하기 좋은 환경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경제를 활성화하라고 전 세계가 금리를 내렸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실물경제와 자산시장이 따로 노는 거대한 디커플링, 즉 탈동조화다. 풀린 돈이 생산적 활동보다 자산가격을 떠받치는 데 투입된다. 자산이 없는 이들은 초조해지기 쉽다.
초저금리 상황에서 자산가격은 미래수익 전망에 민감하다. 미래에 대한 갖가지 예측들이 나와 자산가격을 좌우한다. 어디가 유망하다고 하면 그리 돈이 몰리고 다른 쪽이 좋다고 하면 또 그리 옮겨간다. 돈들이 몰려다니는 현상의 근저에는 세대 간 인구구조 불균형과 양극화가 있다. 베이비붐 세대가 고령화되면서 고도성장의 과실을 누렸던 이들의 노후 대비 자금은 엄청나게 축적된 반면, 이 돈을 빌려 쓸 젊은 세대는 윗세대보다 수가 줄었다. 한국의 30대는 인구의 13.9%로 40대(16%), 50대(16.6%), 60대 이상(23.1%)보다 적다. 쌓인 돈에 비해 자금 수요가 부족하니 금리는 낮아지고, 늘어난 돈들은 이곳저곳을 기웃댄다. 돈을 굴리는 사람들 입장에선 젊은이 한 사람에게 더 많은 돈을 빚으로 떠안기는 것이 수익을 늘리는 손쉬운 길이 된다.
돈이 넘치는 상황은 청년들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덫이 되기도 쉽다. 특히 규모가 큰 주택담보대출과 그 부족액을 메우려는 영끌 신용대출은 수십 년을 내다보는 주택 투자에 쓰이는 만큼 위험도 크다. 자칫하면 거품이 잔뜩 낀 비싼 자산을 떠안은 후 평생 소득의 많은 부분을 원리금 갚는 데 쓰는 현대판 농노가 될 수 있다. 선진국에선 소득에 비해 과다한 대출은 애초에 약탈적 대출로 본다.
자산가격은 소수인 30대보다는 기성세대의 관점을 더 많이 반영하기 마련이다. 2015년부터 시작된 부동산 붐도 처음엔 베이비붐 세대의 노후 대비 자산 구입에서 비롯됐고, 이후 30대가 따라붙으며 ‘공황구매’ 수준으로 과열됐다. 그러나 30대의 생애주기, 즉 수십 년을 아우르는 관점에서 보면 공황구매를 합리화하기란 쉽지 않다. 지금 좋아 보이는 고층 신축 아파트도 앞으로 30년 후엔 구축이 될 것이고, 그때 더 높은 층수로 재건축될 확률도 낮다. 금리도 이미 제로에 가까워 30년 후에 더 낮아져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30대 인구는 2050년엔 410만 명으로 지금의 720만 명보다 훨씬 줄어든다. 돈을 싸게 빌릴 수 있으니 비싼 값에 낡은 집을 사라고 권하는 일도 지금보다 어려워질 것이다. 서울 강남은 그래도 오른다고 할지 모르지만 30년 후까지도 서울이 모든 자원을 빨아들이는 구조가 유지된다면 저출산이 심화돼 국가 존망의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지금의 고수익도 고위험의 다른 표현일 수 있다.
그렇다고 영끌 빚투로 내몰린 30대에게 마땅한 탈출구가 보이는 것도 아니다. 베이비붐 세대가 30대였던 1990년대엔 국가가 200만 호 주택을 건설해 집값을 낮추고 주거 문제를 해결해줬다. 그러나 지금의 30대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부동산 애널리스트 채상욱 씨의 분석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때 신규택지 지정 중단 등 주택 공급의 획기적 감소가 추진돼 수십만∼수백만 호의 잠재적 주택 공급이 사라졌고, 그 여파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기성세대의 집값을 올려주려고 그 자녀들인 청년들의 앞길을 가로막는 정책을 쓴 셈이니 정권이 흔들릴 일이었다.
최근 정세균 총리는 청년정책조정위원회 출범을 맞아 ‘청년에 의한 정책’을 표방했다. 정책이 구호가 아닌 실질적 변화로 다가오게 하려면 기득권의 근시안적 이익 때문에 청년들이 좌절하는 일이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게 해야 한다. 공공주택, 기숙사 건설 등의 사업이 좌초되고 곳곳의 진입장벽이 공고해질수록 청년들은 위험한 길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인구 불균형과 양극화가 과열 이끌어… 자산 거품 꺼지면 고위험 현실화
기득권 이익 버리고 청년들 앞길 터줘야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30대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로 ‘빚투’(빚을 내 투자)하는 모습이 많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법인과 다주택자들이 내놓는 주택을 30대가 비싼 값에 받아주고 있어 안타깝다고도 했다. 젊은이들은 “정부 믿고 기다리다간 그나마 기회도 없어진다”고 볼멘소리다.이런 일이 벌어지는 직접적 이유는 초저금리다. 은행에 돈을 넣어봐야 자산 증식이 되지 않고, 대출금리는 저렴하니 ‘빚투’하기 좋은 환경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경제를 활성화하라고 전 세계가 금리를 내렸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실물경제와 자산시장이 따로 노는 거대한 디커플링, 즉 탈동조화다. 풀린 돈이 생산적 활동보다 자산가격을 떠받치는 데 투입된다. 자산이 없는 이들은 초조해지기 쉽다.
초저금리 상황에서 자산가격은 미래수익 전망에 민감하다. 미래에 대한 갖가지 예측들이 나와 자산가격을 좌우한다. 어디가 유망하다고 하면 그리 돈이 몰리고 다른 쪽이 좋다고 하면 또 그리 옮겨간다. 돈들이 몰려다니는 현상의 근저에는 세대 간 인구구조 불균형과 양극화가 있다. 베이비붐 세대가 고령화되면서 고도성장의 과실을 누렸던 이들의 노후 대비 자금은 엄청나게 축적된 반면, 이 돈을 빌려 쓸 젊은 세대는 윗세대보다 수가 줄었다. 한국의 30대는 인구의 13.9%로 40대(16%), 50대(16.6%), 60대 이상(23.1%)보다 적다. 쌓인 돈에 비해 자금 수요가 부족하니 금리는 낮아지고, 늘어난 돈들은 이곳저곳을 기웃댄다. 돈을 굴리는 사람들 입장에선 젊은이 한 사람에게 더 많은 돈을 빚으로 떠안기는 것이 수익을 늘리는 손쉬운 길이 된다.
돈이 넘치는 상황은 청년들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덫이 되기도 쉽다. 특히 규모가 큰 주택담보대출과 그 부족액을 메우려는 영끌 신용대출은 수십 년을 내다보는 주택 투자에 쓰이는 만큼 위험도 크다. 자칫하면 거품이 잔뜩 낀 비싼 자산을 떠안은 후 평생 소득의 많은 부분을 원리금 갚는 데 쓰는 현대판 농노가 될 수 있다. 선진국에선 소득에 비해 과다한 대출은 애초에 약탈적 대출로 본다.
자산가격은 소수인 30대보다는 기성세대의 관점을 더 많이 반영하기 마련이다. 2015년부터 시작된 부동산 붐도 처음엔 베이비붐 세대의 노후 대비 자산 구입에서 비롯됐고, 이후 30대가 따라붙으며 ‘공황구매’ 수준으로 과열됐다. 그러나 30대의 생애주기, 즉 수십 년을 아우르는 관점에서 보면 공황구매를 합리화하기란 쉽지 않다. 지금 좋아 보이는 고층 신축 아파트도 앞으로 30년 후엔 구축이 될 것이고, 그때 더 높은 층수로 재건축될 확률도 낮다. 금리도 이미 제로에 가까워 30년 후에 더 낮아져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30대 인구는 2050년엔 410만 명으로 지금의 720만 명보다 훨씬 줄어든다. 돈을 싸게 빌릴 수 있으니 비싼 값에 낡은 집을 사라고 권하는 일도 지금보다 어려워질 것이다. 서울 강남은 그래도 오른다고 할지 모르지만 30년 후까지도 서울이 모든 자원을 빨아들이는 구조가 유지된다면 저출산이 심화돼 국가 존망의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지금의 고수익도 고위험의 다른 표현일 수 있다.
그렇다고 영끌 빚투로 내몰린 30대에게 마땅한 탈출구가 보이는 것도 아니다. 베이비붐 세대가 30대였던 1990년대엔 국가가 200만 호 주택을 건설해 집값을 낮추고 주거 문제를 해결해줬다. 그러나 지금의 30대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부동산 애널리스트 채상욱 씨의 분석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때 신규택지 지정 중단 등 주택 공급의 획기적 감소가 추진돼 수십만∼수백만 호의 잠재적 주택 공급이 사라졌고, 그 여파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기성세대의 집값을 올려주려고 그 자녀들인 청년들의 앞길을 가로막는 정책을 쓴 셈이니 정권이 흔들릴 일이었다.
최근 정세균 총리는 청년정책조정위원회 출범을 맞아 ‘청년에 의한 정책’을 표방했다. 정책이 구호가 아닌 실질적 변화로 다가오게 하려면 기득권의 근시안적 이익 때문에 청년들이 좌절하는 일이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게 해야 한다. 공공주택, 기숙사 건설 등의 사업이 좌초되고 곳곳의 진입장벽이 공고해질수록 청년들은 위험한 길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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