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송이 장미’부터 ‘너의 의미’까지… 가요로 풀어낸 역사속 갑남을녀

이지훈 기자

입력 2022-09-26 08:19:00 수정 2022-09-26 10:4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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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엇갈린 사랑을 하는 대학생 커플 임성우(박근식)와 김해영(이재희)이 연기하는 모습. 더웨이브 제공


1930년대 일제시대부터 6·25전쟁, 경제 개발, 민주화를 겪으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70년 굴곡진 한국사를 함께한 연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 무대에 오른다.다음달 4~23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극장 용에서 선보이는 주크박스 뮤지컬 ‘백만송이의 사랑’은 한국의 근·현대를 아울렀던 대중가요 41곡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낸 작품이다. 지난해 11월 경기 의정부예술의전당에서 초연된 후 이번엔 서울에서 선보인다.

첫 곡은 심수봉의 ‘백만송이의 장미’. 6·25전쟁이 터지면서 생이별하게 된 남편 임인수(라준), 아내 함순례(강하나)가 함께 부르는 곡이다. 회한의 세월이 지나 등이 굽은 노인이 된 두 사람이 ‘백만송이의 장미’를 부르며 ‘백만송이의 사랑’이 담긴 이야기는 시작된다. 임인수의 부모이자 작품에서 가장 오래된 연인으로 등장하는 1930년대 독립운동가 임혁(정평)과 기생 김향화(신진경)의 사랑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6·25전쟁과 군사독재, 민주화 운동, IMF 외환위기, 2002 한일 월드컵…. 한국사의 대표적 사건들이 배경에 깔리고 그 속을 살아가는 평범한 갑남을녀의 삶과 사랑이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장식한다.

1970년대 무명가수 현석과 부잣집 외동딸 지수의 사랑을 그린 장면. 더웨이브 제공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 ‘귀토’, 뮤지컬 ‘광주’ 등으로 유명한 고선웅이 연출을 맡았다. 그는 “한국사의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고 독립투사, 영웅을 기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변을 살아냈던 민초들의 굴곡지고 신선한 삶을 기억하고 싶었다”고 연출의도를 밝혔다.

시대를 가로질러 어디선가 봤을 법한 연인들의 사랑 이야기를 더욱 친근하게 만드는 건 귀에 익은 넘버들이다. 193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인이라면 한 번 쯤은 들어본 익숙한 가요가 극의 처음과 끝을 장식한다. 1막에선 ‘빈대떡 신사’ ‘다방의 푸른 꿈’ ‘사의 찬미’ ‘낭랑 18세’ ‘님과 함께’ 등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명곡을 담았다. 아파트 공화국이 된 서울을 배경으로 하는 2막은 윤수일의 ‘아파트’로 시작된다. ‘사계’ ‘어젯밤 이야기’ ‘빙글빙글’부터 ‘취중진담’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너의 의미’까지. 세대와 성별을 넘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에 귀에 익은 노래가 결합돼 대중성과 오락성을 확실히 잡았다는 평가다.

고선웅 연출은 “일제시대부터 미군정, 경제 개발, 민주화를 겪으면서 우리가 같이 힘들게 견디고 살아오긴 했는데 그 과정에서 다른 세대의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건 부족했던 것 같다”며 “이 공연을 보고 저런 삶을 살아온 할아버지 할머니의 대를 이어 내가 여기 존재한다는 걸 느끼고 서로를 이해하게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러 연인의 서사가 병렬적으로 전개되어 작품을 장식하지만 극을 관통하는 하나의 이야기는 없어 몰입감은 덜하다. 하지만 친숙한 노래가 계속 흘러나와 관객을 무대로 당긴다. 고선웅 작품에서만 볼 수 있는 배우들의 감칠맛 나는 희극 연기도 매력이다. 4만4000~8만8000원.

이지훈기자 eas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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